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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구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요한삼서 1장 2절, 사도행전 10장 38절)

 유명한 교육자요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 박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 안에서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어야 우리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살면서 언제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말씀을 사랑함으로 죄와 악한 행실을, 질병과 나쁜 환경과 세력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 말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 해 농사가 잘 되어 풍성한 수확을 얻었습니다. 그는 큰 곳간을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잔뜩 쌓아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누가복음 12장 19절)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2장 20절)

 우리 사람들은 자기 운명을 자기 손으로 좌우할 수 있는 줄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데려가시면, 아무리 재물을 많이 쌓아 놓았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아갑니다. 더 많은 재물을 모으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면서도, 중요한 자기 영혼에 대한 관심은 내버려두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 박사가 노후에 기독교 신앙에 귀의했는데, 이 유명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내 노후에 인생의 석양녘에 나는 교회 이외에 내 영혼을 위로를 받을 곳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내 영혼이 위로받을 수가 있는 처소가 교회밖에 없는 것을 깨달아 알았다.”

 교회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신학자 어거스틴도 그의 ‘고백록’을 통해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내게는 쉼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식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께 돌아와야만 영혼의 참된 위로와 안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떠나서 인간의 어떤 일에도 희망과 안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1. 영혼이 잘됨 같이

 하나님이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부탁한 것이 “네 영혼이 먼저 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은 우리 인간의 가장 깊은 자아를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자아도 있고, 혼적인 자아도 있지만, 깊은 영혼의 자아가 자기의 참된 자아가 된 것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육신이 진정한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은 영혼이 참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죄악과 마귀의 억압과 세상의 고난에 처하여 불안하게 되고,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면 영혼이 잘될 수가 없습니다. “지킬 만한 것 중에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했습니다. 이 마음이란 깊은 내가 살아나야 참 사람으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면 어떻게 될 수 있느냐?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나의 생명이 보혈로 속사람이 살아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용서하고,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를 재생시키면 영혼이 잘 되게 됩니다. 그래야 행복이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죄에 연결되어서 영혼이 죽어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값없이 우리 죄를 용서해주고 영혼을 살려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버림받은 그대로, 주님께 나아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여 내게로 오라 내가 쉬게 해주겠다.’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한없는 은총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은즉’(엡 2:8)이라고 했는데, 은혜는 값없이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아무리 가난해도, 부유해도 관계없습니다. 사람으로서 주님께 나아오면 공짜로 구원해주는 것입니다.
 구원은 절대로 조건으로 나오면 안 됩니다. 빈 손 들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은 무조건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은즉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나옵니다.’ 나오면 주님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여러분을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는 것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의한 것이니 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생활고로 인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심지어 먹고 살 길이 없어서 두 딸을 안고 바다에 뛰어든 어머니도 있습니다. 어쩌다 인간의 삶에 이런 저주가 들어왔을까요? 원래 하나님이 인간에게 살도록 하신 에덴동산은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고, 인간은 죽을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 일해서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삶이 가시와 엉겅퀴에 시달리는 고통을 당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다가온 이 고통을 예수님의 은혜와 보혈을 통해서 다 극복하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십자가 밑에서 십자가를 내 가슴에 품어야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만들어 주시고, 우리의 더러운 삶을 씻어서 깨끗하게 해주시고, 거룩하게 해주셔서 성령을 받게 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마음의 병, 생활의 병을 치료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 가난과 저주를 속하여 주시고,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 은혜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도 부활영생한 사람들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이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2. 범사에 잘되고

