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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길 교수(전남과학대학·예수마을교회)

나눔은 예수님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름 뿐인 크리스천에서 성령 받고 변화 
한자 교실 통해 아이들에게 꿈과 비전 제시 
주님사업 위해 수입 중 10의 5는 이웃과 나눠
       
  
 “고사리 같은 작은 아이의 손이 칠판에 한자를 쓸 때면 제 마음은 뿌듯합니다.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 건 주님이 제게 주신 큰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김윤길 교수는 군인 출신으로 현재 전남과학대학 특수장비과 교수이지만 또 다른 직함은 한자 강사다.
 그가 한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은 2군 사령부에서 소위로 근무할 때였다. “한자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험에 당연히 붙을 거라 여겼는데 3급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죠. 오기가 생겼어요. 복무 중 틈틈이 공부해 1급 자격증, 지도사 자격증까지 따고 성균관대 한문학과에 들어갔죠”
 그가 본격적으로 한자 강의를 시작한 것은 중령을 끝으로 25년간의 군 생활을 마친 후다. 한자능력시험기관인 대한검정회로부터 러브 콜을 받은 그는 중구 손기정문화센터 등에서 한자강의를 시작했다.
 김 교수는 일반 교육기관 뿐 아니라 출석 중인 예수마을교회에서도 지역 아동을 위해 무료로 한자 교실을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예수마을교회를 출석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자신의 신앙이 견고해졌다고 한다.
 그가 처음 주님을 믿게 된 건 12사단에서 대위로 근무할 때였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아내는 새벽예배에 빠지지 않고 열심이었지만 그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대대장이 새벽마다 그의 집 앞으로 차를 보내면서부터 그는 믿음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름만 크리스천일 뿐 그는 하루에 담배 2∼3갑은 물론 여전히 술을 마셨다. 한 가지에 몰두하는 성향이 있어 바둑, 경마, 사행성 오락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김 교수는 “당시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그에게 시련도 다가왔다. 1989년 김 교수의 부하 한 명이 병사 봉급 등 부대에서 쓸 돈 6500만원을 횡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안에는 군 교회 건축을 도울 후원금도 포함돼 있었다. 몇 달 새 유흥비로 5500만원을 날린 부하는 남은 1000만원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참 신기했어요. 남은 1000만원이 바로 교회 건축에 쓸 후원금이었거든요. 하나님이 그 돈을 지켜주신 거였죠. 부하는 그 사건으로 이등병으로 강등돼 감옥에 갔지만 집 안이 어려워 5500만원을 갚을 형편이 못됐어요. 결국 부하 대신 제가 5500만원을 갚기로 하고 그에게는 ‘용서할 테니 하나님을 꼭 믿으라’는 말만 해주었죠”
 이 일로 김 교수는 공수부대를 자원했고, 아내는 빚을 갚기 위해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이 일로 그의 신앙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나눔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됐다. 1994년 부산에서 소령으로 복무할 당시 그는 부산 지역 대학생들과 함께 2년간 야학교사로 활동하며 영어와 국사를 가르쳤다.
 나눔이 더욱 생활화된 것은 2005년, 그가 중령으로 예편하고 예수마을교회를 출석하게 되면서부터다. 말씀에 은혜를 받은 그는 성령 받은 후 술 담배를 철저히 금하고 자신의 한자 실력을 이웃을 위해 나누기로 했다. 교회에 한자교실을 만들자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172명이 몰려왔다. 당황한 그는 우선 교사들을 양육하고 여러 반을 나눠 학기 중에는 놀토(학교가지 않는 토요일)에, 방학 중에는 매주 토요일 아이들을 가르치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다. 일반 문화센터에서 그는 기도로 수업을 시작하고 예수님 안에서 꿈과 비전을 심어줬다. 주의 일이라면 전국을 다니며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그는 또 벌어들이는 수입 중 10의 1은 십일조로, 10의 1은 교회를 통해 장학금으로, 10의 1은 낮은 자와 가난한 자를 위해, 10의 1은 제자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또 10의 1은 건축 헌금으로 내놓고 있다.
 “남은 돈 5분의 1은 저축을 하고, 또 5분의 1은 ‘곳간 통장’이라고 해서 꼭 사용해야 할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풀지 않는 통장을 만들어 저축하고 있죠. 전에는 돈을 벌고 모으는 것이 나만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주님의 선한 사업을 위해 하나님이 저에게 재물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주님을 위해 사용해야죠”
 그의 아내도 무료급식센터 후원, 지역 노인들을 위한 무료 치료 봉사를 진행하고 있어 김 교수 부부는 오블리스 노블리제(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본이 되고 있다.
 김 교수에게 좌우명을 묻자 고 3때 한문선생님이 알려줬다는 ‘가장 용기 있는 자는 타인을 용서하는 자이다’라고 말했다. 언제나 타인을 용서하는 자세로 살아왔다는 그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후에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자세를 가지려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에게도 이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그는 “남은 생애 아이들을 가르치며 주님 안에서 꿈과 비전을 갖도록 돕고 싶은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 한 마디의 말 속에서 예수님의 진한 향기가 느껴졌다.


글,사진 오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11.03.04. pm 16:12 (편집)
오정선기자 (jungsun5@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