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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내진 설계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시편 91편 14∼16절)

 올해 우리나라에도 여러 번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제 한반도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어 지진을 대비한 내진 설계가 필요합니다. 내진설계를 따라 짓지 않은 건물들은 지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지진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영적 지진이 왔을 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인생에도 내진 설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1. 마음속에 일어나는 영적 지진


 세상은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탐욕으로 파탄을 일으키고 노사분쟁, 전쟁의 공포, 정치의 혼란 등으로 평안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영혼을 흔들어놓는 영적 지진으로 삶의 터전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인생을 포기하고 맙니다. 하지만 시편 55편 22절에는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에 요동함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마음에 지진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켜주시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살지, 그렇지 아니하면 영적 지진이 우리의 생명의 근원을 온통 흔들어놓아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마음에 내진설계를 해놓아야 합니다. 인생에 지진이 다가와서 우리를 흔들어놓아도 끄떡없고 당황하지 않는 것입니다. 

 15년 전부터 저는 무엇을 하든 집중해서 일하려고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칼로 찌르는 듯이 아팠습니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이 거의 다 막혔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위험하니 약물로만 치료하지 말고 수술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 후 에도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유했습니다. 최근 운동을 해도 심장에 많이 무리가 와서, 용기를 내어 수술을 결심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고 지난주에 입원을 했습니다. 수술 전 다시 진찰을 해보니 확실히 제 심장동맥이 막혔있는 것이었습니다.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다음날 수술실로 들어가는데 희한한 일이 생긴 것입니다. 가슴에 기계를 집어넣어서 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막힌 동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의사의 말로는 막히지 않고 아주 깨끗해서 한 2년 동안 끄떡없겠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이 내진설계를 해주신 것입니다.

 예전에 손녀가 제게 와서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중간에 갑자기 중지해서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문이 안 열리자 겁이 나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살았어요, 회개합니다. 저를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한 후 버튼을 누르니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난 다음, ‘이 애가 나에게 설교를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살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고 생각 했습니다.

 우리가 위기를 만나면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라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지진을 십자가를 통해서 다 극복하셨습니다. 죄로써 일어나는 지진, 질병으로 일어나는 지진, 저주로 인해서 일어나는 지진, 죽음으로 일어나는 지진, 온갖 지진을 예수님은 몸으로 정복해서 극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며 우리를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고, 다른데로 눈을 뜨면 안 됩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를 얻는 수단으로써 교회 다니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교회에 와서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안됩니다. 십자가 중심으로 교회 와서 내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예수님과 더불어서 섬기는 생활을 하는 것이 내진설계를 따라 자기 자신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3절로 45절에 보면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와서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섬기려고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 교회를 통해서 돈벌이하려는 상업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이용해서 돈벌이하려고 하면 개인도 교회도 지진이 일어날 터전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편 가르기, 회개 없는 분쟁 등 이런 것은 모두 다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고전 1:11∼12) 교회에서 편 가름 하는 것은 지진이 다가올 징조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우리가 서로 화목하고, 사랑으로써 하나가 되는 것이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흔들리고 부서지는 기반들


 흔들리고 부서지는 기반에 인생을 건설하면 반드시 지진의 참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서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 8:10∼11)