 성경에는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에 잘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잘된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삶의 저주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역하실 때,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영혼구원뿐 아니라,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에도 관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내년이면 우리 교회가 60주년을 맞게 되는데, 우리 교회가 시작될 무렵엔 모두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우선 따뜻한 밥 한 공기와 약 한 봉지가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메시지를 전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시키셨다는 복음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에 우리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전도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을 제일 중요한 하나님으로 우리 일생을 맡기고 사는 것이 범사에 잘되기 시작한 길입니다. 사람의 탐욕엔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함을 모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환경에도 만족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장 11절~13절)고 그는 삶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만족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기를 사모하는 영혼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9절에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우울하고 불안해하고 염려와 근심에 시달리며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나 마음에 평안과 만족을 누릴 수 있는 힘을 주님께서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한과 슬픔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는데,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해치고 살아야 되기 때문에 늘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간 내어서 기도하는 일도 있지만 순간순간 다가오는 낭패와 실망과 저주와 슬픔과 이러한 것을 해결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는 일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좋은 일이 다가오면 좋아서 감사하고, 나쁜 일이 다가오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 28절)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이여, 나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너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이 염려와 피곤함을 하나님께 맡기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주여 주님께서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지혜와 총명을 주시옵소서.”라고 수시로 늘 기도하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여 감사합니다. 무조건 감사합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감사합니다. 나쁜 일이 있어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나빴던 일이 오히려 좋은 일로 변화되는 일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시시각각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아뢰고,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살면, 우리가 인생을 가치 있게 산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으며,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야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34편 10절)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설교가 비쳐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세 가지 고생을 한다. 일하기 전에 실패할까 걱정하느라 고생이요, 일하면서 수고하느라 고생이요, 일을 끝내고 결과를 걱정하느라 고생이다.”
 믿음이 없으면, 이렇게 늘 염려와 근심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장31절~32절)고 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해야 될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하지말라.’ 이런 것은 이방인들은 염려해야 된다. 이방인들은 돌보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염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는 있어야할 줄 알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을 먼저 구하고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는 것입니다. 나는 우스운 얘기지만 올해 들어와서 옷이 전부 나에게 작아요. 옷이 좀 커야 그 옷을 입고 주일 설교할 때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아야 될 것인데,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말했더니만 일시에 양복이 막 줄지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내가 그 말이 내 입에서 떨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벌써 보시고 날 보고 옷 해주라고 명령한 사람들을 내게 보내서 옷을 해주는 것인데, 제일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애들이 “아버지 다른 옷들이 많은데 그건 어떻게 하렵니까요?”, “야 지금은 뚱뚱해져서 그렇지만, 또 빼빼해질 때가 있을 텐데 그땐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 의지하고 살면 하나님이 우리 부모가 되시므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33절) 의식주 생활을 다 돌보아 주신다. 우리가 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괜히 사람 꾄다고 그렇게 말한 것 아니냐?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이 뭐가 필요하여 우리를 꾀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범사에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먼저 할 것이 있고 나중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기도하면서 먼저 해야 될 것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우리 일을 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철저하게 하나님을 모시고 섬길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보십시오. 100세에 난 아들을 모리야 산에 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사실 100세에 난 아들을 하나님이 잡아서 불로 태워 제물로 드리라고 하시는데 순종하기가 힘들지요.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죽이는 장면까지 들어갔는데 하나님이 그만해라. “내가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는 그게 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 하는가 그것을 보기 위해서 시험하는 것이지. 제가 개척교회 할 때, 우리교회에 나오는 한 식구가 있는데 유하문씨가 그 집주인이고, 그 부인이 이초이씨고, 아들만 아홉이었습니다. 남편은 술주정뱅이, 부인은 굉장히 병들어 아프고 빼빼한 것입니다. 얻어먹고 사는 그러한 사람인데 내가 전도해서 예수님을 모시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주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는데 예수를 믿고 처음에 기도가 응답되어서 친척으로부터 쌀 한 부대를 받아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늘 하는데 새벽에 나오는 그 시간에 이초이씨가 뭘 하나 이고 왔어요. 그래서 내가 “뭘 가져왔느냐?” 하니까 울면서 그 부대를 비우는데 보니까 흙이 잔뜩 묻은 쌀을 거기에 담고 왔는데 흙인지 쌀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왜 이 흙더미가 된 쌀을 가지고 왔느냐?” 하니까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바치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랬죠.” 어찌나 아까운지 이 쌀을 한 부대를 받았는데 아까워서 이것을 도로 집에 다른 부대에가 부었다가 또 도로 붓고 오면서 쌀이 아까워서 너무 울다가 눈에 눈물이 가려서 앞을 잘 못 봐 논두렁에 넘어져가지고서 쌀을 논두렁에 퍼부어 흩어졌으니까 거기에 흙하고 같이 도로 담아요. 도로 담아서 쌀과 흙이 합쳐서 흙인지 쌀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렇게 아까운 쌀을 십일조를 바치니 하나님이 그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아까운 것을 생각 안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제가 듣는데 앞에서 기도하기를 “하나님, 욕심도 많으십니다. 못 살아 애쓰는 딸내미에게 그냥 줄 것이지, 여기에다가 뭐 십일조를 또 빼앗아갑니까?” 그래서 내가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당신이 이렇게 하나님 순복하고 섬김으로 하나님은 당신이 하나님 사랑하는 줄 알고 그 사랑의 부대에 앞으로 넘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제가 개척할 때, 그때 다 미국으로 이민가가지고서 이제 미국에서 잘 산다고요. 그래서 요사이는 쌀과 흙을 섞어서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고, 아주 좋은 쌀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 다 보고 계십니다. 마음을 읽어요. 아까우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 그걸 하나님이 드리는 그 정성에 감복하시고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을 또한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도 ‘심고 거두는 법칙’의 하나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과 말을 또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8장 20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입술에서 “나는 못 산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괴롭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냥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자기의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좋다. 성공한다. 승리한다.”라고 말하면,  그 말에 따라서 우리를 그러한 환경과 운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말하는 것을 듣고 계시고 우리가 말하는 것에 따라서 일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그러므로 말을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3.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우리가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고, 그 다음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사도행전 10장 38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질병을 고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병을 앓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병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어서 마귀가 병을 배후에서 들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친다. 귀신들이 왜 주님을 두려워했느냐? 주님의 하시는 일을 훼방하려고 오는데 우리가 대적을 하면 촛불이 바람에 녹아지는 것과 같이 귀신이 녹아지는 것입니다. 존재가 녹아져버려요. 그러므로 견디지 못합니다. 사라지고 말지요. 여러분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데 귀신이 그냥 달려들고 싸울 수 있느냐 하면, 못 하는 것은 예수 이름과 그 보혈의 능력으로 귀신을 꾸짖으면 귀신이 녹아지는 것입니다.

