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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규 안수집사(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동천교회)


“하나님과 어머니는 제 인생에 가장 소중한 만남이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 믿음으로 이겨내
KBS, 청와대 거쳐 문체부 제2차관으로 쓰임받아

 박선규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KBS에서 20년이 넘도록 치열하게 현장을 누빈 방송인 출신이다. “세상에서 만난 큰 행운은 어머니를 만난 것이고, 영적으로 만난 큰 행운은 하나님을 만난 거죠. 이 두가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이고 지금의 제가 있게된 원동력입니다”라는 박선규 제2차관의 고백은 그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게 해준다. 선한 외모로 모든 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그는 전문 방송인 출신답게 깔끔한 언변으로 신뢰를 받고 있다. 방송생활 동안 ‘8시 뉴스’ ‘사건 25시’ ‘일요진단’ 등을 진행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걸프전, 소말리아와 수단 내전, 유고 내전 등의 취재를 통해 종군기자로서의 명성도 쌓았다.

 2002년에는 미국 하원의원 에드워드 로이스의 인턴 보좌관으로 미국정치와 사회를 깊이있게 관찰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미국이 왜 강한가’라는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기자시절 언론보다 교육이 훨씬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선생님 당신이 희망입니다’라는 책도 출간했던 그는 대통령 언론2비서관, 대통령 제1대변인을 거쳐 올해 8월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됐다.

 동천교회 안수집사인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기도를 한다. 어릴 적부터 익혀온 신앙생활의 습관이다. 믿음이 좋은 어머니에게 유년시절부터 신앙의 교육을 받아온 박선규 제2차관.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는 어떤 어려움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강인한 믿음을 갖게 됐다.

 전북 익산이 고향인 그는 다섯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올라왔다. 그의 어머니는 청상과부로 시장행상, 공사판 막일, 남의 집에서 음식을 해주며 4남매를 키웠다. 새벽이슬 맞으며 집을 나와 늦은 밤이 돼서야 돌아오는 고된 생활이었지만 그럴수록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고 하나님만 의지했다. 그의 가족은 집 근처 교회에 출석했는데 박 제2차관은 주일학교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40여 년이 넘도록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찬양대장을 할만큼 봉사도 열심이다. 물론 지금도 찬양대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제가 어릴 적에 어머니가 안주무시고 울면서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하나님 저 정말 힘들어요.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일일이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키워주세요’ 그 기도소리를 듣고 자라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됐죠. 어머니는 제게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셨고 어린 마음에도 용기를 갖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셨어요” 

 박 제2차관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침에는 신문을 돌리고 저녁에는 시장에서 어머니 일을 도왔다. 할머니가 시장통에서 모아온 시래기와 정부에서 받는 밀가루는 그의 가족에게 일용할 양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주경야독을 하며 여섯식구가 한방에서 20여 년을 살았지만 늘 기쁘고 긍정적인 생활을 해왔다. 

 그는 유년주일학교부터 성경퀴즈대회, 연합행사 등에 빠지지 않고 나가 신앙성장을 했다. 신앙생활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그에게 희망을 갖게 했다. “신앙의 가장 강점은 어린아이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거죠. 기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사의 꿈을 꾸었지만 언론사 시험을 치러 KBS기자가 됐다. “하나님이 붙여주신 거였어요. 언론사 시험에 국어, 영어, 상식 150문제가 나왔는데 1번부터 150번까지 모르는 문제가 없었죠. 딱 한문제가 헷갈렸는데 병원전도다닐 때 병실에 켜있던 TV방송을 생각하며 맞출 수 있었어요” 무난히 1차 합격을 한 박 제2차관은 합격자 발표날 큰 아픔을 겪어야 했다. 누나가 사고를 당해 온 몸의 98%에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의사는 가능성이 없다며 치료를 포기했지만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피부를 이식했다. 2차 시험을 나흘 앞두고 수술대에 누워 하나님만 바라봤다. 시험준비는커녕 생살을 긁어내는 아픔을 참으며 수술을 마치고 엠뷸런스를 타고가서 시험을 봤다. 며칠 후 휠체어를 타고와서 3차 면접을 봤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인도하셨고 2500여 명의 응시자중 단 8명이었던 합격자의 대열에 섰다.   


 “합격자 발표 후 며칠 뒤 누나가 돌아가셨어요. 제 합격소식을 누나가 정말 좋아했죠. 제가 실력이 있어서 합격한 것이 아니라 누이의 죽음으로 엄청난 슬픔을 당한 우리 가족에게 하나님께서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기적을 주신거구나 하는 것을 알았죠”

 기자까지 되는 과정이 하나님이 기가막히게 짜내신 각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가졌다. 기자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91년 걸프전 종군기자를 지원했다. 93년까지 소말리아 내전, 수단내전, 유고내전 등 종군취재를 하며 기자로서 인정도 받고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혔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는 잠언 16장 9절 말씀이 새겨졌다.  

 “어머니는 늘 저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셨어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정치를 배우게 된 것도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었죠. 어머니가 미국에 가보고 싶어하셨는데 어머니의 기도응답으로 제가 미국에 가게 된거죠. 8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마지막까지 찬송을 부르시면서 주무시는 것처럼 평안하게 가셨어요. 어머니를 만난 것이 제게 가장 큰 복이죠. 어머니가 전해주신 믿음의 유산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려고 해요”

 그의 수첩에는 성경말씀과 기도문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 말씀이 수첩 가장 맨앞자리에 기록돼있다. 그의 수첩 안에는 “항상 친절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시고, 언짢은 상황에도 하나님 목소리를 먼저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매일 만나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내가 내 자리를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잡아주세요”라고 쓰여진 기도문과 그밖에 매일 아침 큐티를 하며 은혜받는 기도문들을 꼼꼼히 붙여놨다.   

 그는 2년 전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청와대기독신우회장을 하게 됐다. 1992년 기독신우회를 창립한 이후 회장을 맡아온 주대준 경호차장(현재 카이스트 부총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전임 기독신우회장이셨던 주대준 장로님께서 후임자를 놓고 기도를 많이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제가 기독신우회장을 맡게 됐어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오게 된 것을 깨달으면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역할이 어떤 것일지라도 세상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겠다는 소명을 갖게 됐죠. 저는 하나님 빽 말고는 빽이 없어요.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저를 보고 기적이라고 말하곤 해요. 정말 힘들고 지친 사람,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저를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고 어려웠던 저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여기까지 왔잖아요. 하나님은 아버지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시는 권능자세요. 누구든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힘을 내면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 기쁜 날이 올거예요. 저는 확신합니다”


글·이미나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10.11.12. pm 15:22 (입력)
이미나기자 (mnlee@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