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말씀 > 조용기목사 주일설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한복음 14장 5∼9절

 세상에는 자기들의 주장만이 진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갖가지 분쟁이 일어나고 자기들 스스로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어지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길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생명의 길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처럼 길과 진리와 생명 그 자체이신 분은 과거에, 현재에, 미래에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그 자체인 것입니다.

1.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 그 자체이시다)

 예수님이 길과 진리와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길 되신 예수님. 길에 대한 증거자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자체가 길입니다. 길을 가리켜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은 그 자신이 길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영원한 길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로 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가운데서 말씀했다고 이해하면 잘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말씀이고 창조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찾아서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말씀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 그 자신이 그 진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신이 진리의 증언자가 아니라 진리 그 자체인 것입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진리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33절에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침례 요한은 증언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알고 그것을 증언한 증언자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진리를 증언한 자가 아니라 친히 진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배급자가 아니고 예수님은 자체가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받아들인 그 속에 생명을 심어주는 것이 되어서 생명수가 넘쳐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체가 생명, 생명수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은 예수님을 생명수를 받아들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1절로 2절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생명 자체를 보고, 듣고, 만져보고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부활이요 생명이니, 부활이요 생명인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같이 부활이요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어도 도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생이란 사형 언도를 받은 죄수들이 감방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장23절)이라고 말했습니다. 죄가 없으면 죽지 않아요. 죽는 이유는 죄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해서 죄를 짓지 않았을 때는 죽지 않아요.
죽음은 자연적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죄 때문에 죽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났을 때는 죽지 않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죽었느냐? 여러분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나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을 인수인계 받아서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살아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 짐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대가를 다 치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부활과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음부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심판 받는 날에 마귀가 함께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 재림할 때 같이 재림하시기 위해서 낙원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낙원은 천국 대합실인 것입니다. 천국 대합실에서 기다리는데 그 미래는 영광스럽기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살아가는 길을 발견했어요.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느냐? 그 길을 발견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길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고 방황하는 사람도 아니고 완전히 삶을 올바르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길을 모시고 있고, 진리를 모시고 있고, 생명을 품고 있으니까 보통 사람보다 다른 사람입니다. 

2. 의, 평강, 희락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와 평강과 희락이 또 되신 것입니다. 의라는 것은 로마서 3장 22절로 24절에 보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의로운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죄를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번에 새 대통령 모시고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 장관들 신분 조사를 하는데 보니까 자신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다 좋지 않은 데가 있단 말입니다. 오늘날 사람들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은 없어요.

 목사님이 어느 교회에서 ‘여러분,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라고 질문하니 아무도 손을 안 드는데 30대 되는 젊은 청년이 손을 번쩍 들거든요. 목사님이 놀랐습니다. ‘아니 죄를 한 번도 안 지었습니까?’ ‘아, 내가 죄를 안 지었습니다. 내가 나가서 증명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손을 흔듭니다. ‘아닙니다. 우리 남편 돌아가지고 병 고치러 데리고 나왔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이 세상에 죄를 한 번도 안 지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심을 한 죄가 있어서 자기는 천국에 가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목사님이 “얼마동안 예수를 믿었습니까?” 하니까 “30년 믿었다”고. “30년 동안 늘 의심했냐?”고 하니까 “안 믿을 수는 없고 믿어도 확실히 믿음이 들어오지 않고 의심이 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래 목사님이 “의심은 믿음이 적은 것이지, 죄는 아닙니다. 당신은 30년 동안 손해를 보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30년 동안 의심을 하지 않고 진실로 주님을 믿고 지냈으면 많은 기도응답도 받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서 유익을 많이 얻었을 것인데 의심한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기로 작정한 축복을 누리지 못한 손해를 입을 그 따름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의심하면 의심한 만큼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고 살지 못하고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고 손해가 많습니다. 손해 보지 않고 하나님을 믿어서 믿음을 통하여 많은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와 평강과 희락이 되는데, 기가 막힌 축복이 이것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선물이라 함은 우리는 아무런 대가를 지불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6절로 8절은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었으니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죄를 대신 짊어졌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죄가 없어질 것입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가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한 평생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의로움을 갖기 때문에 천국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천국에서 왕래하고 아버지 보좌 옆으로 가서 앉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들로 굉장히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한 사람도 없는데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덕분에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노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죄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한 평생에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끄러움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주님이 또한 우리에게 평안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안을 원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진다고 해서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쌓아놓고 사는 사람은 근심도 함께 쌓아놓고 삽니다. 애써 모은 재물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지위가 올라가면 불안지수도 함께 올라갑니다. 언제 그 높은 자리에서 내려올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누려도 사람의 힘으로는 참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참된 평안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주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한 10분 누려본 적이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 음성이 들려와 귀를 기울이니까 “너 참 예수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려보았느냐?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평안이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기쁨이나 평안과 같지 않다”고. 기쁨과 평안이 마음속에 흘러들어오는데 정말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어요. 평안이 말로 다할 수 없이 영광스럽게 마음속에 들어오고, 기쁨이 들어오는데 사탕은 비교할 수도 없어요. 정말로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도 후회되지 않을 그런 기쁨과 평안이 속에 녹아 들어와요.

