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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고 채우시는 하나님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장 13절)

 이 세상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 오도 가도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주실 것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의 마음속에서 가장 버리고 싶은 한 가지는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뿐 아니라, 나이 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있거나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불안이 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퇴 후의 삶에 대하여 걱정과 불안이 많은데, 전 세계 17개국을 대상하여 조사를 한 결과에 의하면 “은퇴라는 단어로부터 무엇을 떠올리느냐?”라는 질문에 선진국에서는 자유, 만족, 행복이라는 긍정적인 대답이 나온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 어려움, 두려움, 외로움을 떠올린다고 대답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불안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누려야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에서 건지시고 삶에 부족함이 없도록 풍성히 채워주실 것을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1. 건지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 위에 있으니 하나님은 우리 사정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돌보시며 건지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시편 91편 14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히브리어로 사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하샤크’인데 이것은 ‘꼭 달라붙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께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 속에서나, 물속에서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초등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오려면 큰 시내를 건너야 됩니다. 비가 오는 계절에는 시내에 물이 넘치기 때문에 저는 못 건너옵니다. 그러나 시내 근처에 고모님이 살고 있습니다. 고모 아버지는 키가 크고 몸집이 큼직하고 얼굴이 핏기가 좋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학교 갔다가 고모 집으로 가서 “고모 아버지 나 데려다 주세요” 그러면 “그래 가자.”라고 말씀하시며 저를 등에 업습니다. 그런데 시내에 오면 고모 아버지 등에 업힐 때 그냥 업히면 안 됩니다. 물이 아주 무섭게 넘치기 때문에 찰싹 붙어야 되요. 하샤크입니다. 찰싹 붙어가지고서 목을 손으로 꽉 끼고 있으면 고모 아버지가 물속에 들어가서 한발자국, 두발자국 가는데 온 천지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으나 무사히 도랑을 건너갑니다. 항상 비만 오면 우리 고모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 마음에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려움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그냥 가지 말고 바싹 붙어야 됩니다. “하나님 나 하샤크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달라붙은 여러분을 건져주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을 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정말 유능한 젊은이로서 느부갓네살에 의해 선택되어서 일을 하는데 신앙이 얼마나 좋았던지 절대로 우상숭배를 안 합니다.

 한번은 느부갓네살이 두라 평지에 큰 금신상을 만들고, 바벨론 제국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신상에 예배를 드리고 절을 하게 명령을 내립니다. 만일 절을 하지 않으면 활활타는 풀무불에 던지겠다고 엄명을 내립니다. 드디어 큰 나팔소리를 울리고 모든 사람들은 금신상에 절을 합니다. 그런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눈도 깜짝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느부갓네살에서 고합니다. 왕이 그들을 체포케 해서 심문을 합니다.

 “ 왜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신상에 절하지 않았느냐?” “우리는 다른 것은 다 순종해도 하나님 배반하는 일은 못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하지 다른 신에게는 에배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왕이 대노합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일곱배나 더 뜨거운 풀무에 던지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우리의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분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우리를 불에서 건질 것이요. 건지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하니다.

 그래 왕이 분노해서 풀무에 장작을 더 뜨겁게 하고 이 세 사람을 던져 넣었는데, 불에 던져진 세 사람이 타죽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한 사람이 더 나타나서 그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3장 17절에는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청년 다니엘도 우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사자굴 속에 던졌는데 사자가 그들을 물고 찢지 못했습니다. 시편116편 8절에 “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시편34편 4절에 “내가 야훼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채우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건지시며 그럴 뿐 아니라 우리를 또 채우십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뜻하는 그릇은 소망과 꿈입니다. 그릇을 준비해야 채웁니다. 아무리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도 그릇을 준비하지 않으면 한 방울의 물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기 위해서는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그릇이 바로 꿈과 소원인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이유가 백성이 꿈이 없으면 그릇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담을 수가 없으므로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는데 꿈과 소원이라는 그릇을 준비하면 하나님께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45편 18절로 19절에 “야훼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가까이 계셔서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응답해주신다는 것을 마음에 항상 간직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구하라

 우리가 시련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 나가서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염려하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 믿음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고아의 아버지가 조지 뮬러 목사님은 2천 명의 고아들을 돌보았는데 먹고, 입히고, 잠재우고, 교육시키는데 많은 돈이 필요했으나, 한번도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엎드려 기도해서 응답을 받아 고아들을 길러낸 것입니다.

