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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지순례 ①소래교회


 184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서상륜은 만주를 오가며  인삼장사를 하다 스코틀랜드 선교사 매킨타이어 목사에게 복음을 듣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 후 서상륜은 1883년 5월 16일 동생 서경조와 함께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 소래마을에 있는 한 초가집에서 스스로 교회를 세웠다. 외국선교사의 발길이 미치기 전에 스스로의 힘으로 교회를 세운 일은 세계선교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대사건이다.

 이어 1895년에는 8칸의 기와집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1896년에는 8칸을 증축하여 총 16칸의 기와집 교회가 되었다. 소래교회는 한국 개신교 초기 역사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언더우드가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했을 때 처음 세례 받은 사람들도 대부분 소래교회 신자였고, 새문안교회가 세워질 때도 소래교회 출신들이 주축이 되었다. 또한 소래교회는 한국에 새로 파송되는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한국말과 전통을 배우는 교육장소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 북한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교회 성도들이 대거 월남하면서 소래교회의 명맥은 끊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대한예수교장로회 황해노회가 한국 초대교회 선조들의 신앙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1984년 복원을 결의하고 건축과정을 거쳐 1988년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에 소래교회를 복원하였다. 복원된 소래교회는 1896년 증축된 예배당의 모습으로 ‘ㄱ’자 형태의 한옥이다.
 교회 마당에는 ‘예수천당’으로 유명한 최권능 목사의 기념비 소래교회 설립자인 서상륜 기념비, 그리고 한국교회 선각자인 이수정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편 소래교회를 설립한 서상륜은 존 로스 선교사를 도와 성경번역에도 평생을 바쳤다. 1882년 한글로 된 최초의 복음서 <누가복음>과 1883년 <사도행전><요한복음>등을 발간하였고, 마침내 1887년 <예수셩교젼셔>라는 이름의 신약성경을 완역하여 간행했다.

 

기사입력 : 2017.10.29. am 11:26 (입력)
김용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