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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이 나를 다스린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7~15절)

 생각은 인생의 미래를 창조하는 재료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어떠한가에 따라 그 모습도 달라집니다. 우리의 생각은 어떠해야 하냐?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보화를 담고 사는 그릇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생각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다 이루어놓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안으면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이 달라지고, 이를 통해 우리 삶에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미국의 시인 롱펠로는 인간을 집을 짓는 건축가에 비유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시간이라는 벽돌을 가지고 날마다 인생의 집을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똑같이 시간의 벽돌을 가지고 집을 짓는데 어떤 사람은 크고 튼튼한 집을 짓고, 다른 사람은 빈 집을 짓습니다. 왜 그런가요? 그것은 바로 생각하는 차이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인생의 집도, 살아가는 모습도 따라 그대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나의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우리는 나의 생각이 나의 일생을 지배한다는 것을 우리가 꼭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어떠하면 나의 삶은 결정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내 생각을 지키기 위해서는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내 인생을 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아가서 내 인생을 항복시키면 성령께서 그 항복시킨 형태를 가지고 일생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가슴을 활짝 펴고 십자가를 힘차게 끌어안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 안에, 십자가가 내 안에 들어와야 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장면을 연출해야 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7~10절)고 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오중복음을 끌어안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생각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생각을 살피고 우리는 생각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한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 여러분 생각을 집중적으로 하면 그 생각이 이루어집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과 함께 3년을 지내왔는데 예수님을 팔아먹을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에서 로마 황제들이 예수를 죽이는 자에게는 굉장한 상금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을 죽이는 것으로 생각하자, 성경에 보면 마귀가 생각을 유다의 속에 집어넣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다 같이 아무 일이 없는데 그 생각에 예수를 죽일 생각을 집어넣었어요. 결국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 속에 생각이 그러하니 실제 행동으로 예수님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각 속에 있으면 그 생각이 영원토록 솟아나는 생명의 강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수가 되어요.

 동남아 일대에 나가보면 목사님들과 교회 중심적 인물이 나하고 악수를 하면 두말 하지 않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하고 웃어요. “아, 왜 그렇게 말을 하냐?”고 하니까 “당신이 우리 가운데 처음 들어와서 하나님과 같이 사는 법을 가르쳐줄 때 말을 통해서 하나님이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니까 그 말을 자꾸 하라고 해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조용기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전부 우리는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고 말합니다.

 외국에 나가면 어느 곳에 가나 사람 많이 모이는 것이 볼만 합니다. 이번에도 싱가포르에 가서 1만 명 들어가는 시설이지만 다 수용할 수 없어서 땅 위에 앉아서 TV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인도에서 대표들이 와서 “이번에 6만 명 모이는 곳을 장소를 빌릴테니 와 달라.” 한 사람은 “100만 명을 모으는 장소를 준비할 테니까 와 달라.” 그런데 가고 안가고가 내 생각에 달렸습니다. 내가 생각에 이제 나이도 늙고 힘이 들어서 못 간다고 생각하면 못 가는 겁니다. 아무리 오라고 해도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쪽에서 못 오라고 하고 방해를 해도 내 마음속에 “조용기, 하면 된다. 가보자.” 생각을 간다고 하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새 텔레비에 볼 때 직접 가서 스위치에 손으로 누르고 돌리고 하는 촌놈들은 없습니다. 멀찌감치 앉아서 리모콘을 켰다 껐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파장에 눈에 보입니까? 안보이잖아요? 안 보이는데 그걸 조종하는 것은 희한한 일 아닙니까? 여러분의 생각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처럼 우주를 다스리라고 하나님이 지금 하시기 때문에 여기에 다스리는 기구가 우리 속에 다 들어있어요. 주를 믿지 않는 사람조차도 그 기운은 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을 계속해서 사인을 주면 그것이 주변에 나가서 우리 생각을 따라 환경이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나는 한다. 나는 하나님이 인도하시기 때문에 그 안에서 성공한다.” 계속 그렇게 생각하면 주변이 그렇게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자기 인생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기 행동만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에 환경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의 방향을 갖고 산다는 것은 아주 성공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학사도 못되고, 박사도 못되고, 천재적인 지혜는 없을 지라도 예수님의 열 두 제자처럼 3년 동안 예수님 따라다녔지만 이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기잡이, 세금장이, 노동자 등 어느 한 사람도 좋은 학벌이나 가문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형편없는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예수님께서 “이제 너희들 같이 있지 않겠다. 이제 가야된다. 내가 천국으로 먼저 가마.”, “아이고 주님, 주님 가면 누가 우리에게 밥을 줍니까? 옷을 줍니까? 우리 어떻게 합니까?”, “걱정 마라. 내가 또 보혜사를 보내줄 테니까.”, “아이 보혜사 싫습니다. 우리와 같이 계십시오.”, “지금은 모르나 장차 알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떠나자 주변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란 놈들이 모두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고 옛 직업으로 돌아가자. 일주일도 안 되서 베드로는 고기잡이로 돌아갔어요.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지구를 뒤흔든 기독교를 세웠을까요? 주님께서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인생들을 제자로 삼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꿈을 꿀 수 있는 자를 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으나 그 바보집단 같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의 감동으로 꿈을 꿀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내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나간 세월동안 뒤를 돌아보며 사는 사람은 실패합니다. 오늘을 바라보고 울고 웃고 하는 사람은 별로 볼 일 없는 사람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승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 왜냐하면 생각은 꿈속에서 끊임없이 내일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성령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주니 그 꿈의 환상과 더불어 내일을 생각하니 내일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내일이 끊임없이 오늘로 다가오는 것이니깐, 성공한 내일을 오늘에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 가족들이라도 서로 모여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는 가족은 가족 중에도 성공하고, 생각을 부정적으로 하는 사람은 한 가족이지만 성공하지 못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그 사람을 달리해서 마음속에 천국의 생각을 갖도록 하게 하려고 많이 애를 쓰셨습니다.

