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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용기

“야훼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야훼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여호수아 1장 1∼9절)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희망을 잃어버린다면 앞이 캄캄해지고 삶의 빛은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이 지구상에 살면서 희망을 잃어버리면 내일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기가 있으면 어떤 대적이나 방해가 다가와도 깜짝 놀라게 도전해 나가며 승리를 외칠 수가 있습니다. 희망이 있으면 용기가 생겨나고, 희망과 용기를 가슴에 품고 손으로 맞잡으면 새로운 변화나 창조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최근 설문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사표를 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표를 내고 싶은 상황 1위가 회사에 비전이 없다고 느낄 때 사표가 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낮은 연봉이나 잦은 야근이 아니라 더 나아질 것이라는 가능성이 없다,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사표를 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오늘은 내일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으면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잃어버린다면 무기력해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1. 희망으로 오신 예수님

 희망이 없는 삶은 만사를 다 빼앗긴 삶인 것입니다. 희망의 나무를 우리가 한번 바라봅시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를 저주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신명기 21장 23절에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십자가는 희망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예수님께서 대신 감당하시고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십자가는 저주에서 희망을 주는 나무로 변화되고만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나무 앞에 나가면 참 놀라운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 나무를 통하여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희망이 넘쳐 나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희망이 잃어버릴 수가 없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을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보혈의 용서와 의의 희망이 있습니다. 죄가 있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죽어야 마땅한 죄인도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에서 용서와 의의 희망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십자가 밑에 나가면 희망이 있습니다. 용서받고 의로움 받는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우편 강도, 좌편 강도가 같이 못 박혔는데 그 강도 중 한 사람은 예수님께 향해서 불평을 말했습니다. “너 하나님 아들이면 우리 다같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라.” 그러니까 다른 강도가 그 강도의 말을 듣자, “야 이놈아 너와 나는 평생에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놈이고 우리는 이 나무에 매달려 죽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쁜 일이라고는 한 번도 한적이 없는 분이다.” 그리고 주님보고 “주님, 주님의 나라에 임하시거든 나를 기억해주시옵소서.” 주님이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희망이 순식간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 많은 죄와 불의와 추악을 순식간에 십자가의 피로써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지은 사람이 용서와 의의 희망을 십자가 밑에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보혈의 성결과 성령 충만의 희망인 것입니다. 보혈이 우리의 행위를 깨끗하게 해주시고 그 결과로 성령 충만한 은혜를 주셔서 성령 받고 살아갈 희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디도서 3장 5절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예수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실제로 다 씻어버린다. 성령이 새롭게 만들어 주셔서 성령 받을 수 있는 은총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 보혈 밑에 나가면 보혈의 대속으로 치료의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몸이 아프고 괴롭고 좌절되고 절망적인 말을 의사가 한다고 하더라도 십자가 밑에 나가면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희망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는 나음을 얻었다. 그러므로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사이 수술하는 위기에 처한 환자들이 우리교회에 와서 기도를 받고 병이 사라진 사건이 여러 번 있어서 그것이 알려져 가지고서 요새는 희망을 가지고 안수받겠다고 한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희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즐겁고 고마운 일입니다.

 그 다음 나무에 매달려 흘린 피가 우리에게 내린 저주를 다 대신 청산했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는데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그 자손들 전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주 받은 자는 나무에 매달으라고 했는데 신약시대는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나무에 매달렸으므로 나무에 매달린 예수님이 저주 대신에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에게 주게 된 것입니다. 저주를 청산 받고 잘 살아볼 수 있는 희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십자가 밑에서 죽고 장사된 후 되살아난 희망이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6장 22절에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나무입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함이 희망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온통 희망의 세계를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이 모든 복이 은혜와 사랑의 선물로 주어지고 오직 믿음으로 소유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을 주시며, 우리는 믿기만 하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는 시대가 왔다고 하더라도 예수 십자가의 위대성은 십자가를 붙들고 가면 희망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죄의 용서를 받고 의로움을 받는 희망이 나오고 씻어 거룩함을 얻고 성령 받을 희망이 나오고 채찍에 맞았으니 저주에서 해방될 희망이 오고 병에서 고침 받을 희망이 오고 부활 영생할 희망이 있다. 우리 기독교는 온통 희망으로 둘러싸인 신앙인 것입니다.

