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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염려 없는 행복한 삶(마 6:25∼34)

 염려 근심 없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강한 쇠붙이도 습기로 인해 녹슬고 부서지는 것같이, 사람은 염려로 인해 마음이 녹슬고 무너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사회일수록 살아가는 데 많은 문제와 염려가 따른다. 인간은 자기 존재의 보존을 위해 의식주(마 6:25∼32), 이 세상 일(눅 21:34), 질병, 물질, 취직, 진학, 결혼, 승진, 건강, 이사 등을 염려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염려는 부질없는 것들이다. 어니 J. 젤린스키는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서 걱정의 40%는 결코 일어나지 않고, 30%는 이미 벌어졌고, 22%는 아주 사소한 것이고, 4%는 바꿀 수 없고, 단지 4%만이 대처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가 하는 걱정의 96%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염려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메림나오’인데, 나누다는 ‘메리조’와 마음이라는 ‘누스’가 합성된 말이다. 결국 염려한다는 것은 마음이 나누어지는 것이다. 마음이 통일되지 못하고 나누어지는 것이 염려요 번뇌이다. 그것은 믿음의 적이며,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게 한다(약 1:6∼8).

 그런데 믿는 자들도 정당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긴장하고 염려할 때가 있다. 믿는 자들도 생계비를 버는 노동에서 면제되지 않았다(살후 3:10). 믿는 자들도 세금과 같은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롬 13:7). 나아가 믿는 자들도 일상생활의 괴로움에서 면제되지 않았다(마 6:34). 이처럼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염려는 있게 마련이다. 그와 같이 산 존재에게 당연히 다가오는 염려들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 나와서 마음에 평안을 주실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빌 4:6∼7).

 사람은 공중의 새들보다 귀하며, 백합화보다 소중한 존재이다. 따라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뿐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열심히 씨를 뿌리고 가꾸었으면 열매 맺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대해야 한다(잠 16:3). 염려함으로 일이 좋게 변하거나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염려하는 대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 염려가 없어지면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가면 염려가 없어진다. 컵 속의 공기를 빼내려면, 컵에 물을 부으면 된다. 이처럼 마음의 염려를 제거하는 길은 기쁨의 물을 붓고, 창조적인 일에 몰두하는 데 있다. 최고로 가치 있고 몰두할 일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고, 이를 위해 힘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먼저의 생활을 하자! 세상 활동 중심에서 교회생활 중심으로, 나 먼저에서 하나님 먼저로 순서를 바꾸자! 부정적인 말과 사고방식에서 긍정적인 말과 사고방식으로 삶을 변화시키자! 그러면 위대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삼상 2:30).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건져주신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담임)

 

기사입력 : 2017.05.28. am 10:5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