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람들 >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나
박옥선 집사(6·25참전유공자회 종로구지회 사무국장)

“결코 자유와 평화는 거저 얻을 수 없죠”

꽃다운 여고생 전쟁의 포화 속에 자원입대
이후 18년간 나라 지킨 자랑스러운 간호장교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인민군이 기습적으로 남한을 쳐들어왔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파괴되고 국토가 전쟁의 포화에 휩싸였다. 당시 경기여고에 재학 중이었던 17살 박옥선 학생의 꿈도 사라졌다. 정외과에 진학해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겠다는 포부는 물거품이 됐다.

 박옥선 학생은 가족들과 함께 피난길에 나서며 고된 피난살이를 겪었다. 그해 9월 28일 서울 수복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일상은 파괴되고 달라져 있었다. 무조건 공부가 하고 싶었던 박옥선 학생은 학교로 달려갔다. 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간호장교 지원자를 모집하러 왔다. 피난의 경험을 통해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품은 박옥선 학생은 1951년 4월 23일에 서울역으로 모이라는 통지를 받고, 반대하실 게 뻔한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은 채 칫솔, 치약, 비누, 수건 하나씩만 가방에 챙겨 나갔다. 지원 학생들은 수송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3년여 동안 남자 사병들과 똑같이 훈련받았고 그에 더해 간호장교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의료교육도 받았다.

 1953년 그가 처음 발령을 받은 곳은 제주훈련소였다. “16살 소년부터 아이가 서넛 있는 36살 가장까지 맹목적으로 나라를 위해서 온 사람들이었어요. 1주일 단위로 훈련을 받고 나가는데 총도 없어서 나무로 연습을 하고 전장에 뛰어든거죠. 훈련을 마친 아이들을 수송선에 태워 떠나보낼 때는 그들의 앞날이 보이니까 펑펑 울면서 보냈어요.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누나 우리 살아서 만나요’ 이렇게 약속을 했어요”

 휴전 이후에도 전투는 계속됐다. 전쟁 내내 무수한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했고 참혹한 광경이 매일 눈앞에 펼쳐졌다. 운동장에 가마니를 펴놓고 부상당한 군인들을 오는 순서대로 뉘인 곳이 병상이요 병원이었다. 약품도 의료진도 부족했다. 그런 환경에서 죽음은 예사였다. 손등을 다쳤어도 감염 위험을 줄이고 빠른 봉합을 위해 훨씬 윗부분을 잘라내야 할 때는 안타까움이 몰아쳤다.

 가슴에 담긴 이야기를 100분의 1도 꺼내지 못한 것이지만 과거를 회상하는 박옥선 집사의 먹먹한 눈망울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굳세게 마음먹은 매서운 눈빛이 교차돼 빛나고 있었다.

 제주훈련소에서 9개월을 복무하고 부산으로 임지를 옮겼다.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이들을 치료하며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어린 간호 장교는 온몸으로 민족의 비극을 대면해야 했다. 이어 60년대 중반에는 원호병원(현 중앙보훈병원) 간호과장으로 복무하며 월남전에서 부상을 당한 군인들을 돌보았고 18년 동안 군에 몸담으며 대위로 예편했다.

 박옥선 집사(여의도순복음교회)는 50대에 신장암, 허리 수술을 이겨 내고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봉사에 힘쓴다. 5년전부터는 6.25참전유공자회 종로구지회 사무국장으로 150여 회원들을 섬기고 있다. 몸에 파편 몇 개씩은 박혀있는 참전용사들은 이제 연세도 높아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 집사는 이러한 이들의 고충에 귀기울이며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선다. 또 어린 학생들을 위해 안보교육을 실시 중이다. 겪지 않아 전쟁의 참혹함을 모른다 할지라도 당연히 알아야할 우리의 역사도 모른 채 ‘6.25가 언제 일어났는데요’라고 천연스레 묻는 젊은 세대의 말이 가슴을 칠 때마다 교육의 중요성에 절심함을 느낀다. “결코 자유와 평화는 거저 얻는 것이 아니에요. 어떻게 지킨 나라인데요. 나라를 사랑해야지요”

 박 집사는 도무지 여든이라는 나이가, 암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정정하다.  박 집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박 집사는 모태신앙인이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40년 넘게 출석한 신실한 성도이다. “기도처에 새벽 1시 30분이면 가요.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성전 청소를 하고 또 예배를 드린 후 사무실로 출근을 하죠. 20년 동안 새벽제단을 쌓으며 하나님께 ‘오직 감사’만 드렸어요. 저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제게 힘이 있는 한 끝까지 제가 도울 수 있는 분들을 도울거예요.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요”

 목숨을 바쳐 지킨 나라를 위해 지금도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박 집사의 모습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감사’라는 엔진을 장착한 박옥선 집사가 드리는 나라를 위한 기도소리가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라고 또 바란다.

<▲ 사진설명:박옥선 집사가 23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주일예배에서 6·25참전용사감사패를 받고 있다.>

 

기사입력 : 2013.06.30. am 11:41 (편집)
복순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