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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중략)…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한일서 4장 7∼21절)

 이 세상은 강한 자가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육체의 힘, 경제적인 힘, 군사적인 힘, 도덕적인 힘, 교육의 힘이 있어야 일을 성취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큰 복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비참한 죽임을 당했지만, 그 연약함을 다스리시고 이기시고 극복하셔서 부활과 생명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1. 하나님과의 근원적 관계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실 때 말할 수 없이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란 이름을 주시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살아있는 모든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짓게 해주셨고, 그것을 다스리게 해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때문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닮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품에 품으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은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특별히 하나님의 손으로 만든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생각하시며 기뻐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일을 하도록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 하기를 즐거워하셨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가 끊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야기해도 사람은 영이 죽어버렸기에 하나님과 대화가 안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이 “동”하면 니고데모는 “서”하고 예수님이 “남”하면 니고데모는 “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영이 죽었기 때문에 영이 살아계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상 사람들이 자본주의, 물질주의, 인본주의에 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은 영이 죽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났기에 하나님의 영과 교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말씀하신 성경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묵상하고 기다리면 하나님은 환상으로나 꿈으로나 믿음으로나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전도자 사도 바울 선생 같은 분도 하나님의 음성을 꿈으로 받았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라”고 사도행전 16장 9절로 10절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시아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계획했던 바울이었지만 성령께서 마게도냐로 가라고 지시하시자 선교의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생각을 불어넣어 주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때가 있습니다. 또 꿈이 환상과 더불어 보일 때도 있는 것입니다.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꾼다고 하셨듯이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의지할 대상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권력을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학벌을 의지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붙잡아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편 146편 3절로 4절을 보면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붙잡아줍니까? “이는 나 야훼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고 이사야 41장 13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오른 손을 붙잡고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돕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십니다. 


 2. 너는 두려워 말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가장 무서운 마귀의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하나님은 대가를 지불해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소유물로써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속량은 대가를 지불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의 목숨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내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마귀가 아무리 우리를 잡아가려고 애써도 하나님은 결코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되기를 바라고 원하는 것입니다.


 3.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장성하게 하기 위해 시련의 길을 걷게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2절에는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물로 시험을 하시고, 불로 시험을 하실까요? 우리가 시험을 당해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시험과 고통을 당하게 되면 평소에 가지 않았던 오산리 기도원에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삶에 시련을 보내어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순종하고 불신앙하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10절에 “야훼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이 다가왔을때 하나님께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갈아입히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험은 괴롭지만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시험을 당할때 온전히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즐거워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 새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평가


 하나님은 우리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4절로 5절을 보면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역하고 반역하고 온갖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먼저 사랑하시고 그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어 우리를 구출하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한 고통은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제자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자기 백성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고통당하셨습니다. 하나님도 고개를 돌려버리셨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으면 십자가에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려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치셨겠습니까?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온 전체가 캄캄한 밤중 같은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 무시무시한 고통을 당하고 그 대가로 우리를 산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값은 매우 비쌉니다. 하나님이 값비싼 대가로 여러분을 사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족속들 가운데 우리만 하나님이 택해서 무서운 시련과 환난을 면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으로 하나님이 특별대우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몸 찢기고 피 흘려서 그 큰 고통을 당하여 죽으면서까지 구출 해놨는데 그 예수를 안 믿는다고 배반해 버리면 주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인정해 주는 삶을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하십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대인을 숨겨줘 나치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믿음의 영웅 코리 텐 붐 여사는 “기차가 캄캄한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기차표를 찢어버리거나 기차에서 뛰어내리면 안 된다. 조용히 앉아 기관사를 믿고 기다리면 잠시 후 밖으로 나가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삶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날 때 두렵다고 포기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곧 어두운 터널이 끝나고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뜻을 받들어서 시련의 골짜기를 지난다고 할 때, 절대로 의심하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으로 좋게 해주시려고 이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엄청나게 신앙이 좋은 분이 계십니다. 욥입니다. 욥의 신앙을 보세요. 욥은 어떠한 고통이 있어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믿음을 확신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마귀는 욥이 고통당하면 하나님 버리고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욥이 마귀에게 마음껏 희롱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손을 뗐습니다. 그는 자식들을 다 잃어버리고, 있는 재산 다 상실하고, 가정과 부부가 낭패를 당하고, 전신이 병들고, 고통당해도 욥이 말하기를 “주신이도 하나님이시오 가지고간 이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마귀의 체면은 묵사발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셨고, 하나님은 처음에 주신 축복보다 더 넘치는 축복을 욥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나에게 당장 지금 선한 것을 주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좋은 하나님이니깐 결과가 좋게 된다고 믿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시련을 많이 겪을수록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인 것을 더 체험하게 되고, 좋은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신 것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5만 번 기도 응답을 받았던 조지 뮬러는 “주님의 도움을 원한다면 주님이 결코 당신을 실망시키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다윗도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 하나님을 믿고 바라봄으로 두려움을 이긴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하나님께서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야 할 때 믿음의 태도가 있습니다. 여호수아 1장 9절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안보여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단 있는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시험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할 때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삶을 걸머지고 맡아 주시기 때문에 문제는 해결되고 아름다운 결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시련의 강을 건널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업어주시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3장 2절에는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게 업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련의 때를 지날 때에 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문제가 작아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된 후에 어릴 때 다니던 학교의 운동장에 가 보면 어릴 때는 그렇게 커 보이던 운동장이 ‘이렇게 작았구나’라고 생각을 할 정도로 작아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운동장이 작아진 것이 아닙니다. 내가 커진 것입니다. 우리가 커진 바탕을 가지고서 보니 운동장이 작아 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해서 만물을 바라보면 모두 다 작게 보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다가 열 사람이 돌아와서 “할 수 없다. 못한다. 안 된다”로 말한 것은 그들 자신 마음속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자! 우리 밥이다! 점유하자!”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니까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하나님의 눈으로 보십시오. 하나님의 이 큰 사랑을 가지고서 우리를 붙들어주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십시오. 우리는 무엇이든지 여러분이 이길 수가 있고 문제는 우리의 밥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눌리면 문제는 골리앗처럼 보이고 나는 메뚜기처럼 작아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담대하면 문제가 작아 보이고 밥으로 보입니다. 결국 우리의 마음 상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언제 우리의 마음이 담대해질 수 있나요?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 마음이 담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고 이사야 46장 4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백발이 될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업고 가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원수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빼앗고, 인생을 포기하게 하며, 좌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세계가 어려운 이때에, 마귀의 음성을 듣고 마귀가 시키는 것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러면 정말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됩니다. 보고, 믿고, 그 다음 입술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언제나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로 분위기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다 살았다. 끝장났다. 손 들었다”같은 부정적인 환경을 만들면 절대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바라봄, 긍정적인 믿음,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믿음과 바라봄, 고백을 계속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승리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크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너는 내 것이라’며 우리를 사랑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지켜주시고, 시련의 강을 건널 때 업어주시는 주님! 이제 주님만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겠습니다. 결국 좋게 만들어주시는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6.05.29. am 10:02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