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람들 > 초대석
정두현 원로장로(〔주〕천마 회장·여의도순복음교회)

“사업보다 선교가 먼저죠”

조부·부친의 신앙유산 몸으로 실천
미국·인도에 교회 설립, 조용기 목사 해외성회 후원

 7월 17일 국민일보빌딩 12층 우봉홀에서 의미있는 행사가 있었다. 미국 애빌린 크리스천 유니버시티(ACU) 존 타이슨 부총장이 방한해 우리교회 정두현 장로에게 ‘올해의 자랑스런 동문인상’을 수여한 것. 106년 전통의 ACU로부터 한국인 처음으로 자랑스런 동문인상을 받은 정 장로.

 경북고와 연세대 상경대학 상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0년 미국으로 건너가 남감리교대학(SMU)에서 대학과정을 6개월 수학하고 62년 ACU에 입학, 석사과정(MBA)을 마쳤다. 당시 정 장로를 가르쳤던 90세가 넘은 한 노교수는 지금도 ‘듀크 정(미국명)’을 생각하면 세상이 아름답고 행복해 진다고 했다는 전언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정계 재계 교계에서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정두현 장로의 신앙과 교회사랑은 선대의 영향이 컸다.

 정 장로의 조부인 고 정인백 장로는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침례를 받았다. 할아버지 사랑방에서 몇몇이 모여 태동된 교회가 구미 상모교회이다. 구미 상모교회는 박정희 대통령이 유년기에 다녔던 교회로 유명한 곳이다. 정 장로의 부친 고 정규만 장로도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정규만 장로는 33세의 나이에 장로 장립을 받았다. 이를 기념해 정 장로의 부친은 대구 서현교회의 현 성전부지를 헌납하고 기공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하루는 새벽예배를 다녀온 아버지가 가족을 모아놓고 ‘이 집을 하나님께 헌납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형 어머니 모두는 걱정을 했지만 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40년대 말, 우리나라에 전염병이 돌았다. 전염병은 삽시간에 대구·경북지방을 휩쓸었고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두현 장로의 부친이 운영하던 한약방에서 만든 약을 먹으면 깨끗하게 낫는 것이었다.

 “대구 약전골목에 있는 정약국 약만 먹으면 살 수 있다는 소문이 전국에 쫙 퍼져 버렸어요. 환자들이 아침부터 한약방에 와서 약달라고 무조건 기다렸고, 저는 그들에게 줄을 서게해 약을 나눠주는 일을 했어요. 그때도 아버지는 선교사님이나 목사님이 오시면 약값을 받지 않았어요. 뿐만 아니라 돈을 자루째로 주기도 하셨죠”

 정규만 장로는 대구 시내에서 가장 큰 집을 사서 교회의 회의 장소로 이용했다. 그곳에서 많은 부흥사와 목회자들이 쉬어 가도록 했다. 축복은 교회건축으로 이어졌다.

 “환자에게 약을 지어주시던 아버지가 성전건축을 하려고 하시는데 건축이 시작되자마자 죽을 병에 걸리신 거예요. 아버지는 살려주시면 전 재산을 다 바쳐 성전건축에 헌신하겠다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정 장로의 부친은 한약방에 모아진 돈을 자루로 담아 건축헌금으로 드렸고 돌 등 가장 좋은 건축자재를 직접 구입해 성전건축에 정성을 다했다. 게다가 본인이 소유한 부동산을 정리하여 건축헌금을 드렸다. 그래서 엄청난 공사비를 단 한번도 체불한 적이 없었다. 정규만 장로가 이렇게 건축한 교회는 그 당시 동양 최대의 석조 예배당으로 유명한 지금의 대구서현교회이다. 정규만 장로의 선행은 이 밖에도 끝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장례식에는 대구시민이 깜짝 놀랄정도로 조문객이 많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정두현 장로도 부친을 많이 닮았다. 70년대 미국 뉴저지 지역에 처음으로 한국교포교회인 뉴저지제일한인교회가 세워졌는데 여기에 정 장로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인도에 성전을 건축했다. 정 장로는 이러한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 드린 것보다 주님께서 더 크게 축복해 주시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조용기 목사의 해외성회를 따라 다니며 하나님의 일에 동참했다.

 “조용기 목사님은 당시 해외 나가실 때 교회에서 경비를 받아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해외집회 주최측이 목사님께 사례비를 주면 경비를 제하고 나머지를 모두 경리국에 갖다 넣었지요. 그걸 알고 우리가 경비를 다 대기로 했습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초청하는 쪽에서 비행기표도 안 보내줬어요”

 정 장로는 조용기 목사, 최자실 목사와 함께 해외성회를 다녔다. 정 장로에 따르면 조용기 목사는 외국인을 위한 집회를 하고, 최자실 목사는 한인을 위한 집회를 주로 했다. 최자실 목사가 외국인들에게 설교할 때면 조용기 목사가 통역을 했는데 어느날부터 정두현 장로가 그 일을 했다.

 “조 목사님이 저에게 미국서 공부했으니 한번 해보라고 하셔서 용기를 냈지요. 최자실 목사님의 설교는 논리적이라기보다 구수한 이야기식이에요. 최자실 목사님 몸짓을 그대로 흉내내면서 통역하면 모두들 배꼽 잡고 웃었지요. 그때 참 재밌게 선교 여행을 했어요”

 정 장로는 80년부터 3년 동안 조용기 목사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 다녔다. 최근에도 조용기 목사의 해외성회에 종종 동행한다.
 80년 2월 하와이 집회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정두현 장로는 진양화학에 아래도급을 줘 10년 간 미국 시카고에 있는 NSC라는 회사에 토일렛 키트라는 세면 도구를 수출하고 있었다. 물건을 컨테이너에 적재하기 전 마지막으로 검사를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선교 여행 중간에 귀국한 적이 있었다.

 “참 이상했어요. 10년 간 아무 일 없었는데, 그때 하필 사이즈가 좀 작다면서 클레임에 걸려서 물건이 다 되돌아왔어요. 굉장히 회개했어요. 목사님이 선교하시는데 혼자 가시게 하다니… 하는 생각에 후회가 많이 되더군요. 그때 사업보다 선교가 먼저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81년 5월, 형 정영현 사장과 정 장로는 (주)천마교역을 설립했다. 도금 및 국제 무역 서비스를 중심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1990년 5월 회사명을 천마로 바꾸고 열수축관, 핸드백, 자석 관련 기기 등의 제조 및 판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90년대 초에는 미국, 멕시코, 중국에 지사를 설립해 글로벌 비즈니스 거점을 확장해 나갔다. 처음에는 형이 대표를 맡았다. 형은 일본 동경상대와 와세다대학원을 졸업한 후 삼성물산, 신흥물산 등에서 근무하다 주일공사 및 중앙정보부 총무부국장 등을 역임한 유명인사이다. 형은 99년 동생 정두현 장로에게 사장자리를 물려줬다. 정 장로는 천마를 2006년도에 약 90억원 매출을 달성하는 기업으로 키웠다. 현재는 용인과 중국에 공장을 두고 10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은 정두현 장로의 자녀 세대로 흘러가고 있다. 두 아들 중 한 명은 안과의사로, 한 명은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정 장로를 돕고 있다. 이들 역시 하나님과 교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글·이소흔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09.07.24. pm 15:21 (편집)
이소흔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