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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크리스천의 성경적인 물질관(마 6:19∼24)

 세상에서 돈을 잘 벌 수 있는 눈이 뜨인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돈만 버는 눈이 열린 것은 가장 좋은 눈이라고 할 수 없다. 정말로 눈이 좋은 사람은 물질세계를 뚫고 지나서 영원한 세계, 더 나아가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물질세계의 측면에서 보면 세상에는 참으로 진귀한 보물들이 많이 있다. 터키 톱가프 궁전에는 수많은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술탄 아흐멧 1세가 만든 톱카프의 단검, 86캐럿의 다이아몬드 주위에 49개의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일명 ‘스푼 다이아몬드’, 6666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황금촛대, 페르시아에서 선물로 보내왔다는 2만5000개의 진주로 장식한 황금옥좌 등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나 이 땅의 보물을 어떻게 모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보물들은 약탈과 살상을 통해 얻어지곤 한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은 근면과 성실로 물질을 모으며 살아가야 한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28:6)

 크리스천들이 열심히 일하여 부유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장 칼뱅은 직업 소명설을 통해서 성직과 세속직의 차이를 없애고, 자신의 직업에 성실하는 것이 바로 신의 소명을 잘 받드는 것이라고 보았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책에서 근대 자본주의가 개신교의 예정설 신앙에서 싹텄다고 보았다. ‘신의 선택 여부는 현세에서 경제적 성공으로 알 수 있다’는 믿음이 부의 축적을 낳았다는 해석이었다. 검약과 절제를 통한 부의 축적이 신의 소명을 실천하는 길로 여겨진 것이다.

 나아가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도 중요하다. 예수님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눅 12:19∼21). 그는 풍성한 물질을 소유하기는 했으나 누리지 못하고 죽고만 것이다. 그러므로 풍요한 물질을 잘 누릴 뿐 아니라(전 8:15), 구제와 자선으로 잘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크리스천의 물질관임을 깨달아야 한다. 더욱이 물질은 나눌 때 더 풍성해지기도 한다(잠 11:24∼25).

 이 세상에서 물질이 아무리 필요한 것일지라도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다.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은 이런 유언을 했다고 한다. “죽은 후에 나의 관 양쪽에 두 개의 구멍을 뚫어서 나의 양손을 관 밖으로 내놓게 하라. 관이 시내를 지날 때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영화나 부귀, 금은보화 등 그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보게 하라!”

 예수님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놓으라고 하신다. 세상의 보물들은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도둑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려면 천국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천국을 볼 수 있으려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탐욕의 눈이 깨끗이 씻음 받아야 한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우리는 탐욕의 눈을 씻고 천국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올바른 물질관을 갖게 되고, 구제와 자선을 베푸는 이웃사랑의 삶을 살게 된다(고후 12:15).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담임)

 

기사입력 : 2017.04.23. am 11:45 (입력)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