2. 함께하시는 성령님

 그러고 난 다음, 희망을 가졌으니깐, 용기를 갖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에 보면 제자들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다 두려워해서 예수님을 포기하고 도망치고 다 뿔뿔이 헤어졌는데, 그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하나님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그들은 굉장히 담대해졌습니다. 그렇게 희망이 없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희망을 얻고, 희망을 얻고 난 다음에는 성령세례를 받으니깐 용기가 생겨나서 성령을 모시고 굉장히 담대해져서 밖에 나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였던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4절로 5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믿고 난 다음에는 그 대가로써 용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셨을 때,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쳤는데, 하지만 성령을 받고 난 후에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는 보잘것없고 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전도서 4장 12절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도 서로 함께 있으면 강한 법인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갈렙은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헤브론을 정복하겠다고 여호수아에 허락을 구합니다. 헤브론에는 체격이 크고 전쟁에 능한 아낙자손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담대하게 갈렙이 말했습니다. 갈렙의 이런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호수아 14장 12절 “그 날에 야훼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야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 아낙자손을 절대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어떤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3. 4차원의 영성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가져라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에서 희망을 얻고 4차원의 영성이 주는 용기를 얻어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점령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생각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생각하면 십자가의 희망을 통해서 긍정적이 되고, 적극적이 되고, 소망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돌보아야 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저런 여유만 있으면 십자가를 생각하고, 이 생각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희망이 생기고, 희망이 있으면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희망이 생각 속에 있으면 용기가 생기고, 용기가 있으면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일을 계획하고 행할 용기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는데, 누구든지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살려면 꿈을 담대하게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그릇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이 있으면 하나님이 응답할 그릇이 있는 거예요. 그릇이 없으면 아무것도 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하는 것은 “네 소원대로, 네 꿈 꾼 대로 될지어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꿈을 꾸어야 하나님이 그것을 그릇으로 삼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소원이라는 것은 마음의 꿈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세계를 또 우리가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다스리고, 꿈을 다스리고, 그 다음엔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도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가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창조적인 선언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경에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말을 통해서 역사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오면 주님은 꼭 “내가 네게 무엇 해주기를 원하느냐?”, “주여 믿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고 꿈꾸는 것을 기도하면 마음에 확신이 생기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말이 입에서 나오면 그 말이 변화와 기적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1절로 9절에 보면 “야훼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야훼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할 사람은 강하고 담대해야 돼요. 강하고 담대하게 생각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꿈꾸고, 강하고 담대하게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가지고 용기를 가지면 강하고 담대하게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인생을 살다 보면,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욥기 14장 1절에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걱정과 근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떨 때는 문제가 너무 커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골리앗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 앞에 골리앗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옆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땅만 바라보고 가면 골리앗같은 원수가 많이 있습니다. 