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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림이 없는 종교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중략)…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장 19∼28절)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를 속하는 피의 제사가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자신의 수치심을 가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그들의 죄와 수치심을 가리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고 그 가죽을 벗겨 옷을 지어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피의 제사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이 죄 사함도 없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서 가죽옷을 입혀 주신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1.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인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과실은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냐면 선악을 구분하면 자기 주권 행위를 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하나님도 계시고 아담과 하와도 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아담과 하와가 반대를 하면 서로 싸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영국은 유럽연합(EU)에 남겠냐를 묻는 국민 투표를 해서 이틀전 EU 탈퇴, 즉 브렉시트 확정 결과가 발표 되었습니다. 과반수가 넘게 유럽연합을 탈퇴하자고해서 지금 그곳을 이끌어 갈 주체적인 세력이 분열되어 콩가루 집안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라하시면 가고 오라하시면 와야 합니다.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서야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8절로 10절에 보면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야훼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야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야훼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 영적으로 영광의 옷을 입고 있었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자 영광의 옷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벌거벗은 것을 보자 말도 할 수 없이 창피했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셨는데 벌거벗고 하나님을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숨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숨은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왜 부끄러우냐? 벌거벗은 것을 보고 부끄러우냐? 선악과를 따먹었느냐?” 그러자 아담은 “예,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하와가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꼭 변명합니다. 선악과는 따먹었지만, 그 이유는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여자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따먹은 것이라고 원망까지 하면서 책임을 미뤘습니다. 하와는 하나님께 “마귀가 와서 날 꾀니까 먹었습니다”라면서 자신의 책임을 선악과를 따먹은 후, 아담과 하와부터 시작해서 인간은 죄와 마귀의 종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에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좋다’ ‘아름답다’라는 의미인데 죄와 마귀에 의해서 ‘저주’와 ‘죽음의 동산’이 되고 만 것입니다.

 매일 살아가는 우리들은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좋고 아름다운 환경을 만든다고 늘 마음에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아름답게 만들지 않으면 마귀가 와서 죽음이 꽉 들어찬 곳으로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좋은 일이 생겨날 것이다’라며 긍정적이고 좋은 것을 생각을 하면 우리 환경은 날로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에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환경이 저주를 받아서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고, 인간은 그 땅에서 이마에 땀을 흘려 농사를 지어먹고 살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주 거친 삶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기고 피 흘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죄를 사해 주셨고, 허물을 씻어주셨고, 병을 고쳐주셨고, 저주의 삶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주셨고,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복락으로 기가 막히게 좋은 환경으로 바꿔 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옷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면서 직접 짐승을 잡아서 가죽을 벗겨 피를 쏟고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서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주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을 때, 죄 사함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피를 쏟는 것을 말합니다. 모두 피 값으로 죄를 덮고 아버지께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짐승의 피로써 죄를 영원히 사함 받을 수는 없습니다. 짐승의 피는 죄를 덮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해 가죽 옷을 지어 입혀 주신 것도 장차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서 그 피로써 죄를 갚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죽인 의로운 옷을 입혀 줄 것을 예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영원한 피입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 들이면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영원히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죽 옷은 의의 선물인데, 예수님의 의로움은 낡아지지 않는 영원한 의로움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함을 얻으면 그 의는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찬송가 252장)>
 
 3.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와 제물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간 후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장성해 독립하여, 각각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시기가 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인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에게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리라고 신신당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인본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인은 ‘좋은 제물을 바치면 됐지 뭘 꼭 하나님께 나갈 때 짐승의 피를 흘려야 되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자기 마음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농사지은 농산물 중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 아버지 제단에 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의 제단에  응답을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불이 내려오지 않은 것입니다. 반면에 아벨은 자기가 키운 짐승들 중에 가장 좋은 양을 잡아서 피를 뿌리고 기름으로 향기로운 냄새가 나도록 제사를 지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기쁘게 받아 들이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이 화가 났습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면 그냥 받아 주실 것이지, 꼬치꼬치 캐고 이렇게 까다롭게 하실까?’라고 불평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벨은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 밝고 맑고 환했습니다. 결국 가인은 동생 아벨하고 이야기 하다가 돌로 동생을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인생은 완전히 패배한 인생인 것입니다. 그 아름답고 좋은 곳이었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남편과 아내의 뜻이 일치하지 않아 말다툼을 했고, 큰아들이 작은아들을 죽인 것이었습니다.

