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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헌 장로(콘솔토리아 베데스다 원장· 볼리비아순복음교회)

“하나님이 치유하시고 저는 봉사해요”

의술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전도
예배·전도·십일조 신앙생활의 신조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에선 ‘독토르(Doctor) 송’을 모르면 간첩이다. 무작정 택시를 타고 병이 잘 낫는 곳으로 가자고 하면 운전사들은 대학병원이 아니라 ‘콘솔토리아(진료소) 베데스다’에 내려줄 정도다. 대통령들도 인정한 송정헌 장로. 볼리비아에서 만난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말했다.

 산타크루즈에서 만난 송 장로는 쉴틈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5시 새벽 예배를 드린 후 6시 30분 진료소 문을 연다. 이미 30여 명의 환자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평균 100명 이상 치료하고 그외 시간은 교회에 헌신한다. 어찌 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지만, 그에게는 이미 일상이 돼버린 듯했다.

 한국에서 무역회사를 다녔던 송 장로는 거래를 하던 볼리비아의 한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1981년 1월 아내와 아이들을 한국에 남겨두고 홀로 수도 라파즈에 첫발을 디딘 것이 어느덧 30여 년이 흘렀다.
 “형님이 태권도 사범으로 볼리비아 대통령 경호실에 있었어요. 경호원들과 일반인들에게 침도 놓으셨는데, 형님 집에 머물면서 일을 도와드렸죠. 한국에서 재미삼아 지압을 배웠고  침뜸 공부도 했던 것이 매우 도움이 됐어요. 배우면 잊지 않고 잘했어요”

 송 장로의 직장은 처음 말했던 조건과 매우 달랐다. 속았다고 생각하니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형의 일을 본격적으로 도왔다. 얼마 후 형이 베네수엘라로 가버리자 혼자 남은 송 장로에게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였다.
 “사전을 보면서 침을 놓자니 말이 안 통하는 거예요. 가족이 모두 볼리비아로 들어온 후라 잡화점을 새롭게 운영하면서 우선 스페인어를 배웠어요. 그런데 잡화점에 도둑이 들어 물건을 모두 가져가 버렸어요. 그때 물건을 사면서 빌렸던 돈을 갚느라 고생을 많이 했었죠”

 지독한 고생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돈은 다 써 버린지 오래였다. 온가족이 한 방에서 생활했고 돈을 갚느라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송 장로 부부는 로스포체 시장 길바닥에 떨어진 채소들을 주어다가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닭장사 옷장사 닥치는 대로 일했다.
 “가난하고 너무나 어려웠어요. 그때 볼리비아순복음교회 목사님을 알게 됐어요. 우리집에 자주 오셨는데 제가 그랬어요. 친구라고 생각하면 오셔도 좋지만 전도하시려면 오지 말라고요. 목사님은 계속 오셨고 친구가 되어 집에서 찬밥도 즐겁게 나눠 먹을 정도로 친해졌죠”

 딸 셋은 볼리비아순복음교회 주일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송 장로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하루는 큰 딸이 주일학교에서 발표회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때 사진을 찍으려고 교회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놨던 것이 교회를 다니는 계기가 됐다.

 교회를 정식으로 출석한 후 한 달 만에 성령침례를 받았다. 1986년 4월 1일 송 장로는 주변사람들에게 이제부터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선포했다.
 “다들 만우절 농담이라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마귀는 농담이라고 여기지 않았죠. 십일조를 드린다고 하니깐 오던 환자들도 끊어지고 치료받던 사람들도 돈을 지불하지 않고 도망쳐버렸어요. 십일조를 드려야 되는데 수입이 끊어진 것이죠. 그때 목사님이 원수마귀와 싸워서 이겨야 된다고 하면서 기도하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순종하며 기도했어요”

 한 달 후 송 장로는 처음으로 십일조 20달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다. 그때부터 변함없는 십일조 생활이 시작됐다. 20달러로 시작한 십일조에 하나님은 30배 60배 100배 그보다 더 많이 넘치게 채워주셨다.
 “수입이 들어오면 우선 십일조를 먼저 떼어요. 십일조만 바라봤어요. 그리고 뒤돌아보니 제 것이 더 많아졌더라고요.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깨달았죠”

 송 장로는 신앙인들에게 첫째, 예배에 목숨을 걸고 둘째, 전도하고 그리고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하라고 당부했다. 20년 동안 새벽예배 수요예배 철야 주일예배 등 예배에 목숨을 건다는 송 장로의 집과 진료소는 교회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전도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치료를 받으려는 환자들이 새벽부터 진료소 앞에서 기다려요. 그래서 그들에게 새벽예배를 참석하면 번호표를 준다고 했죠. 새벽에 기다릴 바에는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이 낫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영접했고 치료를 받았다. 그는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것이고 자신은 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송 장로가 지금까지 진료한 환자들은 1만 6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에게 치료를 받은 사람 중에는 전직대통령도 있다. 하이메 파스 사모라 대통령은 그에게 감사하는 표현으로 크리스마스 때 칠면조를 보내기도 했다. 우고 반세르 대통령도 송 장로를 대통령 궁으로 불러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는 송 장로. 이웃들과 나눌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나눔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자 대답할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산타크루즈=글·이소흔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10.04.04. am 11:24 (편집)
이소흔기자 (sohuny@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