 “하나님, 그냥 이 자리에 살게 하십시오.” 변화선상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께 이야기한 것을 베드로가 보고 “하나님,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는 엘리야, 하나는 모세, 하나는 예수님의 초막으로 삼게 하시옵소서.”라고 말한 것과 같은 체험입니다. 죽으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옷을 바꿔 입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을 받아 입고, 그 평안을 말할 수 없고 그 기쁨은 형언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이 예비해주신 곳에 갈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죽음을 겁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한복음 14장 27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평안이 아니고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평안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평안을 조금 얻어 맛을 보니까 기가 막히더란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에 있는 평안과는 틀리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단 일분이라도 하나님 평안을 맛볼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말로 다할 수가 없어요. 그 참 평안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풍랑이 휩쓴 갈릴리 바다를 말씀 한 마디로 잠잠하게 하시니 그리스도가 얼마나 평안의 위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마가복음 4장 39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장 6절~7절)

 우리는 이 평강을 주님이 가지고 계시니 우리가 간구하면 우리 마음속에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말로 다 할 수가 없이 귀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기쁨이지요, 희락. 예수님께서 가지고 있는 기쁨을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편 16편 11절)
 주님 앞에 기쁨이 넘쳐나고 우편에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기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장4절)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뻐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우리 마음에 원망과 불평을 심어서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면 하나님이 기쁨을 거두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더불어 살면서 얼마나 기쁘고 좋은데 원망과 불평을 말해서 그 기쁨을 잃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마귀가 하와에게 와서 “정말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더냐?”, “아니야.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불평을 말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니다. 그 먹어서 죽을까 하노라는 것은 하나님이 네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 같이 될까 싶어 질투심이 생겨 그렇게 말한 것이다.” 불평을 심어준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따라한 아담과 하와는 심판을 받아 에덴에서 쫓겨나고 죽지 않았습니까. 불평과 원망은 자기 개인도 고통스럽고 같이 있는 사람도 고통이 다가오는 것이고 마귀를 기쁘게 해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로 들면서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린도전서 10장 10절)고 했습니다.
마귀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주어서 멸망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 평강, 희락도 여러분 위해서 주님이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도 여러분 것이고, 의, 평강, 희락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담대히 의로움을 믿음으로 받아 의인이 되는 것처럼 평안과 희락도 주님이 가지고 여러분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3. 믿음, 소망, 사랑

 셋째로 믿음, 소망, 사랑도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선물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장 6절)고 했습니다.

 이 믿음은 참 귀한 선물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사는 사람은 믿음이 없습니다. 꿈을 갖고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믿음을 주십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져도 그것을 꿈을 가지고 그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태산을 옮길 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꿈을 마음속에 품고 기도를 해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달라고 75세 가나안 땅에 와서 기도를 한 것이 10년 동안 기도했는데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주겠다는 믿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말하기를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주지 않으시니까 종을 아들로 받아들여서 그 아들을 후계자를 종으로써 삼겠다”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렇지 않다”며 저녁에 아브라함을 바깥에 데리고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고 “저 별들을 바라보라. 네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을 터이니 네가 기도할 때 저 별들처럼 많은 자손을 마음에 꿈을 꾸면서 기도를 해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네 믿은 데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납니다. 꿈을 꾸자 믿음이 생겨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아브라함의 소원을 들어주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꿈을 품고서 기도하면 마음에 믿음이 생깁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서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과 믿음, 입술의 고백 이것은 여러분 생활에 꼭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마음에 소원이 있으면 그 마음의 소원을 마음에 그려보고, 품고, 기도를 하면 그 꿈이 소유될 수 있는 믿음이 마음속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서 입술로 고백을 하면 하나님의 응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하는 말씀처럼 꼭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망은 주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다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소망은 바로 그 꿈이 소망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망하면 꿈꾸게 되고 꿈을 가지면 마음에 소망을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 살아가는데 필요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아가페 사랑을 자기 생명을 바쳐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실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에베소서 5장 2절)

자기를 버리면서 사랑을 하는 것이 아가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기 생명을 버려서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사람이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은 필레오 사랑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했으나 자기에게 손해가 나게 되면 부인한 인간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예수님 품에 안기면 예수님은 여러분을 목숨을 내놓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길이 되신 예수님, 여러분에게 “오늘 내가 너 인생의 길이 된다.” 그렇게 말씀하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리다. 너는 내 안에 있으면 거짓에 속지 않는다.”

 주님은 “내가 네 생명이다. 내가 네 속에서 영생한 생명이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또 살아가는 세상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가 너희 것이고, 평강이 너희 것이고, 기쁨이 너희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주님께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너희 것이다. 이것이 있어야 너희가 이 세상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의와 평강과 희락, 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러한 씨앗을 잘 돌보고 가꾸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아가면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히게 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의와 희락과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고, 참된 믿음과 소망과 사랑안에 거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며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으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7.06.18. pm 16:44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