 그건 성경에는 그렇게 기록하지 않았지만 제가 기도하면서 내 눈으로 보았어요. 귀신이 내게 덤벼들어 할퀴고 달려드는 것, 제가 예수 이름으로 명령을 내리니까 내 눈앞에서 녹아지더라고요. 그 전에는 제가 귀신과 싸울 때, 굉장히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또 힘들어서 괴로워했는데 그 체험을 하고 난 다음에는 귀신은 무섭지가 않아요. 귀신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려고 달려들면 예수 이름과 보혈 능력으로 호통을 치고, 물리치면 등불이 바람 앞에 꺼지는 것처럼 그 존재가 녹아지기 때문에 견디지 못해서 일곱 길로 도망을 치고 마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일의 영혼의 괴로움에는 육체의 괴로운 생활에, 괴로움에 귀신이 배후에서 나쁘게 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귀신을 쫓아내라고 늘 부탁한 것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병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기 때문에 마귀를 쫓아내야 됩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라고 했습니다.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을 고쳤으니까 배후에 힘을 주던 귀신이 우리가 쫓아내니까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이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여러분을 피하는 것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70년 우리나라 남성의 기대수명은 58.7세로 60세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기대수명이 81.3세로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100세 시대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건강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건강하게 살아야 복이 되지, 병들어서 살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요즘 질병 없이 사는 “건강수명”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경우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10년 정도로 평균 10년은 질병과 함께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다고 통계청에서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많은 부분을 병을 고치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병을 고치는 사역을 하기 원하셨습니다. 두 제자를 부르실 때 보면,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마가복음 3장14~15절)고 부탁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라는 말을 부득불 계속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 아닙니까? 여러분 다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70인의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도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누가복음 10장 8절~9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과 병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요사이는 교회가 너무 점잖아서 귀신과 같이 예배를 보고, 쫓아내지 않고 조용하게 좀 있어줘요. 부탁을 하고, 그런 거짓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병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놓고 있고, 귀신도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그러니까 귀신이 귀신인지 교회가 교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공생애의 2/3는 병 고치는데 보냈습니다. 부끄럽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2/3는 병을 고치는데 세월을 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한 일이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귀신이 여러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들을 용납을 하면 안 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야 돼요. 그리고 기도와 치료와 함께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에는 영양이 충분하고 환경이 좋고 또 치료의 약도 많고 해서 이제 얼마 안 있으면 100살을 살게 되겠네요. 100살을 사는 노인이 되도 육신의 질병이 마음, 육신을 괴롭히면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 일어서도 아프고, 앉아도 아프고, 누워도 아프고, 자도 아프고, 깨도 아프고,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다른 병도 아닌 암이 걸려있으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도 나이를 먹을수록 예수이름으로 무장하고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과 말씀을 가지고서 귀신을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병 없는 나이 많이 먹은 세대에도 행복을 누리고 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 고치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마가복음 16장 17절~18절)고 담대한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려면 귀신을 쫓아내야 돼요. 방언기도도 해야 되고,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음식에 독이 있어도 무사히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라고 하니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약한 생각, 약한 꿈, 부정적인 고백을 하게 되면 그것이 마귀에게 틈을 내주는 것입니다. 

결론
 전인구원은 하나님의 뜻이므로 항상 최고의 건강을 꿈꾸고 생각하고 입술로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은 우리 신체에 영향을 미쳐서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아플까’의 저자 대리니언 박사는 데이비드 코필드 박사와 함께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증명했습니다. 심리적 충격이 실제 물리적인 충격을 가한 것과 같은 정도로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부정적인 말의 파괴력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야고보서 3장 8절에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잘 사용하지 못하면 죽이는 독에 걸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나가는 말이 어떤 말인지 깊이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반응은 분노인데, 분노는 만병의 근원이 됩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심장병에 잘 걸리고 사망률도 높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딜리스트롬 박사가 ‘분노수치와 사망률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 분노수치를 높은 그들은, 낮은 그룹에 비해 사망률이 7배나 심장질환 환자는 5배나 많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분노하는 사람은 분노 안 하는 사람보다 7배나 빨리 죽는다는 것입니다. 분노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성경에도 이미 나온 말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언 17장 22절)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전인구원을 이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십자가 은혜를 늘 기억하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고백을 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7.09.24. pm 16:47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