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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 ④ (79)
 
 깜보는 그릇에 남은 상뵤웃을 서둘러 먹었다. 주께서 오시는 길을 평탄케 하라고 촉구하는 이사야의 음성이 그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들이 설계한 이번 작전을 막아야 해요”
 마싼다도 고개를 끄떡였다.
 “너와 니니만 회복되면 우리 모두가 양곤으로 가야지”
 “어떤 경로로 갈 건가요?”
 “올 때처럼 지프로 가거나, 짜잉똥 공항에서 특별기를 이용할 수도 있어”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니니가 말했다. “이모, 전 라쑈 역으로 가서 열차를 타겠어요”
 열차를 이용하려면 좀 더 가까운 쉐냥 역에서 타고 따지역으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는데 니니는 라쑈로 가겠다고 했다. 
 “라쑈로 돌아서 가려면 시간이 상당히 더 걸릴텐데?”

 따치레익에서 라쑈 역까지 육로로 가려면 하루 이상을 잡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깜보는 니니의 생각을 짐작하고 마싼다를 바라보았다. “이모, 니니는 칼레 쿠미와 동행해야 하거든요”
 니니는 칼레 쿠미를 이끄는 회장이었다. 그래서 샨 주의 아이들이 집결하는 라쑈로 가서 그들과 함께 두 번째 집결 장소인 만달레이로 가려는 것이었다.   

 “아… 그렇구나”
 “저도 니니와 함께 라쑈로 가겠어요”
 그러자 우방뜨 과장도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실은 형님도 라쑈로 가서 열차를 타겠다고 했거든요”
 깜보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우방젠 병원장님도 양곤에 가시나요?”
 달리다굼 선교회의 설립자 우방젠 병원장이 직접 나선다는 것으로 보아 이번의 어린이 선언대회가 얼마나 중요한 역사적 행사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이지. 달리다굼 의사회가 이번 대회를 추진했으니까”
 “색동회의 세계화로군요”

 1868년 미국 감리교회가 제정한 어린이날이 1883년 국가적 행사가 되자 다른 나라들도 이를 따라 하게 되었다. 한국은 일제 치하였던 1923년 어린이를 바르케 키우자며 잡지 ‘어린이’를 만들었던 아동문학가들의 모임 ‘색동회’가 ‘어린이날’을 제정했으나, 1939년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1945년 해방과 함께 다시 계승되었던 것이다. 우방뜨 과장이 놀라며 물었다.
 “네가 색동이란 말의 유래도 아느냐?”
 “그럼요. 고려 아이들이 설날에 입는 색동 옷을 보고 몽골 사람들이 고려를 솔롱고스, 즉 무지개의 나라로 불렀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부른다더군요. 그래서 코리아 즉 한국은 저절로 하나님의 언약을 간직한 나라가 되었지요”

 그것은 곧 홍수가 끝난 후 노아가 받은 약속이었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 그리고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 것이라”
 “그러면… 첫 어린이날에 발표된 어린이 선언도 아느냐?”
 “물론이지요.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봅시다, 서로 존경하고 좋은 말을 씁시다, 길에서 놀거나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꽃과 풀을 귀하게 여기고 동물을 사랑합시다, 어른을 공경하고 몸가짐을 바로 하는 착한 어린이가 됩시다…” 
 그 말을 듣고 니니가 깜짝 놀랐다.
 “어머, 이번 대회에서 채택할 어린이 선언이 바로 그건데”
 

기사입력 : 2017.03.12. am 11:25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