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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국 박사(홀트아동병원 전 원장)

뿌려진 사랑, 더 큰 사랑과 기적이 되다
50년간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어머니
에세이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펴내

 ‘보존 법칙은 에너지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사랑에도 보존 법칙이 있다. 한 번 시작된 사랑은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도 그 총량이 변하지 않는다. 입양된 아이가 자라 또 다른 아이를 입양해 기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중에서)’

 뿌려진 사랑은 더 큰 사랑이 되고 기적이 되어 우리 안에서 돌고 또 도는 것을 직접 체험한 이가 있다. 그 주인공 조병국 박사는 이미 은퇴했지만 오늘도 홀트아동병원에서 50년 동안 몸에 배어버린 일과를 계속하며 사랑과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 어려서 이미 2명의 동생을 잃은 아픔이 그녀를 1958년 연세대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을 졸업하게 했고 1963년 소아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뒤에도 오직 한 길만 걷게 했다. 14년 동안은 서울시립어린이병원에서, 그리고 30년 이상을 홀트아동병원에서 아이들의 ‘의사’이자 ‘어머니’였던 조병국 전 원장을 만났다.

 “어떻게 50년을 한 길을 걷게 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소아과 의사라는 의무감도 있었고, 하나님의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라’는 말씀도 있었고요. 하지만 가끔 ‘내가 아니면 얘네들, 누가 이렇게 나처럼 열심히 봐주나’라는 생각을 한적도 많았어요. 이런 교만한 생각이 들면, 입양 가고 난 뒤에도 문제가 자꾸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라며 더욱 겸손해지려고 노력했어요. 이렇게 일을 하면서 인생 훈련을 받았고, 의료적인 면에서도 지식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조병국 박사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꼭 ‘버려진’ 아이들이 아니라 ‘발견된’ 아이들이란 표현을 썼다.
 “그 시절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정말 많았어요. ‘버려진 아이’와 ‘발견된 아이’의 차이는 엄청나요.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는 슬프지만 어떤이에게 ‘발견된 아이’는 희망적입니다. 우리는 입양 서류를 쓸 때도 언제나 ‘○○에 버려졌음’이 아니라 ‘○○에서 발견되었음’이라고 쓰고 있어요. 우리의 발견이 이 아이에게 희망을 찾게 한 것이니까요”

 그녀가 의사 생활을 막 시작할 즈음, 거리에는 ‘발견된’ 아이들이 넘쳐났다. 부모로부터 외면당한 아이들이 발견되면 우선 서울시립어린이병원의 조 박사에게로 보내졌다. 그리고 공고기간 2주를 거쳐 고아원이나 입양 기관으로 보내졌다. 물밀 듯 밀려드는 ‘발견된’ 아이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곧 안쓰러운 마음에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돌봤다.

 “매일 사망진단서를 쓰고 고아들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를 만나 다시 웃는 아이들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을 느꼈어요. 그런 감동이, 그런 기적 같은 일들을 접하게 되니 50년간 일을 그만둘 수가 없더군요. 날마다 다른 아이들이 나를 찾아왔어요. 성격도, 얼굴도, 장애도 다른 그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날마다 배우면서 살았습니다”

 뒤돌아보면 조병국 박사에게 지옥과 같았던 시절도 있었다. 집 없고 병든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가정과 적절한 보살핌을 줄 양부모를 찾아주고 싶었지만 국내에 돌보겠다는 사람이 없어 해외로 입양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입양기관에서 입양 수수료를 받고 고아를 해외로 수출한다고 떠들어댄  것이다. “검은 머리칼을 가진 아이가 해외 양부모 밑에서 자라며 겪을 정체성의 혼란과 아픔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고 맹렬한 비난을 받았어요. 지난 몇십 년 동안 내가 한 짓이 고작 ‘고아 수출’에 불과했나라고 생각하니 내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위기감을 느꼈었죠”

 여러번의 크고 작은 고개를 지났더니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이제는 조금 쉴 법도 한데 조병국 박사는 아직도 일을 완전히 놓지 못했다. 워낙 일한 기간이 길었던데다 그 외에는 관련 일을 맡았던 사람이 없어 병원이나 입양 기관 등에서 조 박사의 조언을 필요로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해외 입양 이후 성인이 된 아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기억을 더듬을 때도 조 박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금도 그는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라고 하면 발 벗고 나선다.

 “입양은 입양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가 시작이에요. 아이가 자라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심리적인 갈등이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입양 사실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가 중요해요. 그동안 주로 해외 입양이 이루어지면서 해외 입양은 사례나 경과가 비교적 알려져 있는데 국내 입양은 많이 부족해요. 아직까지 사회적인 정서도 올바르게 정립되어 있지 않고요. 관련 사례 등을 더듬어서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주고 싶어요”

 긴 세월을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보듬으며 살아온 조병국 박사. 개인적인 소망, 바람을 물어도, 결국 다시 아이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조병국 박사는 한없이 포근하면서도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힘,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글·이소흔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10.12.10. pm 14:46 (편집)
이소흔기자 (sohuny@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