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말씀 > 조용기목사 주일설교
용서와 사랑, 정죄와 심판

“요나가 야훼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중략)…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요나 3장 3∼10절 )

 우리는 속사람과 겉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대개 속사람을 정의롭고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겉사람을 죄짓고 방종하고 세속적인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속사람은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을 칭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겉사람은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미워하고 책임을 전가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속사람을 따라 살며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서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1. 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성경을 보면 요나가 살고 있던 시대에는 앗시리아가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이웃 나라를 다 궤멸시키고 그 나라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서 자기 수도로 끌고 가서 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들은 앗시리아 사람을 매우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유대 선지자 요나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가 돌이키지 아니하면 40일 후 무너질 것이라”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니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지 않으면 40일 이내에 수도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라고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 좋았습니다. 국가도 막지 못한 앗시리아를 하나님이 직접 치겠다고 하는데 그 재앙을 말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 말씀을 듣자마자 욥바에 내려가서 니느웨와 반대쪽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것입니다. 그것도 배 제일 밑창에 내려가서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에서 구부리고 하나님 말씀에도 안 깨어나려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 선원들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바다 가운데로 들어가자마자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엄청난 바람이 불어서 배가 박살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 배 선원들이 배를 바로 잡으려고 무수히 애를 써도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털어버리고 멀리 도망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뱃사공이 “이러다가는 안되겠다”면서 “틀림없이 이 배에 불순한 사람이 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전부 모아서 “우리 배가 이 지중해 일대에는 안 갔다 온 곳 없이 가도 이런 일은 안 당했는데, 오늘은 욥바에서 다시스로 가는 이 항로에 이런 험한 파도가 생기는 것은 틀림없이 하늘의 벌을 받은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 벌이 내리는지 우리 고백하자. 혼자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여기 배 탄 사람들을 다 물에 빠져 죽도록 할 수 없지는 않느냐?”고 말한 후 제비를 뽑으니까 요나가 제비를 뽑은 것입니다. 선장은 요나를 붙잡고 “당신의 무엇 때문에 이 폭풍우가 몰려오느냐?”고 물으니 “하나님이 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40일 이내에 회개시키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원수이기 때문에 멸망당하는 것을 원해서 다시스로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나 때문에 이런 것이니 나를 처치하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옛말에 ‘파도가 바다에 일면 돛대부터 찢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건 사람의 지혜와 총명으로는 배를 바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큰 환난을 만나면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벗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나를 바다로 던지십시오. 나는 죽었으면 죽었지, 앗수르에게 좋은 일은 안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너희 하나님이 너를 심판한 것이니 우리는 어찌할 수 없다”면서 요나 를 잡아 바다에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아주 집채만한 물고기가 한 마리가 공중에 얼른 떠가지고서 요나를 받아 먹어버렸습니다. 요나는 도망치면 하나님이 못 따라올 줄 알았지만, 물고기를 통해서 따라오니 요나가 감당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죽었다고 생각한 요나는 물고기 배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아주 널찍하고 여의도순복음교회 기도원 기도굴 보다 큰 물고기 배 속 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심장 소리가 벌컥벌컥 나고 숨소리도 들렸습니다. 소화가 안 되는 물고기는 배 안에 요동을 치니까 소화시키려고 물을 계속 마십니다. 배 속 의 요나는 물에 빠져 죽을 지경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살리기 위해 큰 물고기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가면 어려운 문제를 당했을 때 도저히 인간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하나님은 이미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성격 중에 제일 좋은 것이 예비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비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예비하여 주셔서 우리가 큰 상처 입지 않도록 멸망하지 않도록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예비해서, 물고기가 요나를 삼켜버렸지만 하루가 지나도 소화가 안 되고, 이틀이 지나도 소화가 안 되고, 사흘이 지나버렸습니다. 물고기는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물고기는 결국 요나를 토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요나는 그 길로 니느웨 성을 가로질러 가면서 외쳤습니다. “40일 이내에 회개하지 아니하면 니느웨는 멸망 받는다” 생각해보십시오. 물고기 배 속에서 나와서 온몸에 비린내가 나는 사람이 회개하라고 고함치는데 우습지 않습니까? 하늘나라의 능력은 성령께 있습니다. 성령이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굉장한 것이 가슴에 부딪히고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60세가 넘으면 외로워지고 고독해집니다. 주변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외롭고 고독해집니다. 그리고 우울증도 생깁니다. 우울증이 생기면 매우 괴롭습니다. 우울증이 뭐가 그렇게 괴롭냐고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마음속에 슬픔과 좌절과 절망감이 다가오고 불안과 공포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성령님을 모셔드리면 성령은 산골짜기 목동의 집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사르르’ 깔아지면서 아주 달큼하고 조용한 은혜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서 운행한다는 것은 체험을 해보지 않고는 이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마음을 점령해주면 마음이 완전히 새로워지고, 쾌활해지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꼭 성령충만 유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하면, 일어서거나 앉아도 성령이 충만하고 성령님이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요나가 사흘 길을 걸으면서 회개하라고 고함을 칩니다. 요나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강력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성령이 말을 옷 입고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왕이 듣자 마음에 충격을 받고, 당장 베옷을 입고 잿더미 위에 올라앉아 회개하는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해야 될 것은 구제활동도 하고 사회봉사도 하지만 먼저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불어나가서 안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 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니느웨 성이 깨어지듯이 교회도 깨어져야 합니다. 미국에서 성령운동이 일어날 때도 온 도시가 깨어졌습니다. 우리 한국도 평양의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자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깨어졌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나타나시면 또다시 80만 성도가 될 것입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요나 1장 1절로 2절에 보면 “야훼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순종하여 니느웨의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는 배를 타고 출발했지만, 동시에 보기 드문 태풍이 불어 닥친 사실은 성경에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요나는 분노해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망하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은 그 사람들이 다 벌을 받아 전쟁에 짓밟히고 찢겨서 죽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그들의 재산과 함께 멸망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요나는 원할지라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보고 “왜 조용기 목사는 주의 종이면서 오랜 세월동안에 짓밟히고, 욕을 얻어먹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가해자들을 저주 안하느냐? 성경을 보니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주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하리라고 했으니, 목사님도 강단에서 성도들 앞에서 저주하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대답을 합니다. “나는 주의 종으로 부름 받았을 때, 다른 이들을 축복하라고 부름 받았지 저주하라고 부름 받지 않았다”

