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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면 장로 (믿음치과원장·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현장에서 찾은 행복
슈바이처의 꿈 안고 의대 진학
족자카르타 쓰나미 현장서 봉사사명 확인

 태국 치앙마이 빵뿌싱. 이곳에 라후족들이 살고 있다. 라후족은 원래 중국 서남부에 많이 살고 있는 소수민족인데, 미얀마와 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대부분 원시종교를 믿는 라후족들은 주로 깊은 산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의료혜택은 미비한 수준. 대나무 집을 층계로 지어 아래에는 가축들을 키우며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라후족들을 위해 순복음의료센터 봉사자들이 찾아왔다.
 빵뿌싱순복음교회 앞 마당에 차려진 작은 간이 병원에 소문을 들은 라후족들이 모였다.

 의료 봉사자들은 이들을 더 많이 진료하기 위해 손놀림이 바쁘다. 김영면 장로의 손길도 더욱 바빠졌다.

 믿음치과 원장이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로 봉사에 앞장서고 있는 김영면 장로. 그는 어떻게 봉사에 나서게 됐느냐는 질문에 “선교사가 세운 미션스쿨 숭실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신앙을 갖게 됐고 장차 의사가 되어 의료선교를 하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헌신한 슈바이처 박사처럼 되고 싶었다. 그 꿈을 품을 당시엔 의과대학에 진학할만큼의 실력은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나자 분명한 목표를 세웠고, 그래서인지 공부가 재밌었다고 한다. 하지만 의과대학에 두번이나 떨어지고 말았다. 김 장로는 낙심할 수밖에 없었다.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떨어지고 나니 자신감도 없어지구요. 게다가 교통사고까지 당하고 말았습니다”

 위기는 곧 기회였다. 마음의 방황에 시달리던 김 장로는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되자, 정신이 번쩍 났다.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가보니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학창시절에 만난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됐다. 이제 주어진 자신의 인생은 보너스라는 고백을 하게 됐다.

 결국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매진한 결과 김 장로는 치과대학에 입학을 했다. 모든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한 김 장로에게 ‘훈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처음 개업한 곳이 면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외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욕심을 내서 시내 중심가인 충무로 쪽으로 병원을 옮겼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환자가 너무 적어 병원유지가 힘들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후배에게 사기까지 당했다. 모아놓은 돈도 없이 삶의 기초까지 정신없이 흔들린 뒤 김 장로는 좌절된 마음을 갖고 시골로 내려가기 위해 고속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학창시절 품었던 꿈을 다시 한번 끄집어냈습니다”

 그후 김 장로는 봉사를 최우선으로 삼게 됐다. 물질에 대한 염려도 다 내려놓게 됐다.
 기억나는 해외봉사로는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쓰나미 지진 때의 일을 꼽았다. 당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삶의 터전인 집이 무너져 거리에 나앉게돼 학교 강당에서 단체 생활을 했다. 게다가 한꺼번에 많은 부상자가 몰려서 의사와 병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들을 돕기 위해 NGO에 소속된 전 세계 의사들이 몰려왔다. 눈뜨고 보기에 안타까운 현장이었지만, 그곳에서 봉사하면서 김 장로는 자신의 봉사사명을 되짚어보게 됐다. 그래서인지 선교현장에서 만난 김 장로의 얼굴에서는 항상 기쁨이 넘친다.

 “선교현장에 가면 영적, 육적 눈이 밝아집니다! 선교현장에 가면 새로운 힘이 납니다”
 김 장로가 봉사자들을 독려하는 이 말은 그의 삶에서부터 나온 믿음의 고백이다. 그래서 김 장로의 봉사 발걸음은 뒤로 물러섬이 없다.
 지구촌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김 장로의 2010년 힘찬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치앙마이=글·이소흔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10.01.17. am 11:09 (편집)
이소흔기자 (sohuny@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