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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적인 고통과 한없는 위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장 1∼12절)

 갈보리산 위에서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며 죽어가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볼 때 너무나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가슴 아파한다 해도 예수님이 당하셨던 고통의 백만분의 일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세상에서 위로받지도 못하고, 죄와 불의를 이기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과 위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다는 말 이외에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참으로 많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고후 1:8∼9) 바울도 엄청난 고난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위로 때문에 그 고난을 이기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강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위로를 줄 수가 있을까요? 절대절망에 빠진 이 세상에서 진정한 위로를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1.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세상을 떠나실 때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죄와 죽음과 저주가 임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의 노예로 종노릇하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로마서 5장 17절로 18절을 보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후예인 인간들은 모두 죄인으로 태어나 죄 가운데 살다가 죄로 말미암아 죽어 형벌에 처하게 되었으나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값을 대신 지불하셨다는 것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선물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1절로 22절은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 죽었지만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 안에서는 우리가 다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지 아니하셨으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중형벌과 삼중절망으로 모든 사람들은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는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중형벌과 삼중절망이란 첫째 죄악의 벌을 받은 것이요, 둘째는 허물과 더러움을 씻지 못하고 허물과 더러움의 종이 되어 사는 것이 형벌이요. 셋째는 병들고 육체가 죽는 것이고, 넷째는 저주가 가난으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는 것이고, 다섯째는 죽음과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죄악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영혼이 죽고, 범사가 저주를 받고, 육체가 병들어서 고난 당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들에게 지워진 모든 저주와 고통을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형벌은 극악한 범죄자나 반역자에게 내려지는 최고의 형벌로써 죽는 그 순간까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극심한 고통을 겪도록 고안된 형벌입니다.

 십자가형을 선고 받으면 먼저 채찍으로 때리는 형벌이 시작됩니다. 채찍의 끝에 쇠붙이나 짐승의 뼈를 박게 됩니다. 그리고 채찍을 칠 때마다 끝이 몸에 파고 들어가고, 당기면 그 것들이 몸에서 빠져 나오며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피를 쏟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는 40대를 때리게 되어 있는데, 40대에 하나 더 매를 때리면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40에 하나 감한 매를 때리면 목숨은 붙어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채찍에 맞으셔서 맞을 때마다 살점이 터지고 피가 흘렀습니다.

 채찍질을 당한 후에는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지고 갈 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를 올라갔던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면 탈수증이 생겨서 물을 몹시 원합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에게 모욕적으로 신 포도주를 마시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십자가에 매달아 놓으면 3일 정도는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6시간 만에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을 당하셨던지 예수님은 6시간 만에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후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한정 없는 고통을 당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고통당할 이유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고통을 다 당하셨던 것입니다.


 2. 극한 고통이 가져온 한없는 위로


 예수님이 당한 고통은 인간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한없는 고통을 당해도 예수님께 나오면 위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위로를 받지 못한 사람이 살아나갈 힘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떠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더라도 예수님께 나가서 기도하면 위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1절로 3절에는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야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세상에 오신 그 모습을 이사야에 상세히 기록한 것은 인간의 삶 속에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어떠한 형편에 있어도 오늘 이 시간에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온전히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은 이미 인간들이 당할 수 있는 고통들을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로서의 특별한 대우를 받고 산 적이 없고 우리와 꼭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당하신 극한 고통은 극한 위로를 갖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이 아무리 심할 지라도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위로로써 치료하여 주시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3절로 4절은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고난당한 것은 우리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당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거꾸로 해석해서 하나님에게 자기가 잘못해서 징벌을 받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을 해석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사야 53장에는 천국의 은혜가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3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구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도 이사야 53장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사야 53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구원의 진리를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우리를 대신한 예수님의 고통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600년 전, 계시를 받은 선지자 이사야가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죄와 허물로 고난당한 것이 아닙니다. 이 죄도, 저 죄도 우리가 지은 죄를 예수님이 “다 내가 지었다”라고 책임을 지신 것입니다. 죄를 지은 우리가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그 형벌이 예수님께 다 넘겨진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와 의를 받게 되고, 예수님께서 심판과 형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은혜와 용서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말씀이 의미가 깊습니다. 조금 이룬 것이 아니라 다 이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인 주님이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짊어졌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음부까지 내려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께 나와 믿기만 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시고, 기쁘게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말씀하신 그 의의 뜻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성경에 의롭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무섭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용서와 사랑으로써 하나님이 의롭다고 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안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믿음’ 하나가 천지간에 있는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것이 우리에게 나온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으니 우리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자랑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자랑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사야 53장 10절은 “야훼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 즉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야훼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고난당한 것을 크게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것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우리를 위해서 상함을 받고, 우리의 질병을 대신 받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 53:12)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와 의, 병에는 치료와 건강 이 두 가지를 결사적으로 지켜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상 사역 중 3분의 2를 병 고치는 데 보냈습니다. 도시와 촌락을 다니면서 죄인을 찾아서 용서해주시고, 병든 자를 찾아서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서 용서와 치료를 베풀어 주시고 가셨음에도,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뜨겁게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하기 위해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조건을 다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말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고 나아가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조건을 다 이룬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는데 필요한 조건을 예수님이 다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 들이기만 하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님은 매우 부요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때문에 가난하게 되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부요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헐벗고 굶주리신 이유가 그 대가로 우리를 부요케 하려 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돌보아 주어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대단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습니다. 나눠주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폭포 아래에서 폭포를 쳐다보면 쏟아지는 물기둥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 십자가를 쳐다보면서 그 고난의 처절함과 극한 슬픔이 모두 나의 죄를 씻어주기 위해서라고 깨달으면 감동을 받습니다. 또 나의 더러움을 씻어주기 위해서, 나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서, 나의 저주를 제하기 위해서, 나의 죽음 대신 영생을 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고난당했다는 것을 쳐다보면 대단하고 감격스럽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수십 번이고 갈보리 십자가를 쳐다보고,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아야 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는 말씀처럼 입으로 시인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대단한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보혈로 나는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어서 그 보혈로 더러움이 씻어지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삽니다”라고 입으로 말하면 그 말이 그것을 이루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말로써 시인하십시오.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위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를 가지고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위로를 부어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위로를 받게 되면 행복해지고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간구하여 위로와 평안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고통이 우리의 위로가 됩니다. 받은 위로와 사랑 나누며 살아가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6.10.30. am 07:48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