 제가 평신도 같으면 마음대로 저주도 해보고, 저주도 받아보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과 자비를 전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때문에 저주를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어쩔 때는 저주하고 싶은 생각이 여기까지 올라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이 마음에 슬픔을 느끼시는 일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요나는 니느웨가 망하게 되기를 그렇게 원했으나, 하나님은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요나가 회개하라고 외치고 40일이 지난 다음, 요나는 성 밖에 나가가지고서 높은 데 올라가서 움막을 하나 지어놓고, 움막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혹시 실수로 벌을 안 내리다가 ‘아차 내가 잘못했구나!’라고 깨닫고 니느웨에 벌을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좀 돌이켜서 니느웨를 치십시오!라고 생각하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깐 호박넝쿨이 칡넝쿨하고 초막을 덮어서 하루 만에 푸른 풀밭을 이루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호박넝쿨 같은 칡넝쿨을 초막에다가 덮어 씌워주셔서  “아 좋다. 그거 참 좋다. 햇빛이 가려져 시원하고, 상쾌하고 이렇게 좋을 수가 있느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깐 벌레가 와서 다 깎아 먹어서 풀이 다 말라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깐 “아니 하루저녁에 벌레가 와서 깎아 먹을 바에야 뭐 하려고 이걸 내게 주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은 아침에 해가 떠오르자 동풍을 불게 하여 날이 얼마나 더운지 요나가 정신을 차리려해도 혼미한 상태에서 “차라리 날 죽여주소!”라고 말할 지경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야훼께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야훼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욘 4:1∼3)

