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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3장 39∼43절

 우리가 예수님과 마음에서 만나고 난 다음, 우리가 느낀 바를 입술로 고백할 때 그 고백이 지금부터 영원까지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강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 자기의 신앙고백을 하고, 영생을 얻는 행운을 얻게 된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 톨스토이는 인생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이라는 열차를 기다리고, 어떤 사람들은 천국이라는 열차를 기다린다”

 예수님 옆에 매달렸던 두 사람의 강도는 똑같이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지옥을 선택하고, 다른 한 사람은 천국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1. 끝까지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끝까지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사람을 구원 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인 두 사람이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에 못 박혀 있었는데, 한 죄인은 예수님께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며 도전을 했습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눅 23:39) 하지만 다른 죄수는 마음에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눅 23:40∼41)


 2. 주님께서 귀하게 보신 죄인의 고백


 주님께서 귀하게 보신 이 죄인은 다른 동료 죄인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 동료 죄인을 꾸짖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1절을 보면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라며 대단한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그 고백에 포함시켰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가 되시고 다가오는 나라의 절대 주권자가 되심을 고백을 했습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2∼43) 오늘 십자가에서 같이 매달려 죽을 것인데, 오늘 죽고 난 다음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낙원에 함께 만날 것이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겉사람과 속사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겉사람은 육체의 사람이고 속사람은 우리 영혼의 사람인데, 믿지 않을 때는 속사람은 죽어있기 때문에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모릅니다. 겉사람만 살아서 마귀의 유혹을 쫓아서 살았는데,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속사람이 살아납니다. 우리 영의 사람이 살아나서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의 사람이 자라나면 천국에 대한 사항을 더 깊이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장막집이 쓰러지면 속사람, 영의 사람이 있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강도에게 넘치는 희망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당하고 있는 그 장면에서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나 없이 너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3. 중생하는 과정


 우리가 중생을 하는 과정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살아납니다. 누가복음 5장 8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구원받기 전에 고깃배에서 예수님이 시킨 대로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그 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안 베드로는 그물을 놓아두고 꿇어 엎드려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고백합니다. 구원받는 첫 단계가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성전에 기도하러 온 두 사람의 이야기를 비유해 주셨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또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유대인 사회 속에서 바리새인은 철저히 율법을 지키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매우 미움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받았고, 사회생활 중에 아주 하층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이 세리와 함께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는데, 그는 사람들이 다 듣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여, 제가 여기 왔습니다. 저는 바리새인 신자로서, 십일조를 떼먹지 않았고, 때를 따라 금식을 하고, 의롭고 훌륭한 생활을 합니다. 저 아래에 있는 세리처럼 죄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훌륭한 사람입니다”고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세리는 한쪽 구석에 앉아서 머리를 손으로 감고, 하나님을 쳐다보기 위해 감히 눈도 뜨지 못하면서 가슴을 치고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선언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눅 18:14) 자신을 자랑하던 바리새인은 의로움을 받는 것이 아니고, 자기 죄인인 것을 알고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린 이 세리가 의롭다함을 입고 집에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는 하나님 앞에 낮아진 마음으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는 그것이 첫 단계인 것입니다. 마음에 죄인인 것을 깨닫고, 입술로 그것을 시인하면 어떤 사람도 구원을 받습니다.

