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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환자 네 사람의 선택

“엘리사가 이르되 야훼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야훼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중략)…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열왕기하 7장 1∼8절)

대한민국은 우리의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
십자가의 희망 선포하고 믿음의 행진 이어가면
반드시 하나님이 도우시고 승리의 길로 인도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선택의 기로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나의 모습은 과거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택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매순간 기도하고, 우리 마음속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따르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선택한다면 결국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헨리 비처 목사님은 “우리는 매일 두 개의 손잡이를 잡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말했는데 “한쪽 손으로는 두려움의 손잡이요, 다른 한쪽은 믿음의 손잡이”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선택해 절망하고 실패할 수도 있고, 믿음을 선택해 담대히 나가서 기적을 체험하고, 성공한 인생을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1. 절망이 땅거미처럼 사마리아 성을 점령하다


 본문 말씀을 보면 아람 왕 벤하닷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에워쌌습니다(왕하 6:24). 성이 포위되자 점점 먹을 것이 없어졌고, 굶주림으로 결국 자식을 잡아먹기까지 시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성 위를 걸어가는데, 한 여인이 “왕이여! 재판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배가 너무 고파서 어제 내 자식을 이웃과 삶아 먹었습니다. 오늘은 이웃의 자식을 삶아 먹기로 했는데, 자식을 숨겨버리고 내놓지 않으니 이 어찌 된 일입니까”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 여인의 말을 들은 왕은 자신의 옷을 찢어 버립니다. 사람이 얼마나  답답하면 옷을 찢었겠습니까? 어떻게 자기 자식을 잡아먹은 비극이 왔는지 탄식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들이 살던 사마리아에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왕은 “엘리사가 아직도 살아있으면 내가 네 목에 칼을 대겠다”면서 부하에게 “엘리사를 찾아가서 죽여라.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도움을 청해서 도움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뭐하고 있느냐”라고 말합니다. 자기 나라가 잘못되는 것을 선지자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교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일천만 성도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될 때가 지금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의 부르짖음을 들으셔서, 하늘 문을 열어 주시면 우리가 잘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과거사를 되돌아보면 안 되는 것이 지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추운데도 불구하고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 외치는 촛불시위도 폭력이 아닌 질서정연한 마음으로 나가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우리 한국이 고통스럽고, 억울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잘 되겠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이만큼 자라게 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2. 절망에 처한 네 사람이 희망을 선택하다


 사마리아 성에 사람을 잡아먹을 정도로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엘리사는 장로들과 함께 집에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왕이 자신을 죽이고자 사람을 보낸 것을 알고 문을 닫으라고 명했습니다. 그래서 문을 닫는데 사람들이 칼을 들고 와서 엘리사가 어디 있냐며, 이 어려움이 선지자의 책임이라며 엘리사의 목을 쳐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면 밀가루나 보리나 먹을 양식이 주체할 수 없이 많이 주어질 것이다”라고 예언했습니다(왕하 7:1). 이 말에 왕의 최측근이었던 장관이 “하나님이 창문을 열어 놓은들 당신이 말한 양식이 성문가에 있을 턱이 있느냐?”라며 불신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먹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것을 예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희망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희망과 절망이 공존합니다. 우리는 한쪽 손에는 희망을 잡고, 한쪽 손에는 절망을 잡고 살아 갑니다.