 박넝쿨, 벌레, 뜨거운 동풍, 태양이 뜨거워 요나가 정신이 혼미하게 되었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메시지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박넝쿨도 쓰시고, 벌레도 쓰시고, 뜨거운 동풍도 쓰시고, 태양도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 써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시고 설득시키는 것입니다. 무슨 큰 사건만 일어나야 하나님이 계신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집에 있는 귀뚜라미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를 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필요하면 벌레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하나님 야훼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욘 4:5∼8)

 하나님은 요나를 꾸짖으시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욘 4:9) 요나가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나님에게 대들어서 좋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 4:10∼11)

 하나님은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박넝쿨이 시드는 것과 햇빛이 비추는 것에 대해 불평을 말하면서 네가 이 성이 무너지기를 기다리는데, 내가 왜 성을 못 무너지게 하는지 아느냐?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십이만 명이다. 심판을 내리면 십이만 명의 사람들이 죽는데, 얼마나 비참한 일이냐? 그러니깐 네가 필요한 박넝쿨 보다 내가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이 더욱 중요하다. 네가 말씀을 전해 온 도시를 바꾸는 것은 잘 했지만, 그렇게 자꾸 뾰로통하고 화를 내면서 내 앞에서 달라지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2.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와 하나님의 용서


 대속기도는 효과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따라 나온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가서 일가족을 잃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윤리와 도덕적으로 무너진 너무나도 부패하고 파탄에 이른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천사를 보내어 시찰을 하신 후, 여리고 성을 멸망한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 성도 멸망시키려고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착실한 종이었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 성을 무너뜨리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먼저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중보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 성에 50명의 의인이 있으면 용서해주시겠습니까?”라고 아브라함이 묻자, 하나님은 “50명 있으면 용서해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그러면 5명이 덜 해서 45명만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그래도 살려주겠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면 건방진 저를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은 “40명만 있으면?”이라고 묻자 “40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30명만 있으면?”이라고 물으니 “30명이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20명만 있어도?”라고 하자 “20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어지간히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도 롯이 얼마나 신앙생활을 안했던지 20명도 전도를 못해 놨습니다. 나중에는 “10명의 의인이 있어도 심판하시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10명만 있어도 심판 안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명의 의인만 있어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결국 10명의 의인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성에는 큰 지진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흔들려서 무너져 내려 박살이 나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련과 큰 재앙이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경주에 일어나는 지진을 보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이 돌보아 달라고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성령 충만을 주셔서 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살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해도 그 일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면서 일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면 하나님이 목적 달성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다가 언제 어떻게 갈는지 모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음 저 건너편에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해서 40일 동안이나 제자들 가운데 나타내 보이시고, 사람이 죽어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버리면, 손으로 짓지 않은 낙원과 낙원보다 더 높은 천국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낙원에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낙원에 들어가는 것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그 믿음으로 낙원에 들어가면,  그곳에 준비된 삶이 얼마나 기쁘고 즐겁던지 사도바울 선생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 아니한 사람, 하나님을 반역한 사람은 음부로 내려갑니다. 음부는 지옥에 내려가기 전에 대합실입니다. 낙원과 천국처럼 음부는 지옥의 대합실로써 음부에서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내려갑니다. 그곳의 번뇌와 고통이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안 태어났으면 좋았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서 순교를 당하면 천국에서 제일 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많은 사람을 의롭게 돌아오게 한 전도자가 큰 상을 받습니다. 그러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한 사람들도 천국 시민으로서 말로 할 수 없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주님을 감사하고,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임하도록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세상적인 겉사람을 따라 살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속사람을 따라 살며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서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영향력을 미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6.10.23. am 08:00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