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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사랑, 나라 사랑

 어느덧 여름 향내 완연한 8월이 되었습니다. 달력 한가운데의 붉은 색 머금은 ‘15’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8월은 광복의 달이기도 합니다. 광복의 달을 맞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동일하게 여겼던 한 인물의 삶을 나누고자 합니다. 바로 일본제국주의의 신사참배 강요에 항거하다 순교한 박관준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박관준 장로님은 일제의 한반도 침탈 야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첫 번째 사건인 운요호사건이 발생한 1875년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장로님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부족할 것 없이 자랐으나 청일전쟁으로 부모님을 잃은 후 인생의 허망함에 빠져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흥청망청 허송세월하며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무시하던 선교사들이 전해준 말이 그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절벽은 위태로울 뿐이니 혈벽(血壁)에 서라!” 장로님은 절벽은 주색에 빠졌던 자신의 모습, 혈벽은 선교사들이 전했던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은 예수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지난날의 과오를 청산하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일제강점기 속에서 고통을 겪는 민족을 도와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의사면허증을 따고 평양에서 병원을 개업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병원을 하며 번 돈으로 학교, 우체국, 교회 등을 세우는 일에 헌신했으며 안정된 삶을 뒤로 하고 산간오지를 다니며 가난한 자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변화시킨 예수님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주님께 기도하고, 성경 속에서 인생의 길을 찾으며 이웃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던 중 1935년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했고 이를 마냥 지켜볼 수만 없었던 장로님은 평남지사와 총독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신사참배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신사참배 강요를 포기하도록 촉구했습니다.
 1938년에는 일본 도쿄로 건너가 제74회 제국의회에서 ‘동아대국교개종헌의서’를 회의장에서 살포하다 체포돼 국내로 압송당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벌이다 구속되어 6년간의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인생이 변화되어, 주님을 향한 순결과 나라를 향한 충절을 모두 지킨 박관준 장로님의 삶은 평화롭고 고요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감동을 줍니다. 광복의 달 8월,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며 조국을 위해 헌신했던 선진들의 헌신과 72년 전 조국의 광복과 안녕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기사입력 : 2017.08.06. am 10:35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