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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가 숨긴 그물 ④(99)

 


 마웅기에서 라쑈까지는 직선 거리로 150 킬로미터 정도였으나 계속해서 험한 샛길로 우회했기 때문에 지프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라쑈에 들어섰다.  
 “근데, 여기가 미얀마 맞아요?”
 라쑈에 처음 와 보는 깜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거리 곳곳에 한자로 쓴 간판이 즐비해서 마치 중국의 한 도시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우방젠 병원장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이곳이 중국과 가깝고, 중국과의 교역 거점이기 때문이야. 라쑈는 영국과 미국의 연합군이 1939년에 건설한 버마 로드의 출발점이고, 중국으로 넘어가는 국경 마을 무세까지는 직선 거리로 120 킬로미터 밖에 안되거든”
 “아…”

 깜보는 인천을 떠나기 전 아빠에게서 ‘버마 로드’에 관해 들은 적이 있었다. 1937년 중일 전쟁 때 일본이 중국의 연안지방을 점령하자 연합군은 국부군 지원을 위해 라쑈에서 중국의 쿤밍에 이르는 보급로를 뚫기 시작했다. 2년 만에 도로가 완공되자 연합군이 양곤으로 보낸 군수 물자는 라쑈로 수송되고, 그 라쑈에서 버마 로드를 거쳐 쿤밍으로 보내졌던 것이다.  
 “라쑈는 군수 보급로 때문에 무역 거점이 되었군요?”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고난을 겪었지”

 본래 샨 주의 중심은 샨 족의 왕 ‘사오파’의 궁이 있는 시뻐였다. 시뻐에서 북동쪽으로 70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산간 마을 라쑈는 버마 로드 때문에 새로운 교통의 요지가 되었으나 그 때문에 연합군에서 일본군으로 그리고 다시 국부군으로 점령군이 바뀌는 과정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다시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싸움터가 되었지”
 “그 이후로는 괜찮았나요?”
 “2013년에는 종교 충돌도 있었고”
 “미얀마는 거의 90 퍼센트가 불교라던데 무슨 충돌이?”
 “그 해 5월 28일에 한 무슬림 남자가 주유소에서 일하는 불교도 여성과 다투다가 그녀에게 기름을 끼얹고 불태운 사건이 일어났거든. 그러자 격분한 불교도들이 이슬람의 모스크와 그들의 주거지를 습격하고 불을 지르는 등 폭동이 일어났고, 결국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사태로까지 확대되었지”    

 지프가 라쑈 중심가를 지나 기차 역 가는 길로 들어섰을 때 멘사는 도로변에 차를 세워 놓고, 그의 부하 뮌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쪽은 어떤가? 쉐냥 역에 도착했어?”  
 따치레익에서 출발하여 쉐냥으로 가는 길은 라쑈까지 오는 거리의 절반도 안될 정도였다. 그런데도 찌옹티 선교사와 마싼다가 인솔하는 두 대의 버스가 쉐냥까지 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그만큼 여러 사건을 겪었다는 증거였다. 많은 아이들과 함께 가면서 두 개의 지뢰를 발견하여 제거하고 총격 사건까지 겪은 외에도 심각한 고비들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다른 지역들은 어때?”

 그는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모두 보고받고 있었다. 잠시 차에서 내린 우방젠 병원장은 네삐더 대사관의 백승기 참사관과 통화를 했다.
 “지금 멘사가 운전하는 지프로 라쑈에 들어왔습니다. 깜보와 함께 있고 멘사의 손자 틴또 그리고 샨 주 KK의 회장인 니니도 이 차에 동승하고 있습니다. 내일 새벽 5시에 출발하는 132호 열차를 타게 될 것입니다”
 그가 다시 지프에 올랐을 때 멘사도 그의 긴 통화를 끝내는 중이었다. “지금 랴쑈 역으로 가는 중이야. 알았네”
 멘사가 지프의 시동을 걸 때 우방젠 병원장이 그에게 물었다.

 

기사입력 : 2017.09.10. am 10:36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