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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성경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들 삶의 배후에 하나님이 섭리하셔서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국가 모두 다 눈에 안 보이는 손길이 그들이 마음으로 작정한 일에 따라 간섭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발걸음을 옮기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서 설교하지만 저 뒤에 감화감동을 주시고 말씀을 이끄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E.M. 바운즈 목사님은 “오직 주님만이 산을 옮기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산을 움직이시지만 우리 기도는 주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의 전쟁을 할 때입니다. 여호수아가 군대를 조직해서 전쟁에 났지만, 모세가 손을 들면 전쟁에서 이기고, 팔이 아파서 팔을 내려놓으니깐 이스라엘 백성이 졌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한 팔씩 들고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할 때 완전히 전쟁에서 이겼던 것을 봅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만으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1. 응답하시는 하나님

 어떤 도시에 불쌍한 과부가 자기 원통하고 애달픈 사연을 갚아달라고 재판자에게 탄원을 했습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누가복음 18장 3절~5절)
 기도의 비결 중에 응답이 올 때까지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고 고통을 당하니깐 거기에 원한을 갚아달라는 것은 배후의 의미도 있겠지만 괴롭힐 정도로 꾸준히 가고 또 가고, 가고 또 가고 나중에 견딜 수 없어서 응답을 해준다는 말씀을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친구가 밤에 여행을 하다가 왔는데 먹을 것이 없어, 이웃집은 다 잠을 자고 있는데, 그러나 실례를 무릅쓰고 문을 두드리면서 “누구냐?” “내 친구가 밤에 여행을 하다가 우리 집에 왔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먹을 것을 안 주면 배가 고파서 이 밤을 못 새울 것인데, 떡을 좀 빌려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이 때 “아이 여보시오, 지금 밤중에 다 자녀들하고 들어와서 잠을 자는데 떡을 달라고 소란을 피우면 어떻게 합니까? 내일 아침에 오십시오.”, “내일 아침은 너무 늦습니다. 좀 수고해주십시오.” 못 들은 체 합니다.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아주 친애하는 이웃이여, 자비를 베푸사 나의 애처로운 처지를 도와주소서.” 그렇게 해야 들어주는 것 아닙니다. 아주 귀찮게 만들어야 돼요.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떡. “아이고 이놈이 떡을 안 얻고는 밤새도록 저렇게 해서 잠을 못 자겠으니 귀찮지만 떡을 주어야 되겠다.”고 그래서 일어나서 부엌에 가서 필요한 떡을 갖다 주면서 “네가 친구이고 이웃이기 때문에 떡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끄러워서 떡을 준다.”

 우리 주님께서 기도의 비결을 말할 때 이 과부와 함께 밤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해서도 시끄럽게 해야 된다. 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가면 시끄러워서 하나님이 귀가 먹었냐? 그렇게 고함을 치게?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귀는 안 먹으셨지만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자기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목숨을 다 바쳐서 애를 쓸 때 그 진정한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갚아주는 것입니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 18장 6절~8절)

 점점 세상이 각박하게 되어서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는 사람이 별로 없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장 11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로마서 8장 32절)
 속히 응답되는 기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도가 많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면 낙심합니다. 그러나 낙심했다가 도로 일어나서 기도를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기다림이 필요한 겁니다.

 기도는 산모가 아기를 낳는 것과 같습니다. 아기를 만나는 기쁨을 얻으려면, 열 달 동안 뱃속에 발길로 차고 뒹굴고 하는 장난을 하는 태에서 노는 애를 쓰다듬어주고 참으면서 기다립니다. 빨리 나오라고 고함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 응답 받는 것도 우리 마음에 잉태하는 것입니다. 제 소원하는 바를 이루어지는 모습을 마음에 꿈꾸어서 기도로써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기다린다는 해산의 수고를 통해서 응답의 기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을 얻기까지 25년을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요셉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도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기까지 40년 동안 양을 쳤고, 다윗도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십 년간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 힘든 시간들을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면서 견뎌냈을 때, 마침내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족함이 없도록 다듬으시는 것입니다. 