 그의 일기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나는 작은 정원을 거닐면서 히브리서 13장 8절을 묵상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 예수님은 사랑과 능력으로 지금껏 고아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공급해 주셨다. 그러니 그분은 변함없는 사랑과 능력으로 장차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주실 것이다. 변함없는 사랑의 주님을 떠올리자 내 영혼에 기쁨이 흘러넘쳤다. 이 생각을 하고 나서 약 1분 뒤에 편지 한 통이 당도했는데, 봉투에는 20파운드 지폐가 들어 있었다. 그 돈은 당시 필요로 하던 금액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인 우리를 건지시고 모든 필요를 채우십니다. 마태복음 6장 30절~32절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요한복음 16장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7절로 8절에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릇을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4장을 보면 선지자의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습니다. 남편이 죽자 빚쟁이가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 엘리사는 “집에 뭐가 있느냐?” “기름병이 있는데 기름 조금 담겨있는 병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네 두 아들에게 명령해서 온 동네에 그릇이란 그릇은 다 빌려오너라. 빌려오되 적게 빌리지 말고 많이 빌려라. 집에 그릇을 전부 줄을 세워놓고 기름병에 있는 기름을 그릇에 부어라.” 그러고 보냈습니다. 온 동리에 “혹시 그릇이 있습니까? 좀 빌려주십시오. 그릇 좀 빌려주십시오.” 온 마당과 부엌과 방에 그릇이 아주 꽉 들어찼습니다. 그래서 그릇에 기름병의 기름을 붓는데 이 조그마한 기름 남은 기름이 한이 없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 먹이고 열 두 바구니 남은 것과 같이 자꾸 부어도 나오고 기름을 자꾸 부어도 나오고 기름 장사처럼 됐습니다. 그래서 그 과부가 마지막 그릇에 기름을 붓고 난 다음 “얘들아, 또 기름 담을 그릇 가져오너라.” “어머니 그릇이 없습니다.”라고 할 때 기름이 그쳐버리고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려면 문제가 없습니다. 메추라기가 광야에서 어디 그렇게 많이 모여올 수 있습니까? 만나가 매일마나 40년 동안 삼시 삼 때 배부르게 먹도록 내려왔는데 희한하지 않습니까? 광야 바위에서 시냇물이 흘러나오고, 하나님께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우리 정말 참 놀라운 영의 아버지를 모시고 있었는데 우리가 너무 무식해서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소망과 꿈이 그릇인데, 소망과 꿈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풍성히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68편 9절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라고 말씀했는데 여기에 ‘흡족한 비’의 히브리어는 ‘값없이 주는 비’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 주실 뿐 아니라 값없이 은혜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네게 부족함이 없었던 구약시대를 생각해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돈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가난한 사람도 돈이 없다고 하고 부자도 돈이 없다고 말합니다. 건강이 부족하다는 사람도 있고 학벌이 부족하다는 사람도 있고 사랑이 부족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는 삶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후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는데 광야는 불뱀과 전갈이 있어 위험한 곳일 뿐만 아니라 먹을 것과 마실 것과 모든 것이 부족한 곳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광야의 생활을 이렇게 말합니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신명기 2장 7절)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야에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복을 주시면 우리도 광야와 같은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부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어려운 환경을 마음에 그려보고 부정적인 말을 자꾸 하면 어려움을 당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들리지 않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믿습니다. 풍성합니다.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꿈은 하나님 말씀을 읽음으로써 마음속에 얼마든지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욕심과 탐욕을 가지고 오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여 꿈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기도하고 입술로 긍정적인 시인을 하면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워지면 염려근심을 하는데 염려근심이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조사해 보았더니, 40%는 과거에 대한 것이고, 50%는 미래에 대한 것이고, 10%만이 현재에 관련된 두려움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고 현재는 미래와 함께 우리가 염려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태복음 6장27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염려는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58장 9절에는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야훼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응답하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힘차게  살아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 나가면서 우리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생각을 종종 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신앙생활에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 부정적인 되면 모든 일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라봄의 법칙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한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퍼부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마음에 꿈을 ‘하샤크’하고  확 끌어안아야 됩니다. 하나님 등을 확 끌어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꿈을 꾸면 하나님이 믿어라. 두려워하지 말고 믿어라.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말씀을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잘한다.”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세상은 늘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러나 늘 우리를 건지시고, 채우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좋으신 아버지이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철저하게 주님과 하나되어서 늘 승리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7.09.03. pm 13:20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