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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족하지 않으면 복이 있습니다 - 오장용 목사(관악대교구장)

 침례 요한은 유대에서 예수의 오실 길을 예비한 사람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선지자가 나타났다고 흥분했다. 400년간 유대에는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가 없었기에 요한의 등장은 하나님이 그들 유대인들의 삶에 비로소 간섭하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뜻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거침이 없는 요한의 모습은 유대인들에게 변화의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의 기대감을 갖는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을 내가 아닌 다른 대상에 투영한다. 요한은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하는 사명을 가졌다. 그러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메시야를 통한 유대 사회에 대한 변화의 기대감이 간절하였다. 그는 메시야가 오셔서 유대인 사회의 잘못된 모습에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길 소원하였다. 그래서 그는 담대하게 외쳤다.

 예수는 침례 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해야 한다고 외치시는 예수의 소리를 요한도 들었다. 요한이 외친바와 다를 것이 없는 말씀에 그는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을 통해 전해들은 예수의 행적은 요한 그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기대감이 불안감으로 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그는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제자들 중 둘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눅 7:19)라고 물어보게 했다. 예수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친절히 설명을 해 주셨다.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 7:22)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가르침이 유대사회에 큰 혁명적인 상황으로 나아가지 않았기에 요한은 마음이 무거웠다. 그가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의 임하심이 이렇게 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힘들어 했다.

 한국사회가 어렵다고 한다. 의견과 바라는 것이 서로 다르기에 사람들의 마음이 나누어지고 있다. 그래서 변화의 기대감을 담아 거리에서 외치고 있다.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소원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에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실망과 좌절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요한의 제자들을 바라보시면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눅 7:23)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지금의 한국사회를 바라보면서 실족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가 기대한대로 변화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족한다면 아무리 선한 뜻을 가지고 있었던들 자신에게는 유익될 것이 없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기에 지금의 현실 가운데서 한국 국민들이 실족하지 않으면 이 나라에는 복이 임한다.

 

기사입력 : 2017.03.05. am 10:08 (입력)
정승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