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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봉 장로 - ([주]코레일유통 사장·예수마을교회)

“가난 때문에 공부 못하는 사람 없어야죠”

성탄절 교회 행사 참여로 신앙생활 시작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CEO의 모델 제시

 코레일유통 대표이사 취임 1년. 이학봉 장로는  창사이후 지난 1년간 전해에 비해 11배가 넘는 이익을  끌어올렸다.
 305개 공기업들중 보기 드물게 노조의 환영을 받고 사장에 취임한 이 장로는 “공기업이 선진화하는 것은 체중을 줄이는 것보다 체력을 늘리는 것”이라고 강하게 설명했다. 부드러움속에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이학봉 장로를 만났다.
 이학봉 장로는 1948년 경남 포항에서 태어났다. 기와공장을 운영하던 할아버지 덕에 넉넉해야 할 가정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처참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금광업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나있던 아버지는 전쟁이 나자마자 인민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24세에 청상과부가 되어버린 어머니는 4살난 아들과 갓태어난 딸과 함께 살기위해 스러할 시간조차 낼수가 없었다.

 '하루는 친구가 연극을 함께 하자고 부탁을 했습니다. 성탄절에 교회에서 발표해야 되는데 사람이 모자랐나봐요. 그래서 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는데 장로님이 잘했다고 하며서 밀가루 한포대를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풀빵 장사를 하고 계셨는데, 제가 밀가루를집에 가져가니깐 살림 밑천을 벌어온 것 아닙니까? 그때부터 어머니는 교회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시더라구요. 그후에 어머니도 교회를다니셨고 천국 가실때까지 새벽예배를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를 도와 풀빵을 열심히 팔았지만, 가난은 그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내일 팔려고 저녁에 만든 풀빵 냄새는 공부하려고 앉은 이 장로의 배를 더욱 고프게 해서 어머니 몰래 먹고 쥐가 먹은 것 같다고 돌려대는 아들에게 어머니 김관숙 권사는 나무라기 보다는 ‘정직’을 가르쳤다. 어머니는 정직이라는 재산을 물려줬다. 모두 똑같은 정보를 접하고 획일화된 교육을 받던 시대, 어려운 세상에 정직하라는  가르침은 인생을 사는 지표가 됐다고 한다.

 이 장로는 가난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다. 1983년 무역회사 미국 지사장으로 있었을 때 정년퇴임을 하는 은사덕에 그의 장하사업이 시작됐다.
 “정년퇴임을 하신 스승님이 ‘너처럼 어려운 후배를 도와주라’며 제게 장학기금 2000만원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뜻이 같은 선후배가 돈을 더모아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장학사업은 계속 이어졌다. 그가 도운 후배는 지금까지 150여명, 누적금액은2억 5000만원이 넘는다. 이로인해 감사하다는 장문의 편지도 받았고, 유학갔다온 후배가 작은 돈이지만 보태달라며 쌈짓돈을 보내왔다. 이런 훈훈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지난 1월 모교인 경희대학교 총동문회는 이 장로에게 ‘자랑스런 경희인’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학봉 장로는 전문 경영인이다. 경희대 졸업후 연세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일신산업 부사장, 코리오링 화신폴리텍 등 민간기업 CEO를 엮임하면서 무역현장에서 직접 발품을 팔며 뛰어다녔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로버 경영마인드는 대단했다.

 “우리나라는 저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국민소득3만불 시대가 열어주시고 계십니다. 저는 2050년은 세계최고부자나라가 된다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자신 스스로가 변해야 합니다”

 이 장로는 코레일유통 사장으로 부임한 후 ‘접시를 깨뜨리자’라고 말했다. 이는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 접시도 깨트린다는 말이다. 안 깨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깨트리더라도 한번 해보자는 뜻이었다. 또한 이 장로는 인재 발굴ㆍ육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도입하고 적용함으로써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성과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제공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직원들은 그의 뜻을 따랐고 전년대비 11배가 넘는 회사 성장을 보였다. 그는 자신을 따라주고 열심히 해보는 직원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이 장로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가장 큰 복은 ‘아내’다. 그는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고 항상 기도하는 아내는 보석 중의 보석”이라고 말했다.

 이학봉 장로는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CEO의 모습과 섬세한 감수성이 공존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이성과 감성이 잘 조화되어 있는 이 장로는 크리스천 지도자로서 신앙인의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글·이소흔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10.02.07. am 11:17 (편집)
이소흔기자 (sohuny@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