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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 박사(미국 존스 홉킨스 병원 재활의학 수석 전문의)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운동선수에서 사지마비 장애인으로 의학공부 
환자들 고통 극복하게 하는 디딤돌 슈퍼맨 닥터


 세계 최고의 병원인 존스홉킨스 병원 재활의학과 병동에는 아주 특별한 의사가 있다. 휠체어를 타고 병동을 누비는 의사 ‘로버트 리’(Robert Lee). 한국인 이승복 박사다. 미국 내 단 두 명뿐인 사지마비 장애인 의사 중 한 명인 그는 환자들에게는 고통을 극복하게 하는 디딤돌이 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도전과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그가 미국 땅을 처음 밟은 것은 여덟 살 때인 1973년. 이 박사의 아버지는 당시 약사로 약국을 운영하며 더 넓은 세계로의 도전을 꿈꿨다. 그래서 미국 이민을 결정했다. 태평양 건너 가족이 처음 자리 잡은 곳은 뉴욕 퀸스 구역의 플러싱. 흑인과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활기찬 곳이었지만 사건 사고도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었다. 그때부터 힘든 이민생활은 시작된 것이다. 이 박사는 부모가 너무 바빠 통 얼굴을 볼 수가 없었고 심지어 어린 동생들까지 돌봐야만 했다.

 하루는 평소 다니던 한인교회 옆 YMCA 체육관에 친구들과 농구를 하러 갔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또래 아이들이 봉을 짚고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이었다. 난생 처음 그 모습(체조)을 본 후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우와! 정말 멋있어. 완전 하늘을 나는구먼.’

 그날 집에 돌아와 TV를 켰다. TV에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루마니아의 꼬마 소녀 코마네치가 완벽한 연기로 체조 사상 최초의 10점 만점을 받으며 세계를 뒤흔든 바로 그 장면이었다. 미국에 온 후로 부모의 정에 굶주리며, 놀림과 낯선 환경 속에 하루하루 기운이 사그라지던 그의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장면이었다.

 체조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79년 이 박사는 뉴욕주 시합에서 마루운동 부문 챔피언이 됐고, 코치의 권유로 미국 국가대표 상비군을 키우는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 체조훈련센터에 들어가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이후 그는 82년 전미대회에서 마루 1등, 도마 1등, 종합순위 3등을 기록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코치들 사이에서 그를 미국 국가대표팀에 넣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미시간대, UCLA,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등 체조팀을 운영하고 있는 거의 모든 대학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 박사는 ‘대한민국 대표’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이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그가 한국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할 길이 활짝 열릴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성공이 눈앞으로 다가오던 순간, 그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83년 7월5일 코치의 지시를 어기고 혼자 도약 연습을 하다 턱부터 마루에 처박히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것이다.
 “공중으로 솟아올라 540도 회전을 하는 도중 거꾸로 처박혔죠.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몸의 신경이 끊어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 눈앞에 ‘G-O-D’라는 알파벳 세 글자가 또렷이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왕좌에 오르기 위해 발버둥치는 제가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박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돼 한동안 절망감과 패배감에 젖었다. 하지만 그때 하나님께서 대신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떠올랐어요. 얼마 후 래리라는 선교사를 우연히 만났죠. 그는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등 전체적인 복음을 내게 명료하게 전해줬습니다”

 이후 이 박사에게 대단한 변화가 일어났다. 교회에 나가긴 했지만 미지근했던 그의 가슴에 성령의 불이 붙은 것이다. 그때서야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로마서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말씀이 제 가슴을 내리쳤어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수모와 고통이 떠올랐어요. 예수님을 새롭게 다시 영접한 것이죠. 날짜도 잊지 못해요 1987년 4월27일의 일이었습니다. 기적을 경험했어요. 내 등을 짓누르고 있던 산더미 같은 벽돌이 한순간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귓가에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리는 듯했습니다”

 그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장애인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되는 것이 잃어버렸던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되찾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체조의 열정을 공부에 쏟았죠”

 이 박사는 재활훈련을 받으면서 미 대학입학능력시험(SAT) 공부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공부하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어요. 하지만 허리가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공부에 몰두했어요”

 그 결과 이 박사는 SAT 1320점(1600점 만점)으로 뉴욕대에 입학했다. 그 뒤 컬럼비아대 보건대학원을 거쳐 다트머스 의대에 진학했다. 의대 실습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주사 놓기가 힘들자 호박에 작은 점을 찍어 바늘을 꽂는 연습까지 했다. 의대 동기생들은 억척스러운 그를 ‘슈퍼맨’이라고 불렀다.

 “‘슈퍼맨’이라는 별명 때문에 저를 특별한 사람으로 보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전 남들보다 좀 더 많이 노력한 평범한 사람일 뿐이에요. 제가 TV에 출연하고 자서전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를 쓴 건, 인생에서 좌절을 겪은 분들에게 ‘아, 저 사람도 하는 걸 보면 나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과 용기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이 박사는 명문 다트머스 의대에서 수석졸업한 뒤 하버드대 인턴과정도 수석으로 마쳤다. 그러자 그의 이름 앞에는 ‘슈퍼맨’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이 박사의 이야기는 미국과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
 “제게는 금메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 오랜 갈망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글·이소흔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09.08.28. pm 16:06 (편집)
이소흔기자 (sohuny@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