 아담이 인간적으로 가정생활을 해서 가인과 아벨을 낳았으니까 가인과 아벨은 유전적인 죄를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아무 죄를 짓지 않아도 유전적인 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인간은 자범죄를 지어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전죄가 없으십니다. 아버지 없이 성령으로 잉태하고 33년 동안 사셨지만은 죄를 실제로 절대로 짓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을 이제 하나님께서 때가 오매 유전죄와 자범죄를 예수님께 덮어 씌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류의 죄악을 모두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죄를 지은 영혼은 죽으리라 했으니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분열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죽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한 것은 예수님도 죽는 것이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보통 죽음이 아니라 엄청나게 괴로운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두려워했었던 것입니다. 그 고통을 통해서 우리같은 사람을 주님이 책임지시고, 우리를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만들어 주시고, 유전적인 죄가 없이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예수님은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 죄의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서 여섯 시간 동안 한없는 고통을 견디신 것입니다. 게다가 아버지마저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참아라, 견디라, 잘한다, 아들아”라고 격려해 주셨으면 쉽게 죄악을 짊어질 수 있을 것인데,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버리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괴롭고 답답했으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런 심한 고통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한 것을 보십시오. 강도 두 사람이 예수님 우편, 좌편에서 못 박혔습니다. 처음에 두 사람은 예수님을 향해서 “너도 내려오고 우리도 구원하라”고 욕을 했습니다. 그랬다가 마지막에 강도 한 사람은 회개했습니다. 평생을 강도짓만 하고 죽을 짓만 했던 그가 마지막에 예수님을 향해서 “내가 알기에 우리는 죽어 마땅하지만은 예수님은 죄를 지은 적이 없으십니다. 주님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 같은 사람도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이야기가 간단한 거 같지만 실제로 간단하지 않습니다. 죄악 덩어리인 이 젊은이가 마지막 숨 끊어지기 전에 예수님을 인정한 기도까지 주님은 인정을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깐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은혜를 가진 종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만들어 주십니다. 믿기만 하면 그 보혈이 적은 죄로부터 큰 죄를 다 없애주시는 것입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보혈을 의지하면 우리의 죄를 예수님이 영원히 청산해 버리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제물


 히브리서 10장 1절을 보면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히브리서 10장 3절로 4절에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로 들어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짐승의 피는 사람의 죄를 영원히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한 제물인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청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청산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긍정적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슴에 모셨기 때문에 초등학교 산수 숙제를 하는 어린이처럼 0을 곱하니 아무리 많은 숫자를 곱해봤자 답은 0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마음에 끌어안고 믿고 있으면 죄 사함이 영원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후로는 성령이 우리를 점점 의롭게, 거룩하게 살도록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는데 실제적인 변화는 성령이 변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거룩하고 성결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써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성령이 들어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들어와서 성령이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을 갖다 주시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구원을 받고, 변화를 받고, 하나님 백성으로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5. 십자가와 예수님


 마태복음 27장 46절에 보면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대신하여 처참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제자들이 다 뿔뿔이 도망을 치고 외롭게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마가복음 14장 50절로 52절에는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청년이 누구냐면 마가 요한일 것입니다. 마가가 마가복음을 적었는데 거기에만 이 사건이 기록되어있고 다른 성경에 적혀있지 않습니다. 자기가 홑이불을 몸에 감고서 따라가다가, 잡히자 이불을 벗어버리고 발가벗은 몸으로 도망을 쳤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도 버림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고, 도와주었건만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배반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따라다니던 열 두 제자도 다 배신했고, 예수님에 의해서 치료받았던 사람들도 다 배신했습니다. 아마 우리들도 배신할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셔야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배신한 죄를 회개하고 성령을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배신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결국은 십자가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마지막으로 인수인계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열 두 제자에게 버림받고, 예수님이 치료해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천지간에 버림받은 처참한 고통을 주님이 다 경험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마지막 인간의 조상으로 우리를 위하여 죄를 대신 갚아 주셔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 주셨으니, 예수님의 그 은혜를 믿음으로 모셔드리고 배신하지 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8절로 19절에는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기록하셨고,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절로 3절을 보면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다윗은 찬양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든 죄악을 사해주신 것을 늘 기억해야 됩니다. 병 고침도 끝까지 우리가 믿고 기도하고 감사해야 됩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멸망을 당할 처지에 있을 때에도 주님이 건져주시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좋은 일을 이루어주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묵시와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십시오. 그렇게 믿음으로 기대하고 나가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우리의 병을, 우리의 저주를, 우리의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속에 와 계시고, 우리와 함께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기도>--------------------------------------------------------
 사랑의 예수님! 모진 고통 속에 십자가에 매달려 우리의 죄를 청산해 주시고, 아버지 앞에 담대히 설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 죄 사함을 받았고, 의를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었사오니, 그 사랑 가슴에 담고 늘 주님을 향한 찬양이 넘치게 하시고,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삶이 되게 성령님 동행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6.06.26. am 10:18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