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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믿어주고 믿게 해주는 사회(마태복음 5:33∼37)

현대사회 진실 감추고 과장하는 왜곡하는 일 많아
크리스천, 사랑의 언어 통해 빛·소금 역할 수행해야


 몇 년 전 ‘거짓말 블랙홀에 빠진 대한민국’이라는 신문기사의 제목처럼 한국사회의 불신이 도를 넘어 절망적인 상태로 치달려가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한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20)

 거짓말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사회적인 수준의 거짓말은 안 되지만, 개인적이고 가족간의 하얀 거짓말은 괜찮은 것인가? 못 본체함으로써 거짓이 활개 치는 묵인의 거짓말도 있다. 독일 기자 위르겐 슈미더는 ‘40일 동안 거짓말 안하기’ 프로젝트를 시행했는데, 국내에는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소개됐다. 여기에서 거짓말의 50%는 이기적 거짓말이요, 나머지 50%는 하얀 거짓말로 그중에서 4분의 1은 타인을 배려한 이타적 거짓말이며, 나머지는 친사회적 거짓말이라고 한다.

 각종 거짓말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나를 믿어달라고 맹세하기도 한다. 맹세해서 믿을 수 있다면 그래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아무리 맹세해도 믿지 못하는 불신이 한국사회에서 점점 만연되고 있다. 사회에서 오가는 말은 호수의 물과 같다. 물이 썩으면 호수에서 살 수 없듯이, 거짓말이 난무하는 사회에서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진흙 판에 글을 새긴 문서들이 많이 발견됐다. 그 중의 하나인 ‘누지문서’를 보면 아버지의 유언에 대해 형제들의 분쟁이 일어나자, 재판관이 자녀들을 불러 맹세시키고 그 맹세를 그대로 인정해 판결을 내린다. 지금부터 3500년 전 경 누지문서의 사회는 사람을 믿고 신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신뢰사회였던 것이다.

 성경도 맹세가 통하는 신뢰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도 맹세로써 사람들을 믿게 하시고 안심시켰다(창 22:16; 사 45:23). 또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바른 길로 가며 이방신들을 따르지 말라고 하신다(신 6:13).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가는 종에게 오직 맹세를 통해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떠나도록 믿고 맡긴다(창 24:9). 모세율법에 의하면 맡긴 물건이 도난당하거나 파괴된 경우에 그가 결백하다고 하면 믿어주라고 한다(출 22:10∼11). 아내의 탈선에 대한 의심이 생겼을 경우에도 결백의 맹세와 제사장 앞에서의 의식을 통해서 부부가 신뢰를 회복한다(민 5:11∼31).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믿어주도록 맹세하여 말한다(고후 1:23).

 그런데 예수님께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성경에 허락된 모든 맹세에 대한 금지가 아니라, 당시의 가식적인 맹세를 엄중하게 금지시킨 말씀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맹세를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머리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짓 맹세하지 않는 건전한 사회가 천국의 모습이다. 거짓 증언은 사회공동체의 신뢰를 파괴하며 이웃과의 화목을 파괴한다.

 현대사회는 양념과 토핑이 너무 많이 들어간 음식과 같아서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는 일이 많다. 이러한 과대 포장의 사회에서 크리스천은 검소하고 담백한 언어생활로 사회를 쇄신해나가야 한다. 단순하고 진실한 사랑의 언어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나아가 크리스천은 경우에 합당한 참된 맹세를 통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인간의 맹세를 서원이라고 한다. 서원이란 자신을 스스로 묶는 것이다. 누에가 스스로를 묶어가며 비단실을 뽑아내듯이, 거룩함으로 자신을 결박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임직에 앞서 서원을 한다. 성경과 교단헌법에 따라 목사는 서원을 하고 임직이 되며, 교회 제직들이 서원하고 제직이 된다. 그 모든 서원은 거짓됨이 없어야 하며, 반드시 지켜야 한다(민 30:2). 그러나 맹세가 넘쳐나도 지켜지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일반 사회에서는 맹세하지 않아도 믿어주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예면 예, 아니면 아니’라고 대답하는 단순 솔직한 인간관계로 돌아가야 한다. 오직 맹세가 필요할 때는 하나님 앞에서 서원하여 자신을 결박함으로써 날마다 죄악을 이기고 거룩한 생활로 나아갈 때이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담임)

 

기사입력 : 2016.09.25. am 09:4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