 그 구원을 받는 단계에 하나님의 성령이 감동을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을 한다는 것은 성령이 마음에 감동을 주시지 아니하면 그럴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말하면 마음이 달큼해지고 고요하고, 평안한 가운데 희한하게 마음에 깨달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계시가 오면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구원은 우리 행위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놀라운 구원을 선물로 주실 때, 받는 사람은 공짜로 받지만 주는 사람은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공짜로 구원을 받지만, 구원을 주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고난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성품상 인격적으로 큰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사라지고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로 6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 세상을 짓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다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를 이 땅이 생기기 전에, 하늘이 생기기 전에, 벌써 하나님은 기록해 놓고 우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한 것이 우연히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온갖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복을 주시니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할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굉장히 귀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것을 깨닫게 되면 삶의 중심 목적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2∼3) 예수 믿지 않고 우리가 죄인으로 살 때는 마귀가 우리를 유혹해 잡고서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과 타락한 마음의 인도를 따라서, 마귀와 함께 지는 우리들이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8∼9) 그래서 우리는 어두움에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이 마음에 깨달음을 주심으로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드들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서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우리의 삶의 중심이 달라져서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속사람, 영의 사람이 살아나면 4차원의 신령한 세계를 깨닫게 되어 마귀와 흑암의 세계를 쫓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3차원의 세계인 물질세계는 입체의 세계 속에 끝이 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세계라는 것은 3차원의 육체적인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3차원과 4차원 사이에 굉장한 간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4차원의 들어가서 대화를 하려면 생각이 다르고, 꿈이 다르고, 믿음이 다르고, 말이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4차원은 영의 세계이고, 3차원까지는 물질세계인데, 물질세계와 영적인 세계는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짐승들은 영적 세계와 대화를 전혀 못하지 않습니까. 사람도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물질세계에서 영적인 세계와 대화가 전혀 안 됩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셔도 못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영이 살아난 사람은 4차원의 세계에서 함께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이 살아나고, 꿈이 살아나고, 믿음이 살아나고, 하나님과 신앙고백의 언어가 살아나서 4차원의 세계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영의 세계에서 대화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의 내면적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벌을 받아 죽었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이 살아난 우리들은 영의 눈으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허물을 씻어주시고, 의롭게 만들어 주시고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바라보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도다”(벧전 2:24)라는 말씀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서 그렇게 치욕적인 고통을 당하면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중생하여 영적인 4차원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은 예수님이 그 고통을 당한 것이 우리에게 건강을 주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세계의 생각과 언어를 정말로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저주를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저주 받아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다. 얼마나 치욕적인 고통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저주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주가 떠나가면 가시와 엉겅퀴가 우리의 생활에서 사라지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것이 축복으로 변화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4차원의 영성에 따라서 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나는 잘된다. 나는 성공한다. 나는 축복 받았다” 이렇게 말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영적인 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난 다음 승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음이 다가와도 죽음이 아닌 것입니다. 낙원으로 들어가는 기차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낙원에서 예수님과 함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곳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낙원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의 말로써는 설명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기록하기를 “만일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는 우리의 집이 영원히 있다” 그러므로 죽음을 겁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곳에 들어가서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속사람, 영의 사람이 살아나서 신령한 세계를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영의 사람은 생각이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구체적인 요구를 할 때 4차원의 꿈을 꾸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창조적인 언어가 달라지면 우리는 4차원의 세계 속에 성령과 교제하면서 살게 됩니다. 물질적인 세계 속에 살던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왔다갔다하며 형식적으로 믿으면 변화된 삶을 살지 않게 되는 것인데, 4차원의 영성을 따라서 살게 되면 우리의 세계가 확실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귀신을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눅 10:19) 그러므로 우리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러 오는 귀신을 늘 쫓아내고 4차원의 영성 속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십자가의 오중복음을 통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소원하는 꿈을 마음속에 품고 사십시오. 꿈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고, 창조적인 말을 하면 우리는 완전히 달라지고 새사람이 되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과 목적이 달라지고 굉장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그 이튿날 천사가 되지 못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마귀 비슷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하고 또 일어나고, 회개하고 일어나야합니다. 완전히 죄인이 되었다 새롭게 구원을 받아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요일 1:9)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났다 넘어졌다를 끊임없이 하더라도 예수 십자가를 가슴에 끌어안고 있으면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음의 고통을 당하셨는데, 그 모든 은혜가 성령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가 되셨다고 고백하셨지요? 그러면 4차원의 영적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서로 생각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꿈을 같이 꾸고, 하나님과 같이 믿고, 하나님과 같이 창조적인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선언이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빛이 있으라! 궁창이 나타나라!”고 창조적인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집안에 평안이 있을지어다!우리 집안에 마귀는 물러가라!” 그래서 여러분은 영적인 세계 속에서 신령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활과 운명을 변화시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 백성이 창세전에 선택함을 얻게 되었고, 지금 믿은 것은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셔서 3차원의 세계에서 살던 우리가 영의 세계인 4차원 영적 세계 속에서 살게 됨으로 놀라운 일이 우리 속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4차원의 영성을 갖고 예배를 드리게 되면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묵시가 오고 그 다음에 기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4차원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창조적인 역사를 베푸는 세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기적이 나타납니다. 기적을 우리가, 우리의 것으로 알고,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서 오중복음을 생활 속에 실천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을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비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죄인 임에도 불구하고 구주가 되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옛사람은 사라지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적인 세계의 생각과 믿음과 꿈과 언어를 깨달아 주님과 함께 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마귀와 싸워서 이기고 십자가지고 전진해나가 승리케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기사입력 : 2016.10.02. am 08:46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