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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사와 기드온의 삼백 용사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야훼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사사기 7장 1~7절)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은 미디안 족속으로 인해서 해를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미디안 족속들은 가나안 땅에 원 주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미디안 족속은 가나안 족속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이 파종하고 나면 미디안과 아말렉 사람이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가운데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않았습니다. 씨를 뿌려 놓은 곳에 짐승을 데려와서 모두 다 갈아 엎어버린 것입니다. 추수할 때 즈음에는 짐승들을 데리고 와서 추수한 밀, 보리를 짓밟아버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늘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어려울 때 구원을 베풀고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선지자나 택한 사람을 세우는데 여기에 기드온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하니까 그는 기겁을 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안 됩니다. 나 같은 삼류인생을 택해서 하나님이 무얼 하신다는 것은 잘못 생각입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 하십시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주인이냐? 다른 사람 하라, 하지 말라. 너는 나의 종이요 내가 불러서 너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니 잔소리 말고 하라.”
  그러니 정말 큰일 아닙니까? 이스라엘을 구원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는 주권자도 없고 군인도 없으며 무장도 되어 있지 않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기에 비해 미디안이나 가나안 족속들은 나라가 튼튼히 서있고 주권자가 있고 군대가 양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과 싸운다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이요, 나라가 멸절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단호히 하나님 명령에 따르라고 했으니까 기드온은 마음에 결심을 했습니다. 

1. 하나님의 표징을 간구함 (하나님의 약속을 간구함)

  기드온은 ‘하나님이 정말 나를 택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한다면 하나님 뜻을 확실히 알아봐야 되겠다’고 말하며 ‘하나님 저를 선택한 뜻을 나에게 확실히 보여주시옵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에 들판에 내던져놓고 하루저녁 자는데 이슬이 양털뭉치에는 전부 내리되 그 주변에는 이슬이라고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 내게 정말 말씀하셨다고 제가 확증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양털을 들에 내놓고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양털 근처에 가니까 양털에는 이슬이 내려서 물이 절퍽절퍽 한데 그 주변에는 바짝 말랐습니다. 그가 양털을 양푼에 담아 짜보니까 물이 양푼에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럼 됐을 것인데 기드온은 ‘하나님 한 번 더 용서를 해주시고 요번에는 양털을 들에 내놓을 테니까 양털만 바싹 마르고 주변에는 이슬이 가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번 더 확증시켜 주시옵소서.’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래서 양털을 들판에 던져놓고 자고 난 다음 아침에 나가니까 양털은 보송보송하고 물 한 방울, 이슬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데 주변에는 이슬이 비와같이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드온이 선택함을 입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기드온이 하나님께로부터 물으며 얻은 것은 하나님의 표징을 보고 난 다음에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표징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그리스도가 확실히 내게 말씀하신다는 증거를 얻으면 용기가 생기고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듣는다는 것, 굉장한 특권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무슨 중대한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용기와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 음성을 들으면 하나님 말씀을 들은 즉시로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 없이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의 조상이라 했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으로 온 것도 하나님이 가라고 하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출발한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 행한 것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뭄이 다가왔을 때 아내와 함께 애굽으로 살러 가는데 하나님이 애굽으로 내려가라는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애굽 왕 바로에게 아내도 빼앗기고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 아주 부끄럽기 짝이 없는 행로를 가졌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 믿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갖지 않고 인간적 생각으로 도피했다가 큰 낭패를 당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성경을 읽고 있으면 그 분위기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분위기가 마음속에 만들어져서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하나님 생각과 만나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각을 가져야 방황하지 않게 됩니다. 실패하지 않게 됩니다. 만일 약속 없이 자기 마음대로 방황하다가는 큰 실패를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징을 기드온처럼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촌놈이지만 하나님께 증명을 얻어서 증명이 있어 믿음을 가지고 일에 대처한 것에 대해서는 칭찬할만한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을 위해 싸울 자를 모집함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울 군사를 모집)  

  이제 자기가 별도리 없이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미디안과 싸워야 될 것을 결정 했을 때, 군대는 모집해야 되는 것입니다. 군인들이 이 기드온을 평소에 알지 못하는 촌놈인데 그가 오라고 한다고 해서 오나요? 그러나 이번에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사람을 열두 지파로 보내면서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군대를 일으켜 가나안, 미디안과 싸워서 이스라엘을 해방하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무려 3만 2천명이나 모여듭니다. 국가가 명령을 해서 모여온 것도 아니고 그들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겠다고 자원해서 나온 군인들이 3만 2천명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적들은 13만명이나 모여 있습니다.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수가 모여서 이스라엘을 쳐들어오는 것입니다. 

