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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식 대표(아프리카 DR콩고 교육방송)


가장 좋은 것으로 섬길 때 선교의 문 열린다
가난과 장애 극복 위해 교육에 집중, 교육방송국도 설립
2005년 콩고민주공화국 교육공로로 국민공로훈장 금장 수상


 아프리카 중부 내륙에 위치한 콩고민주공화국. 콩고와 같은 프랑스어를 언어로 사용하지만 보다 더 큰 면적의 더 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로 둘 다 콩고 강에 인접해 있다. 이전에는 자이르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쓰다가 내전을 겪은 이후 원래의 이름인 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혹은 DR콩고)을 국가 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군인폭동과 내전 탓에 콩고민주공화국은 거리마다 부랑아와 장애인들로 가득했다. 그런 안타까운 상황속에 1991년 김경식 선교사와 김사라 사모 부부가 수도 킨샤샤에 첫 발을 내딛었다. 앞서 신학교시절부터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가자’라고 약속했던 김 선교사 부부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당시 자이르공화국으로 향했다. 군인폭동으로 공항이 폐쇄되어 인근에서 바지선을 타고 수도 킨샤샤로 어렵게 입성한 이들 부부가 목격한 것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나라 전체가 무질서와 혼란으로 가득했다. 자신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아이들을 모른 채 할 수 없어, 이들 부부가 주린 아이들에게 빵을 주는 것에서 사역이 시작됐다. “구제사역을 하면서 교회를 세우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냥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 질서를 잡을 필요가 있었어요. 그 때 찬양을 부르기 시작하니 어지러웠던 상황이 정리가 되고, 말씀도 전하게 되고 그 자리가 하나의 교회가 되어 버렸어요”
 그렇게 2년 동안 거리의 부랑아, 고아들 그리고 장애인들을 돌보며 예배를 드리다 1994년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에 무시교회를 세우고 사역을 시작했다.

 김 선교사는 사역을 하면서 이 곳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고열이 나는 자녀가 있어 부모들에게 해열제를 전달했는데 다음날에도 아이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이상하게 생각됐어요. 그래서 알아보니 부모들이 해열제가 무엇인지, 약을 어떻게 먹이는 지도 몰라 그냥 아이를 방치하고 있었죠. 그러다보니 이 지역에 가난과 장애가 대물림 되고 있는 이유가 유전이나 환경이 아닌 무지임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죠”

 그래서 김 선교사는 1996년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설립했다. 매년 1000명의 학생이 교육을 받아 졸업했지만 이 나라를 당장 변화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김 선교사는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이디어를 주셨다. 그 것이 바로 교육방송국이었다.

 외국인선교사가 지상파 방송국을 운영하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전이 끝나갈 무렵 학교를 방문한 한 정부관계자가 김 선교사의 사역을 보고는 교육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해 1998년에 방송라이센스를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에 콩고교육방송(CEBS)가 개국하게 됐다. 먼저 라디오방송이 시작됐고 뒤를 이어 TV방송국도 개국했다. 교육방송으로 시작했지만 종합상업방송국으로 라이센스를 취득해 지금은 시사와 뉴스를 포함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방송 송출하고 있다. 교육과 선교 중심이지만 기초질서 캠페인 등을 통한 계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시청권이 수도 킨샤샤의 인구인 1100만∼1200만에 육박, 교육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자 정부에서는 그에게 ‘국민공로훈장 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모든 과정들이 하나님의 은혜였죠. 최고의 학교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선생님들과 최선을 다하니 부모들이 앞다투어 자녀들을 데리고 왔죠. 학교에서 신앙교육을 해도 거부감이 없어요. 처음에는 반대하는 부모들도 있었지만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불만도 사라졌죠”

 학교는 최고의 선교 도구가 되었다. 현지인들의 경계의 담이 무너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 선교사는 최근 의과대학이 있는 대학교도 설립했다.
 “처음에는 대학설립에 대해 부담과 고민이 많았지만 시작한 이상 최고의 대학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의과대학이 있으려면 병원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시작했죠. 그래서 지금은 최고의 병원을 세우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아직 이 나라의 의료수준이 낮아 안타깝게 사망하는 경우가 있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고 수준의 병원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죠”

 실제로 정부와 유니세프가 공동으로 하는 사립대학평가에서 최근 1위를 차지에 최우수대학임을 입증했다. 이제 겨우 3회 졸업생을 배출한 대학교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학교의 발전속도가 빠르다.
김 선교사는 “선교는 지역사회와 함께 가야 한다”며 실제로 학교나 대학이 세워진 곳들이 우범지대나 낙후된 지역이었지만 학교를 통해 그 지역이 한 층 업그레이드가 되었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해 최고로 만들 때 선교도 됐다”며 오늘도 자신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기사입력 : 2017.11.05. am 10:44 (입력)
정승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