 사마리아 성 안에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무슨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오래전 독일에서 유명한 신학자인 몰트만 박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의 설교가 희망이 없었던 사람에게 소망을 준다며 ‘희망의 설교’를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라고 배웠다고 대답했습니다. 몰트만 박사 자신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포로가 되어 영국 포로수용소에 있는 동안, 자신이 살았던 함부르크가 폭격을 당해서 가족의 생사도 알지 못했고, 애인은 죽었으며, 어디를 가도 절망밖에 없어서 죽으려고 작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 영국 군목이 몰트만 박사에게 성경을 갖다 주었습니다. 성경을 펼쳐 읽은 곳이 바로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서 이 땅에 와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못 박혀 죽었다 살아난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내 마음속에 희망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예수님만이 절대절망에서 절대소망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포기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신학’을 전달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한국의 조용기 목사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본 후 그는 “내가 당신 집회에 몇 번 참석해 보고, 당신 같은 말씀을 증거 하면 수많은 사람을 살리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저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만이 희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의 목회자와 희망의 신학자로서 친한 친구가 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죄와 허물을 예수님이 대신 갚아 주셨으니, 죄인이 되어도 구원받을 희망이 있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우리 병을 청산해주었으니 건강해질 희망이 있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서 매달려서 저주를 청산해주셨으니 우리가 축복을 받아 살 희망이 있고, 예수님이 죽어서 3일 만에 부활하셨으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니 이를 믿느냐’하는 그 말씀 속에 영생의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성의 왕부터 백성까지 모두 다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희망을 말하는 엘리사마저 칼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성 밖에서 나병환자 네 사람이 탄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부정한 병에 걸렸기에 성에서 쫓겨나서 산비탈이나 시냇가에서 기거하면서 성 안에서 날라다 주는 음식을 먹고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성 안에도 굶고 있으니, 성 밖에도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 때 나병환자 네 사람이 앉아서 서로 토의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굶어 죽을 것인데, 성 안으로 들어가자!” “성 안에도 우리에게 줄 음식이 어디 있겠느냐? 성 안에 들어가면 죽는다. 앉아서 기다리자” “이렇게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다. 언제 적군이 물러갈지 모르지 않느냐?” 라는 말이 오고갔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들어가도 죽고 앉아서도 죽을 바에야 아람 군에 항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면 살고 죽으면 죽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 그곳에 가자”라고 말하자, 네 사람이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이들은 몸이 병들었기 때문에 한 사람이 넘어지면 네 사람이 줄줄이 다 넘어집니다. 그래도 서로 격려를 합니다. 놀라운 것은 희망을 갖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같이 조인을 해서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네 사람의 나병환자가 걸어가는데, 그 속에 하나님이 함께 가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넘어져서 서로에게 “정신 차리고 걸어라. 똑바로 걸어”라고 소리 치면, 하나님은 이것을 확대하여 아람 군대에 들리게 하신 것입니다.

 아람 군대 군사들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갑자기 대군대의 행진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빨리 가자. 일어나라. 행진하라!” 아람 군사들은 생각하치도 않았던 소리를 들으니 놀라서 밥상을 그대로 둔 채 달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든 군대들이 다 달아나는데, 그중에 진실로 적군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편안한 길을 가기 위해서 싸움이 붙었습니다. 자기들끼리 창칼에 찔려 죽는 비극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다 절망에 빠져 도망친 것입니다. 여기서 절망을 이긴 사람은 누구입니까? 희망을 말한 네 사람의 나병 환자입니다. 이들은 희망 때문에 승리한 것입니다.

 어떤 절망적인 환경에 있더라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이 나병환자들이 나아간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열왕기하 7장 3절로 4절에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절망이 다가올 때, 절망을 받아들이지 말고 소망을 바라면, 마음에 소망이 꺼지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천지를 진동시키는 믿음의 행진


 그들의 행진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행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행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네명의 나병환자들과 함께 행진을 한 것이 천지를 진동하는 행진이었습니다.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은 이사야 41장 10절로 16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야훼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야훼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구더기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버림받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위기를 만났을 때, 무엇보다도 마음을 잘 붙들어야 됩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다”(잠 25:28)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벽이 있어야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벽이 없다면, 적의 침범에 무방비 상태가 되고, 적들이 들어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킬 것입니다. 마음을 제어하지 않는 사람은 성벽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악한 마귀가 틈을 타 우리의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장애물을 만났을 때, 주저앉거나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믿고,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홍해도 가르시고, 요단강도 가르시고,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후진이 아니라 전진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끝까지 믿어야지 뒤로 물러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절망을 딛고 일어나 희망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작가 맥스 루케이도는 “지팡이를 들어야 홍해 바닷길이 열리고, 성을 두루두루 돌아야 나중에 성이 무너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야 예수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시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바닷길이 열리고, 성이 무너지게 되고, 예수님이 뒤를 돌아보시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나는 못 한다, 나는 안 된다, 할 수 없다”라고 하지 말고,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라고 하십시오.

 오병이어라도 가지고 나와서 주님 앞에 행하면 주님이 30배, 60배, 100배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 편에서 함께 움직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낙심하고 앉아있거나 뒤로 물러서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사랑하는 백성들을 준비하여 그 백성들과 함께 큰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시아에서 우리 대한민국을 선택하셨습니다. 어떤 시련이 있어도 대한민국 국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일 때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의 기도가 하늘 보좌를 진동하게 할 줄 믿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들어가서 철고랑을 차고서 노래를 부르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니깐 천지가 진동해서 그 감옥 문이 열리고, 철고랑이 다 끊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믿음의 선언을 하고 나아가면 하늘이 진동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결심을 하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는 것입니다.
 또 “너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그 자리에 하나님도 오셔서 손잡고 같이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절대절망 가운데 절대희망이 되어 우리에게 와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살면서 장애물을 만났을 때, 주저앉거나 뒤로 물러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희망을 향해 계속 전진해 나가겠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성령님 함께하셔서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6.12.11. am 10:28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