 2. 예수님의 생명은 우리 영혼의 생수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사마리아를 지나갈 때, 12시쯤 돼서 시장하신지라, 사마리아 변두리에 있는 우물가에 앉았습니다. 제자들은 음식을 사기 위해서 시내로 들어가고 예수님 혼자 우물 곁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 때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동이를 들고 나왔습니다. 기이합니다. 왜냐하면 열두시에 물 길러 나온 사마리아인이 없습니다. 물은 아침이나 저녁에 기르지 한 낮에 물 길러 나오지 않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사람이 싫어서 사람 만나지 않기 위해서 한 낮에 우물가에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보고 “여자여, 내게도 물 한 바가지만 주십시오.” 여자가 깜짝 놀랍니다. “아니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개 취급하는데, 어떻게 당신이 나보고 대화를 합니까?” 그래 예수님께서 “허허 내가 물을 좀 달라는 사람이 누군줄 알았으면 당신이 오히려 물 좀 달라고 했을 것이다. 내가 끝없이 넘쳐나는 생수를 줬을 것이다.”, “점점 우습게 말을 하네요.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분은 누구기에 감히 생수를 나에게 주겠다고 합니까? 이 우물은 깊고 우리 조상 야곱의 자식들과 짐승들이 이 물을 마셨는데, 당신은 손에 두레박도 없이 이 물을 퍼서 나에게 주겠다니요?” 예수님께서 “이 물은 먹으면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은 마시면 목마르지 아니한다.” 그러니깐 부인이 “그럼 그 물을 내게 좀 주십시오.” 그래서 예수님이 가만히 쳐다보고서 “신랑을 데려오십시오. 그러면 내가 이 물을 주겠다.”,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맞았어.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야. 남편이 없는 것이 사실이야. 다섯 남편을 순서적으로 내보내고 지금 데리고 사는 것은 여섯 번째인데 당신의 남편이 아니요.” 여자가 “아이고 무섭네. 어떻게 내 생애를 그렇게 환히 들여다봅니까? 이제 보니깐 보통 사람이 아니고 선지자군요. 이 유대인들은 예배드리는 데가 예루살렘이 있고 사마리아에 있지 않다고 말하는데요.”, “사마리아에서도 아니고 유대 베들레헴에서도 아니고 하나님을(이) 있는 장소에 매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보는 사람을 하나님이 찾고 있소.” 그러니까 더 이야기를 길게 하였지만은 둘이 이야기 하도록 내버려놓고 나는 짧게 하겠습니다. “사람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데가 오는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는다.”고 그러니까 그 여자가 종교적인 어려운 문제는 알 수가 없어 “메시야가 오면 이것을 알려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메시야가 바로 당신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나다”

