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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 (중략)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장 1∼6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인생의 문제를 만났을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1. 기도로 구하라


 요한복음 14장 27절에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마음에 평안이 올 때까지 꾸준히 주님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공포와 초조, 복잡할 때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면 한참 만에 성령이 응답을 가지고 왔을 때는 마음에 다른 세상이 옮겨온 것 같습니다. 아주 조용해지고, 고요한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는 것 같습니다. 기도응답은 마음에 평안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4차원적 평안이 마음을 점령하고, 주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심 같이 주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고, 주님 앞에 나아올 때, 주님이 은혜를 베푸셨을 때, 그 평안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 나올 때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주님께서 결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28절로 30절에 보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야훼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듯 기도의 응답은 평안인 것입니다. 파도가 치고 풍랑이 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일체 평안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기 시작하여 마치 희한한 세상에 들어온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 이것이 마치 갈릴리 호수처럼 풍랑이 일어서 출렁거리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평안하고, 잠잠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점령하고 지켜주는 것입니다.


 2.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겨라


 하나님을 기도로 만나고 난 다음,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시편 68편 19절을 보면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셀라)”라고 찬송합니다. 또 마태복음 11장 28절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평안함으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기도하고 난 다음, “하나님 무거운 짐을 다 맡겨 놓았습니다”하고 일어납니다. 그러고 나서 무거운 짐을 다시 어깨 위에 올려놓습니다. 하나님께 맡긴 짐을 다시 어깨 위에 얹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입술로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는 다 맡겼다. 마귀야 나를 시험치 말라. 짐들아,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물러가라!”

 기도란 꼭 꿇어 엎드려 간구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원수들과 싸울 때 외치는 것처럼, 골리앗하고 다윗이 대면했을 때처럼 대적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말로써 대적했습니다. “너는 창과 칼과 단창으로 무장하여 나아오거니와 나는 네가 무시하는 만군의 야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오노라” 이것은 그냥 간구하는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이건 대적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마귀를 예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 길로 왔다 일곱 길로 도망을 칠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는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간구하는 기도와 함께 대적하는 기도도 같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미 굴러간 짐이 내 어깨 위에 도로 굴러오면, 우리는 대적함으로 그것을 피해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1∼33절에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으로 예비해놓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계시므로 다 맡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말씀하셨고, 잠언 16장 3절에도 “너의 행사를 야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께 짐을 맡기고 난 다음,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로 23절에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가복음 11장 24절에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난 다음에는, 눈에는 아직 안 보이더라도 이미 받은 것으로 알고 행동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큰 보배로운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셨는데, 이런 분이 그 아들과 더불어 우리에게 무엇을 안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반드시 받은 줄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믿음이요, 아직 내 손에 들어오지 아니한 것을 내 손에 들어온 것 같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의심은 마귀가 갖다 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해도 자꾸 의심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의심은 마귀가 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에게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창 3:4∼5)고 유혹했습니다. 그러자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와의 마음이 흔들린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의심한 것입니다.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결국 죄에 빠져 하나님을 대적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의심은 마귀가 사용하는 무서운 무기입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기도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7절은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의심이 들어올 때 우리는 의심을 단호히 물리치고, 좋으신 하나님을 굳게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기도를 방해하는 것은 감사와 찬송의 부족함 때문일 수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부인인 루스 벨 그레이엄 여사는 감사의 능력에 대해서 간증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잠을 자다가 문득 눈을 뜨니깐 마음속에 자기 아들의 이름이 자꾸 들려오면서 불안과 공포가 꽉 들어찼습니다. ‘아들에게 무슨 큰 일이 생기겠구나’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어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순간 ‘문제만 생각하지 말고 감사할 것을 생각해라. 너는 불행한 일만 자꾸 이야기 하는데, 불행한 일을 이야기하면 감당할 수가 없다. 하나님 앞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 생각이 마음에 생겨났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 마음에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큰일 났다. 무서운 일이 생겨난다. 이 어찌할꼬!’ 이런 생각을 거듭해서 부정적으로 하면 우리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피난처요,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니 그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해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님이다. 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괜찮다. 너 이 원수마귀야 물러가라’라며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루스 벨 그레이엄 여사는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다시 시작하고 약속의 말씀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들고 펼쳤더니, 빌립보서 4장 6절 말씀이 눈에 띄며 올라왔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 성구를 읽으면서 그녀 자신의 기도에 감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불을 켜면 어둠 속에 있던 바퀴벌레들이 순식간에 도망치는 것처럼, 누군가가 그녀의 마음속에 불을 켜 주어서 마음속에 두려움이 허겁지겁 다 도망을 치고 만 것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두려움과 근심이 다가올 때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모두 다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상황에 감사는 약방의 감초처럼 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받은 축복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 축복이 연장되고, 받은 불행에 대해 감사하면 불행이 끝난다”고 말했습니다.