3만 2천명이 하나님 앞에 신고식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 너희 3만 2천 명 군대를 안 쓰겠다.”, “아이고 하나님. 적군은 13만 명입니다.”, “숫자를 말하지 말고 충성심을 보아야 된다. 3만 2천 명이 너무 수가 많은데, 3만 2천명을 어떻게 다 쓴단 말이냐?”, “그럼 어떻게 할까요?”, “무서워 떠는 사람들은 도로 돌아가라고 그래라.” 하나님은 무서워 떠는 사람을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라도 하나님의 사업을 할 때 마음에 무서워 떠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들어와서 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마음에 평안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믿음이 없을 때 다가옵니다. 평안은 두려움이 물러가면 그 자리에 평안이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면 평안이 오고, 마귀가 오면 두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그러니깐, 2만 2천 명이 돌아갔습니다.
  사사기 7장 2절로 3절에 보면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들어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은 자보다 돌아가는 자가 더 많았으니 큰일 아닙니까? 하나님을 알고 믿는 자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믿는 자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늘 종이 되어서 고생을 한 민족입니다. 바벨론 왕에게 이스라엘이 잡혀갔을 때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바벨론 이름을 가진 이스라엘 세 청년이 굉장히 총명해서 임금에게 사랑을 받고 높은 자리에 있었는데 참소를 당해서 우상을 섬기지 않고 왕을 경배하지 않는다는 모함을 받아서 왕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정한 날에 왕이 만든 우상에 절을 하지 아니하면 활활 타오르는 불 화로 속에 집어넣겠다.” 그러니까 온 사람들을 다 불러서 나팔을 불 때 모두 다 불구덩이 앞에서 바벨로니아의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 신상에 엉덩이를 들고 절을 했습니다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뻣뻣이 서서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왕을 무시한다는 모욕적인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서 불구덩이 속에 던져 넣겠다고 위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왕이 한 번 더 기회를 줘서 “나팔을 불고 징을 치고 장구를 두드리고 이 소리가 나면 저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기 싫거들랑 우상에 절을 하라”
  그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우상에 우리는 절을 안 할 겁니다. 우상에 절을 안 하면 불구덩이 속에 우리를 던져 넣는다고 하는데, 우리도 하나님이 계시니깐 우리 불구덩이에 타지 않게 해주실 것입니다. 타게 안 해줄지라도 우리는 우상에 절을 하지 않습니다.”
  철저히 야훼 하나님을 믿는 세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 왕의 신변이 어떻게 멸시를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까? 분노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이번에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나팔을 불 때는 집어넣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다 긴장을 하고 있는데 나팔을 불 때 세 사람을 묶어가지고서 하나, 둘, 셋 휙 던져서 불구덩이에 넣었습니다. 무엇을 던져도 바싹 태울 불구덩이인데, 전부 다 놀라서 눈을 휘두르고 고함을 쳤습니다. 세 사람을 던졌는데 그 불구덩이에서 받아들이는 네 사람이었어요. 한 사람이 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묶은 것을 다 풀어버리고 그 세 사람은 천사가 와서 그들을 마주하고 있는 불구덩이 속에서 손과 손을 마주잡고 춤을 추고 좋아합니다. 임금이 놀라서 왕위에서 내려와서 “얘들아. 우리가 세 사람을 던졌는데 지금 저기에 춤을 추고 있는 놈들은 네 놈이 아니냐? 그 네 번째는 사람같이 안 보이고 하나님의 아들과 같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여,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이리 밖으로 나오너라.” 춤추다가 말고 세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왕이 옷에 냄새를 맡아보고 얼굴을 쓰다듬어 보고 해도 불 냄새도 나지 않고 불 탄 흔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꾸로 이제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 야훼에게 건방진 말을 하면 벌을 내리고 거처하는 거처를 불사르고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이 돌보아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두렵지 않습니다. 두려움이란 하나님을 믿지 못하므로 오는 두려움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자연적으로 마귀가 와서 두려움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별 도리 없이 두려움의 올무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3만 2천 명의 지원병이 들어왔는데, 두려운 사람은 돌아가라고 하니까 2만 명이 돌아가고 1만 명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1만명도 많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추리시기로 하셨습니다. 1만명을 시냇가로 데리고 가서 물을 마시게 합니다. 모두 다 목이 마르니깐 물가로 뛰어가서 물을 마시는데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물가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전투 태세를 갖춘 채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시는 사람이고, 다른 한 부류는 두 무릎을 꿇고 정신없이 물을 마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태도를 봅니다. 