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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성도(김일성 주치의 출신)

고난의 삶에 끝까지 동행하신 주님 찬양
진정한 자유는 탈북이 아닌, 성경을 통해 누리게 되었습니다


 8일 주일 2부 예배시간 찬양이 울러 퍼지는 대성전의 앞좌석에 앉은 김소연 성도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예배만 드려도 이렇게 눈물이 납니다. 이렇게 울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모르겠어요” 김일성 주치의였던 북한이탈주민 김소연 박사(종로중구대교구)가 7월 15일 우리 교회 성도로 등록했다. 한국에 온지 26년째가 되는 내년이면 칠순이다. 하지만 그녀는 대학교에 갓 입학한 신입생처럼 활력이 넘친다.

 북한에서 나의 별명은 ‘악마의 여신’ 

 북한에서 그녀는 ‘악마의 여신’으로 불릴 만큼 강성이었다. 하지만 귀순 후 긴 여정을 보냈고 우리 교회 성도로 새신자 교육 등을 받으며 크게 달라졌다. 삶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북한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김일성 만수무강장수연구소 기초의학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성 구별을 차단시키는 주사’를 맞았다. “명령에만 충실하라며 제 본능적인 욕구를 차단했던 거죠. 단순한 예방주사인 줄 알고 1년에 한 번씩 ‘중성화 주사’를 맞았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여성성이 사라지면서 감성도 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랫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기계적으로 바뀌게 되었지요”
 김 박사는 외할아버지 신앙을 이어받은 모태신앙인이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두 살 때 어머니의 등에 업혀 외할아버지의 고향인 평양으로 건너갔다. 어머니는 숙청돼 탄광으로 끌려갔고 그녀는 혁명가의 집안으로 입양됐다. 당의 요구대로 의대에 진학해 인민군 11호 종합병원 외과의사와 만수무강장수연구원 등으로 활동했다. 북한 국경지역에서 탈북 시도자들을 감시하는 검역관 업무도 맡았다.
 “도망병을 색출하려고 건물 안을 조사하는데 아주 작은 빨간 책을 발견했습니다. 책 표지가 예뻐 이를 펼쳐보니 성경이었습니다. 펼친 부분에 노루 이야기가 나왔어요. 성경에 왜 노루이야기가 나오는 건가 싶어 그 부분만 쭉 찢었습니다. 화장실 안에서 그 부분을 읽는데 밖에서는 저를 찾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증거인멸을 위해 다 읽고 껌처럼 씹어 꿀꺽 삼켰습니다”
 김 박사는 그 때 성경을 처음으로 접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몰래 읽었던 성경구절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잠언 6장 5절이었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우연의 일치였을까? 북한에서 도망병은 통상 ‘노루’로 불렸다.
 김 박사는 남한에 아버지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면서 탈북을 결심, 도망병 ‘노루’가 되었다. 남한으로 오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수차례 탈출을 시도했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기도하셨던 대로 “전지전능한 하나님, 불쌍한 어린 양을 구원해 주세요”라고 기도했고 노루에 관한 성경 구절을 마음 깊이 되뇌이고 또 되뇌였다. 마침내 1992년 8월 43세의 나이로 남한 땅에 발을 내딛는데 성공했다. 

 

대한민국의 ‘자유’, 나에겐 엄청난 ‘짐’ 

 김 박사는 당시 한중 상호 협력관계 유지를 위해 비공개로 대한민국에 왔다. 이어 8년 동안 그의 ‘북한이탈’은 비밀로 붙여졌으며 2000년이 돼서야 비로소 귀순 발표를 통해 공개적 신분이 되었다.
 아버지도 45년 만에 만났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도 했다. 그러나 남한의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유가 오히려 제게 엄청난 짐이었습니다.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자유는 해방감을 주겠지만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던 저에게 자유는 그저 저를 힘들게 하는 요소였어요. 매일 내게 주어진 자유를 의심하며 북한체제 속에 받았던 상처들과 직면하게 됐습니다”
 한 번은 자신을 보호해 주던 수사관의 인도로 교회를 따라 갔다. 그곳에서 예배 드리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교회의 예배 장면이 북한 행사와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김 박사는 그 날 이후 북한과 교회의 중복 이미지 때문에 큰 혼란을 겪었다. 탈북을 시도하며 수없이 만났던 하나님, 성경책에서 본 노루를 통해 만났던 하나님은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그는 북한 체제가 먼저인지, 성경이 먼저인지 진리를 찾고자 미국으로 향했다. 8년간 그곳에서 비교신학과 선교학 그리고 통합의학 등을 공부했다. 또 여러 교회들을 순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 크리스천은 종교 행위를 하는 자일뿐이었다. 그는 “북한에서 종교는 마약과도 같고 마약(종교)이 없는 북한이야 말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나라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신학공부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또 다른 긴긴 여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오랫동안 저를 기다려 주셨습니다. 아주 어릴 때 들었던 할아버지의 기도소리, 교회로부터 도망치던 때에도, 미국 유학시절까지도 묵묵히 기다려 주셨습니다. 유학을 통해 북한이 체제유지를 위해 성경을 표절했다는 것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신앙생활 통해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하루 감사 

 그녀는 미국에서 다녔던 여러 교회들 가운데에서도 순복음교회 예배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 젊은이들의 축제에 참석한 것만 같았다. 귀국 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게 된 이유다.
 김 박사는 요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 등 순복음의 신학과 신앙, 성령충만의 중요성 등을 배웠다. 특히 최근 거듭난 신앙인이 되고자 침례를 받았다는 그는 교회가 펼치고 있는 구제와 선교활동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1일에는 영광대학에서 간증을 전하며 여의도순복음교회성도로서의 정체성을 배워가며 절대 감사, 절대 긍정의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 무엇보다 가치 있고, 목적 있는 삶을 살고 싶었던 김소연 박사.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질문과 진리를 향한 그리움이 없었다면 그가 말하는 ‘삶의 본질’, 그리고 지금의 부드러운 표정은 불가능 했을지 모른다.
 “제게 주입된 주체사상이라는 단단한 세계관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것은 남한의 한 선교단체가 전해준 성경이었습니다. 김정일 정권과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도 체제 전복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어야 합니다” 남과 북의 시대적 아픔이 만들어낸 비극적 상황에서 김 박사의 고난스런 삶의 여정은 그야말로 주님이 동행하시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기사입력 : 2017.10.15. am 12:21 (편집)
김진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