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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중략)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장 14~21절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망의 음부를 이기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놋뱀을 믿음으로 쳐다봄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한량없는 사랑을 바라보고 믿는 자는 용서와 구원을 얻게 됩니다. 

1. 인류의 첫 조상, 아담

 우리는 아담의 탯줄로 연결되어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담의 탯줄에 우리 탯줄이 연결되어서 생명의 피를 받아 인류의 하나하나가 태어난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난 다음에 아담과 하와의 탯줄을 달고 태어난 우리들은 다 죄인인 것입니다. 죄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죄의 탯줄, 더러움의 탯줄, 병의 탯줄, 저주의 탯줄, 사망의 탯줄입니다. 요사이 의사들은 이 탯줄을 이용해서 병도 고치고 생명도 오래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위해서 많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만 인간은 애초에 탯줄에 연결된 존재인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6절로 19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2. 인류의 새 조상, 예수님

 인류의 조상을 아담이라고 말하는데 아담이 전체 인류조상은 아닙니다. 우리의 새로운 조상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핏줄 속에서는 아담의 피가 한 방울도 섞여 있지 않습니다. 의사들의 설명에 의하면, 탯줄에 어린 아기와 어머니의 태 사이에는 특별한 구조가 되어 있어서 피가 안 통한답니다. 서로 대치되어서 어머니의 몸에 양분이 삼투되어서 들어오는 것이지 피를 통해서는 안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가치는 말로 할 수 없을만큼 그 효과가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 한 사람 피가 십자가에서 온 지구의 끝에 사는 사람들까지라도 그 피의 대가로써 죄를 다 청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새로운 조상인 예수님의 탯줄이 우리의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다 붙어있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장 16절에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다 죄인이 된 것처럼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하나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세계 사람들이 다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빚은 갚아야 됩니다. 최근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천 4백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가계부채가 상승속도가 세계 2위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감당해야 할 빚 부담이 역대 최고인 것입니다. 빚을 갚을 수가 없어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빚이라는 것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금전적인 빚보다 무서운 빚은 없습니다. 죄의 빚은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빚을 갚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3년 동안 지상에서 사역하셨는데 당신이 죽을 것을 일찍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너무 고통스러우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말할 정도 였습니다.

 순수한 죄인으로 취급으로 받기 때문에 동정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떠나는 순간에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며 그 완성을 감격을 간직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죄의 빚을 완전히 청산해주셨습니다. 죄를 우리 인간의 힘으로 갚으라고 말하면 어림도 없습니다. 의의 거룩함의 탯줄,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의의 탯줄과 거룩하신 탯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로움과 거룩함이 여러분의 영혼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성경공부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여러 가지 신앙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신령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사십에 하나 매를 제하고 때립니다. 장정이 회초리 끝에 쇠고랑이 달려있는 그 회초리를 휘둘러 때립니다. 사십대를 다 때리면 목숨을 잃습니다. 주님이 매를 맞을 때마다 세상 인류는병의 태를 꺾어 버리고 예수님의 생명의 태에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망의 세력은 탯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고 우리는 예수님의 태에 붙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의 탯줄도 우리가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려고 하나님이 택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특별한 하나님의 축복의 탯줄을 연결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복의 탯줄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탯줄에 연결된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미리 그런 것을 체험하지 못했기에 항상 가난의식에 붙잡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의 탯줄에 연결된 우리가 가난한 거지가 될 수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나는 아브라함의 탯줄에 연결된 사람이니 복 받은 사람이다.”라고 그것을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가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된 주장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저주의 탯줄은 끊기고 축복의 탯줄에 연결되었는데 거기에는 축복이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는 고의적으로라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라고 해야 됩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럼 그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로 8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 22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영원히 사는 탯줄로 연결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3. 두 인류의 자화상