땅만 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고, 옆을 바라보고, 보좌에 계신 하나님, 내 손 잡고 계신 성령님,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면은 다윗과 같이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골리앗을 앞세우고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쳐내려오니 사울 왕과 동시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가서 싸우겠다.”고 한 것은 다윗입니다. 초립동 다윗입니다. 16 내지 17살 먹은 다윗은 사울 왕이 말하기를 “야, 너보다 더 훌륭한 장군들이 저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도망을 치는데, 어린 아기같은 네가 어떻게 싸운단 말이냐?” 그럴 때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아버지의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을 물고 가면 따라가서 사자와 곰을 쳐 죽이고 그 양들을 구출해 내었는데, 사자와 곰하고도 싸워서 이긴 경험이 있는데 저 골리앗 저것도 사자와 곰 중에 한 놈처럼 될 것입니다. 내가 나가 싸워 나가겠으니 나를 보내달라”고. 다윗은 하나님을 믿은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체험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면 곰과 싸워도 쳐 주시는데, 골리앗은 문제없다고 그래서 골리앗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가 나와서 골리앗을 보고 말하기를 “너는 창과 긴 창을 가지고 나오지만, 나는 네가 조롱하는 만군의 야훼, 이스라엘 하나님을 대표해서 나온다.”라며 물맷돌에 물매를 매겨가지고서 흔들어 들면서 “내 하나님 이름을 받아라.”하고 던지니깐 그 돌멩이가 날아가서 이마를 정통으로 때렸습니다. 골리앗은 미사일과 같은 창과 칼과 단창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거 쓸 데 없어요. 아주 정통으로 이마를 때리니깐 미사일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북쪽에서 아무리 미사일을 가지고 협박을 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맷돌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은 임종 직전에 남아 있던 온 힘을 다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웨슬리 목사님의 말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고, 환경과 우리를 비교해서 낙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는 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매우 불행할 것입니다. 파스칼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은 불쌍한 우주의 고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장 18절)며 성령님을 보내어 우리와 함께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바람으로 비유했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한복음 3장 8절)
 여러분, 바람을 한번 숨 쉬어 볼까요? 하나, 둘, 셋. 후~코로 숨 쉬어서 입으로 내뿜습니다. 후~분명히 바람이 있지요? 없습니까? 분명히 있지요? 그 바람이 예수님의 성령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주님~저와 함께 하시옵소서.” 그러면 숨을 들이켜 쉬었다가 뿜어내는 거와 같이 이 자리에 같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환경만 바라보지 말고 “나와 같이 계신 성령님 권능으로 저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 이상의 능력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내일도 없습니다. 유럽의 부유한 나라들을 보면 먹고 사는 것이 풍족한데도 가난한 나라보다 자살률이 높습니다. 우리나라도 자살률이 매우 높은데, 자살한 사람들의 유서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영국의 처칠 수상도 “히틀러 나치 정권에 대항하여 영국의 최고의 무기는 무엇이냐?”라고 물으니깐, “영국 국민이 가슴 속에 가지고 있는 희망”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국민도 지금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는 희망인 것입니다. 독일의 몰트만 박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가 되어 3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하는데, 600만 유대인들은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도 희망을 잃어버리고 죽으려고 하는데, 영국 목사가 성경책 한 권을 갖다 주어서, 그 몰트만이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이 부활한 사건을 읽고 난 다음 희망이 생겨서, 희망이 마음에 살아갈 용기를 주고, 희망과 용기를 가슴에 품고, 강하고 담대하게 기도하고 인생을 살아서 2차 대전이 끝나고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는데, 역사적인 유명한 신학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기만 하면 용기가 생기고, 희망과 용기가 생기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꿈을 꾸고,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고백하며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잊어버리지 말아야 됩니다. 주님께서 “볼지어다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주님이 내 옆에 계신 것을 늘 생각해야 돼요. 꿈꾸어야 돼요. 믿어야 돼요. 말해야 돼요. 우리 사람이 입의 말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서 구원에 이르고,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믿어야 뭘 하는 것입니까? 믿고 말을 하기 때문에 믿은 대로 된다고 그럽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생각 속에 꽉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데, 그 말씀을 시인하고, 그 다음 꿈을 꾸어야 돼요. 내가 소원하는 꿈을 꾸어야 되고, 그 다음에 믿음은 입술로 기도해야 돼요. 그러고는 입술로 창조적인 선언을 하면 변화가 다가오고, 창조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종교적인 형식이나 의식을 따질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우리 환경을 변화시키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 모시고 살아야만 변화가 있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세상을 바라보면 낙심되고 절망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그리고 4차원의 영성이 우리의 영원한 희망임을 고백합니다. 성령안에서 늘 긍정적이고 창조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하며 행동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7.08.27. pm 13:5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