 율법주의적인 신앙은 서로 정죄하고, 반대하고, 생활을 파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루는 성전 근처에서 말씀을 전하는데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서기관들이 한 여자를 잡아서 끌고 옵니다. 사람들은 이 여자를 예수님 발밑에 내동댕이치면서 “주님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성경에 간음하는 자는 돌로써 쳐죽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손에 돌멩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엎드려서 손가락으로 글을 쓰고 있다가 허리를 펴서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춰보고 난 다음에 “당신들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치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주님이 다시 허리를 굽혀서 손가락으로 씁니다. 무얼 썼겠습니까? 감추었던 죄를 주님이 써내려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쓰는가 싶어서 어깨 너머로 보니깐 자기가 돌로써 이 여자를 쳤다가는 예수님이 그 돌 가지고 자기가 맞게 된  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골탕을 먹이려고 왔다가 혼비백산하고 돌을 다 그 자리에 내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돌로써 쳐야 율법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우리에게 오신 것은 죄인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용서하고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내가 온 것은 정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 온 것이다. 집에 돌아가서 죄를 다시는 짓지 말라”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용서와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비평하고, 죽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지진이 일어나고, 사회에도 지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평론하면 그 평론으로 자기가 정죄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의식주의를 주님께서는 파멸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교회에 모이는 것입니다. 교회에 목사와 예배가 있는 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지, 사람을 죽이려고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2장 9절로 12절에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위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율법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도 예수님이 치료하면 하나님 법을 어긴 것으로 정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손 마른 사람이 팔을 못 쓰고 있으니깐 예수님은 손을 고쳐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사람들이 비난을 할 때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양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져 있으면 안식일날 건져내지 않겠느냐? 양보다 사람이 얼마나 귀하냐? 사람에게 치료를 행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라며 가는 곳마다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진설계를 따라 인생이 지진에 부딪히지 않도록 하려고 애를 쓰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형식, 이것에 정반대되는 일을 주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을 하시는 분이지, 율법을 진전시키려고 오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흔들리고 부서지는 기반들, 율법주의적 신앙, 제사 중심의 종교,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만세 반석으로 삼고 기대지 아니하면, 무너지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절로 3절에 보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우리를 종교의 노예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인생으로 만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 영원무궁하신 반석


 우리 삶의 영원무궁한 반석은 예수님 십자가 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허물을 대신 씻어 주시고, 보혈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하고 허물을 씻으시고, 용서와 의를 성령 충만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서 우리에게 병 고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시편 91:14∼16)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건져주시고, 높여주시고, 응답해주시고, 건지고, 영화롭게 해주시고, 장수하게 하시고, 행복하게 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주님인 것입니다.

 그리고 4차원의 영성 속에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자는 다 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바람과 같은 성령을 우리가 모시려면 우리도 바람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바람과 같이 보지도, 만질 수도,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는 분을 어떻게 모실 수 있을까요? 사람은 사람하고 대화를 할 수 있지 동물하고 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바람 같이 되어야 성령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바람 같은 옛 사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만리장천 멀리 계신 줄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3차원으로 계산을 하면 하나님은 아주 멀리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4차원의 세계에 살고 때문에 계산이 필요 없습니다. 이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이 되어야 하나님이 우리와 같게 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하나님이 그 생각을 통해서 같이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소원은 꿈입니다. 뜨거운 마음의 소원이 우리의 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꿈을 통해서 일 하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믿음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믿음, 우리 믿음이 함께 믿음을 통해서 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이 말씀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을 하면 하나님이 그 믿음의 말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을하고, 꿈을 꾸고, 믿고, 창조적인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나는 건강하고 튼튼하다. 나는 좋다, 행복하다” 이 말은 손으로 붙잡아볼 수는 없지만은 그것이 바로 차원이 다른 영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세계에 필요한 존재로써 목적을 두고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로 6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계가 지어지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시고,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은 장차 다가올 세월이 지금보다 끝없이 좋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세계를 만들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데리고 영원무궁토록 살게 하고자 해서 우리를 이 세상에 불러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녀들이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와 행복한 세계 속에 살려고 뜻하신 것입니다. 

 내진설계를 따라 짓지 않은 건물들은 지진을 감당 못 합니다. 우리 인생도 내적 깨달음이 있어서 예수님을 삶의 주초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삶의 목적이 되지 못하면, 수없이 무너지고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만세 반석을 세워놓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을 세워놓으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기초석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만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녀들이 되어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을 세워놓아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는 승리의 삶, 행복한 삶을 살게 인도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6.11.20. am 10:28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