 두 인류의 자화상을 우리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담 안에서 자화상은 영이 죽은 자화상인 것입니다. 무신론자요 인본주의자, 유물론자. 이것이 영이 죽은 사람입니다. 시편 10편 4절에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야훼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고 말씀하며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 이 자연의 일들은 우리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를 믿어 영이 살아난 사람은 어떤 자화상을 가지고 있을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자, 신본주의자, 거듭난 자의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영이 살아난 사람과 영이 죽어있는 사람은 확실히 구별이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우리가 생명이 일치가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56절로 57절에 보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도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합니다. 일치 했다는 것은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1절은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원어 그대로 해석을 하면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죽음의 고비를 많이 겪었는데 예수그리스도의 경험하는 그 죽음은 실상은 그 죽음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와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인 것은 우리의 생명을 대신으로 죽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복음은 체험적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죽음을 경험해봐야 하는거 아닙니까?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죽음은 내 죽음이요, 예수 부활은 내 부활입니다. 예수 천당은 내 천당, 예수 영광은 내 영광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분리할래야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생명의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두 강도가 함께 매달렸는데 그들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욕하면서 죽었고 다른 사람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누가복음 23장42절에 고백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구원을 얻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전해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하나님을 섬기는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성령이 마음 문을 열어주셔서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좌편 강도, 우편 강도인데 왜 한 강도는 예수님을 욕을 하고 협박을 하고 죽는데, 똑같은 다른 강도는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고 그 자리에서 구원을 받았을까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이미 우리를 보시고, 아시고 때가 오매 성령으로 우리 마음문을 열어서 구원을 받게 해주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구원은 형언할 수 없이 귀한 복인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을 붙들어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시고 의로운 능력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현실적인 생활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용서와 의로움을 받았고, 지금 거룩함을 받았고, 지금 치료함을 받았고, 지금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고, 지금 영생의 복을 받았습니다. 현재진행형입니다.

 얼마 전 국민일보에서 이정훈(울산대 법학과)교수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는 좌파 법철학에 빠져 교회를 사회악으로 여기고 교회를 핍박하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분입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는 단체를 만들어서 공립학교 내 종교 활동을 금지시키고 공무원의 종교적 중립을 강화시키며 교회 내의 투표소 설치를 반대하는 등 교회를 핍박하는 수많은 법을 관철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를 핍박하려는 목적으로 기독교 방송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갑자기 혀가 굳어졌습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강력한 전류가 흐르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고꾸라졌습니다. 그 순간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구세주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기의 인생을 바쳐서 모든 힘을 다해 기독교를 핍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십자가만 바라봐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는 이제 한국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영이 살아나면,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고 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자화상을 굳세게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폐병 3기에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그 후 일생 동안 몸이 허약했는데 어지럽고 다리가 아프고 기침이 나고 소화도 잘 안되고 온갖 병이라는 병은 다 갖고 있는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습니다. 서대문교회 시절에 설교하다가 쓰러졌는데 그때 이후로는 늘 쓰러질 것처럼 다리가 떨리고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제가 확실히 배운 것은 나의 새로운 정체성인 것입니다.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서 수없이 죽을 고비를 당했는데 심장이 멈출 것 같고 어지럽고, 일어날 기운이 없을 때마다 나의 정체성을 생각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처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는 말씀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고 참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용서받고 의로운 사람이 된 사람이다. 나는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치료받고 건강한 사람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요 영생 복락을 받은 사람이다.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을 실천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과 생명이 일치가 되었으니까 거기에서 탯줄이 붙어있습니다. 죄인은 죄의 탯줄에 붙어 있는데, 의인은 예수를 통해서 생명의 탯줄에 4차원의 영성으로 붙어 있는 것입니다. 눈에는 안보여도 우리는 그것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몸이 약한 사람은 “나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몸에 붙어 있다. 나는 병의 노예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사업과 생활을 하시는 분은 자꾸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라고 주장하며 고백해야 합니다. 은혜의 탯줄에서 양분을 끌어들여야 됩니다. 그럼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실상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성경에 그렇게 기록했구나 생각하고 실제적으로 내게 유익이 있다는 것은 잘모르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장사지내고 더불어 부활해서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탯줄에 연결되어 있음으로 예수 생명이 곧 내 생명이 됩니다. 예수의 의로움이 내 의로움이 되고, 거룩함이 내 거룩함이 되고, 예수의 치료가 내 치료가 되고, 예수님의 축복이 내 축복이 되고,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이 내 영원한 생명이 됩니다.

 

기사입력 : 2017.10.15. pm 14:30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