2. 여러 가지 삶의 시련들

 여러 가지 종류의 시련이 다가오는데,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그 시련을 우리가 알고 참아야 되는 것입니다. 욥기 5장 7절에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생 없는 사람 없습니다. 지위, 명예, 권세, 돈 이런 것이 있다고 해서 고생이 안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일생을 사는 동안에 고생이 다 따르는 것입니다.
 제가 전 세계를 걸쳐서 목회에 크게 성공한 목사님들, 자기 당대에 1만 명 이상의 교인을 모아서 목회한 주의 종들을 보니깐 편안하게 죽은 사람이 거의 없어요. 꼭 고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 바울은 주의 사업을 하다가 풍랑을 당하기도 하고, 강도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고, 모닥불을 피워놓으면 불에서 독사가 나와서 물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사업한다고 해서 편안한 사업을 한 목사는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훈련하실 때도 어려움을 만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한복음 6장 5절~9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를 시험해 봅니다. 들판에 군중이 모여 있는데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합치면 수만명이 모여 있는데, 어디에서 떡을 사서 그들을 먹일 수가 있겠습니까?
 빌립은 그럴 돈도 없고, 떡 살 곳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둘은 주님을 시험할 때 모두 다 땅의 것을 바라보고 시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땅을 보고 사는 사람과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사람인데, 땅을 쳐다보고 사는 사람은 시험에 넘어집니다. 어떠한 삶의 환경이 있어도 하늘을 쳐다보고 살아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 섭리를 따라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늘을 쳐다보지 않고 땅만 쳐다보면 마음에 낙심하고 절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로 3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해볼 뿐만 아니라 마귀가 주의 종들을 꼭 시험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꾐에 빠져서 탐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명령을 거역해서 타락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가셔서 40주 40야 금식하고 기도하고 난 다음에 마귀에게 시험 당하셨습니다.

 마귀가 “배가 고프니깐 돌덩어리라도 기도의 힘으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고 유혹할 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물리치십니다. 이후 마귀는 예수님은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 “뛰어 내려라. 천사들이 와서 발을 받아줘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끝으로 마귀는 높은 산 위에 올라가서 천하만국을 보이고 자기에게 절하면 부귀, 영화, 공명을 천하에 있는 것을 다 주겠다고 말했는데, 예수님은 “사탄에 물러가라.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고 섬겨야 할 것이라”라며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도 시험해보고, 마귀도 와서 시험해보는데,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쳐다보고 살면 어떠한 시험이 와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련을 대하는 두 가지 자세가 있는데, 모든 인생에는 시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지만, 시련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나치의 수용소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빅터 프랭클 박사는 “고난은 포기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주가 되지만, 고난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에게는 놀라운 축복이 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인생이라는 길에서 돌을 만나면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이런 걸림돌을 이 길에다 누가 가져다 놨냐?’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거기 디딤돌이 있어서 좋으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똑같은 걸림돌에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길에 걸림돌을 갖다 놓았냐?’고 불평을 하지만, 다른 사람은 ‘디딤돌을 디디고 가니까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우리 이 어려운 환경은 우리에게 디딤돌이다.’ 기도하면 디딤돌로 환경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안 하면 디딤돌이 안 되는데, 기도를 하면 걸림돌이 디딤돌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스트레스가 무조건 건강에 나쁘다고만 알고 있는데 캘리 맥고니걸이라는 심리학자는 8년 동안에 3만명을 대상으로 연구했는데 그 결과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경험한 사람의 사망 위험성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43%나 높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해롭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스트레스가 나쁩니다. 스트레스를 당했어도 해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 오래 삽니다. 사람 생각이라는 것이 참 희한합니다. 스트레스가 완전히 우리 병을 가져오는 인자가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스트레스 때문에 병들어서 죽지, 스트레스가 다가와도 이건 우리에게 훈련하여 힘 있게 만들어 준다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면 이익이 되고 손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 몸에 미치는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보십시다. “스트레스가 와도 하나님이 계시면 문제없다.” 

3.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

 우리는 항상 기도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고 하나님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기고 살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편 4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장 9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련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간의 문명은 편안함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기후가 따뜻하고 전쟁도 없고 평온한 지역에 사는 민족들이 아니라 불리한 자연환경에서 사는 민족이 위대한 문명을 이루었습니다. 국가나 민족뿐만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한 환경이 아니라 고난과 시련을 이기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발전하고 향상하는 삶을 이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가 있는가하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하나님께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기도의 손을 들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장 10절)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마음에 즐거움을 갖고 살아야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을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언 17장 22절)라고 말했습니다. 염려와 근심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 병들게 합니다.

 한겨울의 추위와 한여름의 더위를 견디며 벼락을 맞아도 죽지 않고 수백 년을 버틴 나무라 할지라도 작은 해충이 갉아 먹으면 낙락장송이 죽어서 쓰러집니다. 우리의 삶도 이런 벌레가 있는데 그 벌레가 뭐냐? 염려와 근심입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염려와 근심이 우리 심령을 갉아 먹으면 우리는 거꾸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염려와 근심을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맡기는가? 기도로 맡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했습니다. 기도로써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셔서 우리의 손을 잡고 함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세계가 참 희한합니다. 마귀가 지옥의 부정적인 생각을 연기처럼 채우면 마음이 죽을 것 같고 불행하고 불안하고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와서 보혈을 바라보고 믿으면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씻어주고 마귀를 쫓아내주고 우리에게 행복과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큰 시련을 당해도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아직 기도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망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시고 살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붙잡고 용감하게 일어나서 기도하고 나가야 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의 인생에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밀물처럼 밀려오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땅을 바라보며 낙심하는 자 되지 않게 하시고, 하늘을 바라보며 늘 기도하며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돋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7.08.13. pm 16:50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