여러분 잘 아는 태도지요. 그 나라와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구하는 사람은 물을 핥아먹는 사람입니다. 물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 물을 손으로 핥아먹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 능력을 구하는 자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이들로써 하나님이 신용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로 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일의 질서를 올바르게 하면 도움이 올바르게 온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이 그 자기가 해야 될 일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자기의 갈증을 먼저 채운 후에 하나님의 말에 순종하겠다고 하면 이것은 일이 잘 안 되갑니다. 신명기 20장 1절에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가지 두려움 속 살아갑니다. 실직을 당할지, 직장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직을 당하지 않을까? 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늘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지날 때 두려움이 극복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군사를 모집하실 때, 두 번째 기준은 목이 매우 마른 상황에서 물을 마시는 자세였습니다. 개가 핥는 것 같이 손으로 물을 움켜 핥는 자들은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항상 깨어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맡은 사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사명을 감당한 뒤에 늘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군사로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항상 깨어있어야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두려움에 떠는 자들은 전쟁터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에 옆 사람에게까지 물들어서 전체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두 대표 중 열 명도 그 마음이 두려움으로 꽉 들어찼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백성들이 그들의 말에 노예가 되어서 두려움 때문에 전부 가나안에서 싸움 한번 해보지 않고 포로가 되고 만 것입니다. 두려워 떠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따라서 승리를 맛볼 수가 없습니다. 열 사람의 정탐꾼이 무서운 이야기만 잔뜩 하고 “우리 자식들은 다 포로로 잡힐 것이고 우리는 새와 같이 정처 없는 사람들인데 어림도 없다.”고 말을 하니까 그들이 전부다 그 두려움의 이야기를 듣고 고함을 치고 통곡하고 울고 애굽으로 도로 돌아가자고 야단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스스로 떠났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빼놓고 열 사람은 모두 다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계시니 두려움이 꽉 들어차서 그들은 가나안에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40년 방황하다가 다 죽고만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진 사람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그것이 대중적인 두려움을 가져오고 두려움을 품은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패배하고 절망합니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을 선정해야 될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는데 주 앞에 다 기도해서 하나님이 평안을 주는 분에게 찍어야 될 것입니다. 두려움을 주어서 부정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는데 따라가면 같이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환경을 보지 못하고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소원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금세와 내세를 맡기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믿는 분이 우리 민족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에 두려워 떠는 회당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누가복음 8장 50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날마다 승리하며 전진하는 것입니다.
  시편 118편 6절에 “야훼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는 것입니다.
  신학자인 뱅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외의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그 어떤 순간에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으로 열 두명이 갔는데 열 명은 두려움으로 탈락했지만, 민수기 14장 6절로 9절에 보면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말했지만 수가 10대 2로 온통 작으니까 사람들이 돌을 들고 그들을 쳐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굳세게 섰으므로 열 두 정탐꾼 중에 그들 두 사람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40년 후에 그 후손들을 데리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늘 철야하고 새벽기도 하고 집에서도 시간만 있으면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를 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길이 되시고, 참이 되시고 평안이 되시고, 무서운 일을 당할 때 두려움이 아니고 평안이 되게 되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살 수가 없습니다. 주님 항상 같이 살아야 돼요.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데로 따라가면 틀림없는 길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역사로 승리를 거둠 (가나안 전쟁)