 여자가 깜짝 놀라고 내가 메시야하고 대화를 했다니 물동이를 던져버리고 사마리아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보고 날 보라고,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나의 생애를 환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여기 왔는데 그분이 메시야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무리들이 떼 지어 나와서 모시고 시내에 들어가서 예수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귀신 쫓아내고, 병 고침을 받기도 하고, 굉장한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거기에 예수님께서 그 사마리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버드나 동경대학이나 우리 서울대학의 출신들을 데리고 와야 사마리아가 변화시켰다고 그렇게 말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평범한 사람, 그 사람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마음을 변화시키고, 꿈을 꾸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번에 사마리아에 큰 부흥이 일어났었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에 가시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마리아를 지나가면서 큰 부흥을 일으킨 것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는 엄청나게 힘이 있는 단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꿈을 꾸면 꿈에는 하나님이 같이 일을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과 시합에서 이기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꿈꾸는 사람하고 손을 같이 잡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꿈을 꾸면 믿음을 주시고 거기에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변화와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한복음 4장 10절) 생수라는 것은 영원한 기쁨도 되고, 즐거움도 되고, 희망도 되고, 마음에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셔서 참으로 행복하게 살고, 변화를 가져오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온통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도 새로운 분이 대통령이 되시고, 우리를 돌보아주고 다스리는 자들이 다 달라져서 그들이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게 될 수 있는 생각을 넣어주면 한국은 대단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생각은 눈에 안 보이는 힘이 둘러 진 치고 역사하기 때문에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겨울이 가는 그 힘이 안 보이는 것, 그 같은 힘이 생각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유명한 컨설턴트인 데일 카네기는 “평생 동안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우리의 생각이 지니는 중요성입니다. 생각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므로, 내가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안다면, 당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생각을 바꿈으로써 우리의 삶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생각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우리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가 여러분을 얼마나 도와주었다, 여러분의 생활이 고달프고 괴로웠다, 그런 것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상 여러분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을 쳐다보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게 문제인 것입니다. 세상 부모는 도울 힘이 없어도 하늘나라 부모는 도울 힘이 있습니다. 하늘나라 부모는 생각하는 사람 따라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개척해서 세계 최대의 교회를 만들겠다는 그런 생각하고 꿈 꾼 당사자인 것입니다. 그 교회를 하나님이 이루어주셨는데, 저의 학식이나 지식을 통해서 한 것이 아니라 주야로 기도하면서 생각 속에 그 큰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꿈꾸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살았는데, 이 일을 이룬 것은 아버지께서 꿈꾸고 생각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는 저를 보고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이 도우셔서 성령이 이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이 교회가 유명하게 된 것은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유명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저의 손에 있는 바통을 ‘이영훈 목사에게 전해줘라’ 그런 지시가 있어서 이 교회를 더 크게 이루어서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는 일을 시키려고 작정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시간만 나면 이영훈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아주 즐거운 일을 이룰 줄 믿습니다.

 여러분 십자가 밑에 고통을 다 내려놓아야 해요. 생각이 바꾸어지지 않습니까? 고린도후서 10장 4절로 5절은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장하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만듭니다. 우리 안에 의심이나 불신앙과 같은 생각들이 들어올 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러한 생각들을 십자가 앞에 꺼내 내려놓아 십자가에 복종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성령으로 모든 것을 보이신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여러분의 생각을 다 알고, 여러분의 생각을 따라서 일 하는 것입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2장 9~12절)

 하나님께서 우리 생각을 신령한 생각으로 변하게 하기 위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기를 “육의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신령한 사람은 신령한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면 신령한 생각을 깨달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가면 하나님의 약속이 아주 꽉 들어차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읽고 우리 마음에 신령한 생각이 확고하게 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장 12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2장 3절)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다 깨닫게 되고, 예수님을 구주인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두 손 벌리고 나가서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껴안으면 병이 힘을 잃어버립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를 껴안으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시기 때문에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껴안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 십자가를 껴안으면 죽음이 두려워하지(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십자가 속에 영원히 사는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복음 11장 25~26절) 그 주님의 역사가 그 십자가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십자가를 그러므로 바라보고 기도로써 껴안으십시오. 주님의 십자가를 껴안으십시오. 내가 십자가 안에, 십자가가 내 안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은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보배로운 생각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여러분은 영원한 기쁨을 가지고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매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끌어안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내가 다 이루어놓았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이 대속의 사역은 어느 누고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진리를 따라 생각이 달라져야 되고, 믿음이 달라져야 되고, 삶이 변화되어야 하며,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은 실제적으로 하나님 능력이 여러분 인생에 다가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긍정적인 생각이 되고, 꿈을 꾸어야 되고, 믿음을 품어야 되고, 입술로 긍정적 고백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 포용 속에서 환경이 달라지고 여러분 창조가 이루어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에베소서 4장 23~24절)’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 속에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늘 우리의 생각을 주관하여 주옵소서.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생각을 버리고 주님 안에서 ‘할 수 있다. 하면된다. 해 보자’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갖고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십자가에서 이루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늘 누리면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7.06.11. pm 15:09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