 시편 50편 23절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을 때에든 힘들 때에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에 원한이 있으면 기도가 잘 안 나옵니다. 원한을 가지게 되면 자기 마음에만 부정적인 생각이 있을 뿐 아니라, 원한을 당하는 사람도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를 할 때, 원한을 갖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58년의 긴 세월동안 목회생활을 했습니다. 지난 세월 중 미운 사람을 미워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더라고요. 교회가 자그마할 때는 대화도 잘 되고 어렵지 않았는데, 교회가 커지고 난 다음에는 여기에 가도 부딪히고, 저기에 가도 부딪히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저를 모욕하고 공격한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모여서 한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저에 대한 모욕이 쏟아졌을 때, 제 마음의 고통은 굉장히 커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을 돌려대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주라고 하셨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그것도 주의 종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난 다음에 한 방송사에서 인터뷰하자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굉장한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저와 우리 장로님들과 싸움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마지막에는 매우 실망이라도 했는지, 맥이 빠지는 소리로 그들이 “안 밉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교회를 가든지, 어느 집단이 모이든지 반드시 사람들의 의견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비평을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훌륭하시고 그 사람들이 나를 욕한 것을 나는 원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들도 그분들 나름대로 교회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일을 했지 않았겠는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깐 그는 “아니 그럼 고발은 왜 했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빨리 문제가 해결되기 원해서지 않겠는가. 또 이런 일은 앞으로 안 생길 것이지만, 문제가 생기면 시간을 두고, 내가 상대편의 상황을 맞았다고 생각하고, 이해와 동정과 사랑을 가지고 일을 해야 된다. 교회는 사회와 달라서 사랑과 용서를 가지고서 대화를 하는 곳이지, 주먹과 욕으로써 대화를 하는 곳이 아닌 것을 우리가 깨달아 알아야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인터뷰하는 사람이 나보고 “그런 오랜 세월동안 어떻게 견디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는 당한 시련을 하나님께 감사 드렸기 때문에 고통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좋은 일은 좋아서 좋고, 나쁜 일은 좋게 만들어질 것이니 좋고, 우리 하나님께 의지하고 감사하면 모든 것이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대편에 서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시험과 환난은 하나님이 나를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시험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위해서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고, 나의 요새가 되고,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니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지 않겠습니까?
 마가복음 11장 25절에는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을 위해서 용서해주고 기도해주라고 했지, 때려잡으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교회와 사회가 다른 점이 뭐냐 하면, 사회는 정의와 자기의 이익을 구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지만, 교회는 사랑과 용서를 중심으로 서로를 대합니다. 우리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와 계실 동안에도 원수를 주님께서 저주하거나 죽이지 않았습니다. 용서와 사랑 그리고 다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4.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29절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것은 잘 배우고, 남에게 교만하지 않고, 대화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화평을 하면 주님께서 굉장히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을 구하러 오셨지, 사람을 죽이려고 오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사람을 구원하려고 주님께서는 힘을 쓰고, 애를 쓰신 분이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 질병과 저주, 죽음이라는 짐을 대신 짊어져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났을 때 낙심하지 말고, 모든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나가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간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십시오. 믿음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좋은 일을 해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예수께로 다 나가십시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고, 능력이 많으셔서 우리 문제쯤은 문제도 아닙니다. 이미 주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인생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게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한 것을 통해 좋은 일이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6.07.24. am 10:26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