  가나안 전쟁이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싸울 준비를 다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이제 군인들도 준비되었으니 이제 접전 붙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모든 준비가 다 된 것을 시인해 주시고 저녁에 해질 쯤 저녁에 기드온과 그 보좌관이 적군 진지에 들어가서 한 번 정탐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이르지 않고 기드온은 그 보좌관과 함께 적군들이 어떻게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13만 명이 포진하고 있는 진영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하도 수가 많으니까 자기들도 누가 누군지 잘 모릅니다. 기드온과 그 비서가 한 장막 근처에 가니까 거기에 장막에 있던 군인 둘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야, 나 참 꿈 이상한 것 꾸었다.” “무슨 꿈을 꾸었게?” “아, 꿈에 저 기드온, 이스라엘 진에서 보리떡 하나가 굴러오잖아. 보리떡, 찰떡도 아닌 보리떡이 굴러오기에 그게 무엇인가 보고 있으니까 아니 이게 우리 군인 천막을 탁 겹치더라. 그러니까 천막이 무너지면서 온 사람들이 돌연 고함을 치고 이리치고 저리치고 큰 전쟁이 벌어진 것을 보았다.” “아 그거? 그거 우리에게 미리 경보해주는 말인데 그 보리떡이 기드온. 잘나지도 못한 어느 보리떡 같은 놈이 하나 들어와가지고서 우리하고 싸우자고 하는데 보리떡은 기드온을 의미하는데 보리떡이 굴러 들어와서 천막 하늘을 쳤다는 것은 큰 전쟁도 못하고 우리 변두리에 있는 보초병 천막을 칠 것을 보여주신다. 그러면 그 천막이 무너짐과 동시에 아비규환이 벌어져서 전부 두려움이 퍼져 나가지고서 서로 원수가 되어서 침으로 우리들은 절단이 날 것이다.” 그래 기드온이 더 들을 이야기가 필요 없거든요. 우리 결론 다 들었다. 돌아가자. 그런데 그들이 본진으로 돌아와서 “자, 보리떡 나갈 시간 내가 정할 테니까 보리떡 다 따르라.”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창도 칼도 화살도 활도 없습니다. 전부다 항아리에 기름, 기름불 붙여가지고서 안고서 가다가 기드온의 불이여! 하나님의 불이여! 외치라 할 때 외치고 그것을 때리면 불이 갑자기 환해질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그 다음에는 저들이 서로 싸워 죽일 테니까 너희는 구경만 할 것이라. 가자. 그래서 300명이 따라오니까 별 소리도 안 납니다. 가까이 와가지고서 기드온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항아리를 탁 깨치니까 불이 확 붙는 것이 보이거든요. 그러면서 너희들 모두다 항아리를 깨고 외쳐라. 그러니 항아리를 깨고 어떻게 외치느냐? “하나님의 불이여! 기드온의 불이여!” 그렇게 고함을 치니까 적군의 진속에 혼돈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이스라엘 군인이고 누가 연합군의 군인인지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서로 치고 받는 바람에 이스라엘 군인들은 미리 알고서 변두리에서 “기드온의 칼이여! 이스라엘의 군인들이여!” 고함을 칩니다. 막 고함을 치는 그 고함에 더 흥분되어서 이 사람들이 서로 찔러 죽이는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밤새도록 고함치고 그들은 목이 쉰 채 새벽을 맞이했는데 얼마나 13만 명이 누리던 것을 다 버리고 도망을 쳤으니 거기에 부귀, 영화, 공명을 택하던 사람들도 금은보화를 얻을 수가 있었고 짐승들도, 뭐 귀한 것들 모두 다 수용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보석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싸움은 조금도 하지 않고 그들은 싸우는 이방인들을 보기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이스라엘은 마침내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자유를 얻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전리품도 얻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두려워하여, 두려움이 가득하여 일을 하고자 하면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믿음으로 담대히 전진할 때, 하나님의 역사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성경말씀을 마음을 열어놓고 읽고 말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 마음속에 비춰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에 지혜가 되고, 총명이 되고, 모략이 되고, 재능이 되고 하나님의 뜻이 길이 되고, 깨달음이 되고,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굉장히 귀중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여러분이 성경을 늘 읽고 그러고 하나님 말씀을 교회에서 귀로 듣고 깨달아 알고 그럼 여러분은 일반 사람들이 도저히 모르는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다른 선진국보다 돈도 없고 모략과 재능도 모자라지 않느냐?”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지만 모르는 소리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은 모든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자체가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의지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 보화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으로 그 크신 일을 하기를 원하시고 오늘도 이 자리에 주님은 말씀으로 여러분 속에 들어와서 여러분에게 기적과 이사를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날 미디안과 같은 원수마귀로 인해 염려, 근심, 불안, 초조가 강뭉처럼 밀려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능력과 권능의 주님이 계시니 두렵지 않습니다. 늘 믿음으로 두려움을 넉넉히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7.05.07. pm 17:34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