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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좁은 문 좁은 길(마7:13∼14)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은 길로 가는 삶이다. 모든 일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자기 방식으로 행할 기회가 오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서, 조금만 참으면 다시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넓은 길이 오겠지 하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다.

 좋은 크리스천이 되려면 큰 문과 넓은 길을 피해야 한다. 크고 넓은 문은 유혹받기 쉽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바알 숭배를 했다. 대다수의 백성들이 국가에서 장려하는 바알 숭배의 넓은 문으로 들어갔고, 오직 엘리야만 남게 됐다(왕상 19:10). 세상의 큰 문으로는 많은 것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믿음 생활을 할 때 별로 희생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쉽게 믿을 수 있다면 쉽게 변할 수도 있다.

 성경에서 넓은 길은 세속적인 길을 말한다. 그저 육신의 정욕을 따라가는 쉽고 안일한 길이다. 그만큼 넓은 길은 저급한 가치의 길이다. 그 길은 변질하지 않게 하는 소금이 빠진 가식과 허식과 공허의 길이며, 많은 사람이 빠지기 쉬운 망령된 길이다(히 12:15∼17).

 교회는 누구나 올 수 있으나 무작정 큰 문과 넓은 길이 아니다. 왕의 혼인잔치와 같이 예복을 준비해야 한다(마 22:9∼12).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 기독교를 믿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게 됐다. 얼마 지난 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381년 국가종교화)가 된 후부터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사회적 유익을 얻게 됐다.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넓은 길이 된 것이다. 그것이 중세 교회의 타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좁은 문은 몸을 굽히거나 움츠리는 겸손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베들레헴 성탄교회의 겸손의 문은 1.2m 높이여서 몸을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 더구나 좁은 문은 입구가 좁아서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없다. 내려놓아야 한다. 좁은 문은 대중과 함께 어울려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면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 마음속에서 잘못된 것을 하나 둘씩 제거해야 한다. 악한 습관, 미움과 분노, 자기주장을 벗어버려야 들어갈 수 있다.

 좁은 문을 나온 후 길이 협착한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좁은 길을 간다는 것은 정직과 진실, 사랑과 인내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 길은 외롭고 고독한 길이며, 가는 길에 고난과 박해가 수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마 5:11∼12). 그러나 끝까지 좁은 길을 가야 한다. 한번 좁은 길을 들어간 후 나중에 넓은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좁은 길을 가야한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영적인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며, 방종과 휴전은 없다(엡 6:12∼13).

 왜 좁은 길을 가야 하는가? 그것은 좁은 길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순례자들은 기쁘게 좁은 길을 걸어가면서 찬송을 부른다.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이 결코 알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이 그들에게 있다.
 우리는 지금 좁은 길로 가고 있습니까? 처음 믿을 때와 똑같은 경건함과 떨림, 사랑과 감격, 온유함과 겸손이 있습니까?

 

기사입력 : 2017.08.27. am 11:02 (입력)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