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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출신 장로들의 호국 정신과 신앙

 

<사진 왼쪽부터 박용태 채명신 원호연 박환인 장로>


6·25를 바로 알자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총체적 위기를 수없이 맞았고 그 때마다 슬기롭게 어려움을 이겨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북한의 핵 개발과 대한민국의 국론 분열도 우리가 극복해야 할 난제임에 틀림없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기독인들의 소명은 더욱 분명히 나타났다. 호국보훈의 달인 유월을 맞아 국방 원로인 예비역 장군을 만나 고언을 마음에 새기고 그들의 신앙생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교회 장로로 장성 출신인 분은 채명신 전 2군사령관(84·예비역 중장), 원호연 전 국방대 교수부장(76·준장),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71·대장), 박용태 전 공군사관학교장(75·소장), 박환인 전 해병대 부사령관(73·소장)이다. 다른 교회에서 장로 직분을 받고 현재 우리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예비역 장군으로는 이상로 전 해병대사령관(58·중장)도 있다.


★★★ 장로들, 나라 걱정에 잠이 안와

“6·25, 북침 혹은 일본군이 침략한 전쟁인줄 알아요”

 한목소리로 한국전쟁 제대로 알아야

 “남북이 분단된 후부터 한반도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6·25는 공산당의 잔악함과 전쟁의 처참함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나라를 지킬 힘을 기르지 않은 민족은 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과 주월한국군사령부 총사령관 겸 맹호부대장, 2군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로의 말이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전쟁의 비참함을 직접 겪은 채 장로는 “젊은이들이 선배들이 목숨바쳐 지켜온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닫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채 장로는 태극·을지·충무·화랑 무공훈장 등 수많은 훈장을 내리받아 전쟁의 영웅으로 불리우고 있기도 하다.

 공군 18전투비행단장과 공군본부작전참모부장으로 영공을 지킨 박용태 장로. 그는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35.1%가 ‘6·25 전쟁은 한국이 일으킨 것’으로 잘못 알고 있대요. 북한이 남침한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초등학생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해요. 어떤 학생은 6·25 전쟁은 일본군이 쳐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요”라며 한국전쟁의 진실이 왜곡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질 못했다.

 육군본부 보안부대장과 61사단장을 역임하며 공부를 계속해 홍익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원호연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갓 입학한 사관생들에게도 조사를 했더니 상당수가 6·25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해요. 하지만 그들에게 제대로 교육을 시키니 졸업하고 임관 받을 때 역사관이 완전히 달라졌대요. 그만큼 교육이 중요합니다”

 귀신잡는 해병대의 믿음의 사자로 통하는 박환인 장로는 ‘6·25 진실알리기본부’의 중책인 섭외위원장을 맡아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소련과 손잡고 일으킨 공산화 전쟁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청소년들이 6·25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우리들 기성세대의 책임이 큽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바른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모두 뚜렷한 자유민주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김일성이 남북통일을 하기 위해 벌인 민족 전쟁인데 미국이 망쳤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감상주의에 빠진 민족주의자들이죠. 정말 위험한 의식이며 이데올로기입니다. 하나님은 미국을 통해 우리나라를 도왔습니다. 대한민국은 미국이 아니었다면 이만큼 잘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박 장로는 한미연합사 해체 반대를 주장하며 1천만명서명운동을 제일 앞장서서 하고 있다.   


   

 별들의 신앙과 기도

 채명신 장로의 첫 임지는 제주도에 주둔중인 9연대. 제주 4·3사건 발생 사흘 후에 부임했다. 나중에 연대장 암살을 주모한 모 중위가 중대장으로 있는 중대의 소대장으로 가게 됐는데, 첫날 소대원 42명과 만났을 때 84개의 눈동자가 모두 증오와 살기에 차 있었다고 한다. 채 장로는 장교막사에서 밤새도록 잠을 안자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다음날 아침 하나님의 계시인 듯 음성이 들렸다. ‘무서워하지 말고 그 속에 뛰어들어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고 돌봐주어라’.

 채 장로는 그길로 보따리를 싸들고 곧바로 소대원 막사로 달려갔다. 그날부터 형편없는 소대 막사의 한귀퉁이에 칸막이를 하고 소대원들과 같이 고락을 같이했다. 그래서 중대장의 암살지령이 여러번 내려, 죽을 고비가 있을 때마다 부하들이 생명을 내던지고 채 장로를 보호했다고 한다.

 원호연 장로는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61사단장을 맡았다. 그때 전남에 내려가서 집집마다 찾아가 어른들을 뵙고 크리스천으로서 사과하고 군에서 도난당한 무기를 회수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도움이 그때만큼 간절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박용태 장로는 딸의 병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예편을 하기 직전 대학 4학년생인 큰 딸이 암 말기로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때 군종감이 하나님을 믿으면 병이 낫는다고 해서 딸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우리교회를 나왔다. 휠체어에 딸을 태우고 대성전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데 그날 바로 성령을 받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습게 보며 교만했던 지난 일들을 회개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예배가 끝나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딸은 식구들에게 하나님을 알게한 후 천국에 갔다. 벌써 23년이 지났다.

 박환인 장로는 촉망받던 선배가 사고로 군복을 벗는 모습을 보고 충격받아 하나님을 생각하게 됐다. 박 장로는 자신이 최선을 다한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미국 유학시절 동료가 전했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본격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예편 후 활동도 왕성해

 채명신 장로는 대한민국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총재로 지금도 반공교육이 필요한 곳이면 노구에도 불구하고 달려간다. 원호연 장로는 호서대에서 경영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작년에 은퇴했다. 로고스선교회에서 활동하며 이번에 영남대에서 열리는 전국로고스교수선교대회에 참석해 교수들에게 국가안보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피력할 계획이다.

 박용태 장로는 아시아나항공 부사장이자 창립멤버로 취항 노선 개척을 위해 세계를 누볐다.  

 박환인 장로는 믿음의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군인 가운데 조용기 목사를 가장 많이 찾아가 기도받으며 군복음화에 기여했다. 지금도 군선교와 국방교육·한미동맹강화·북한핵폐기 등 국가안보활동에 청년처럼 활동하고 있다. 박 장로는 우리교회 방송국장, 교보문고 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걷고 달려야 건강

 장군 장로들은 건강도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는 1만보이상 걷기와 5리(2㎞) 달리기가 건강유지에 제일이라고 귀띔해주었다. 하지만 철저한 군인정신이 오히려 건강을 해친 경우도 있었다. 채명신 장로는 얼마전 병원 신세를 톡톡히 져야했다. 맹장염 때문에 생긴 복통을 군인정신으로 참은 것이 화근이 됐다. 결국 복막염으로 번져 53년만에 부인에게 처음으로 아프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의 공통점은 현재 나라 걱정에 잠이 안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권사님의 말씀을 존중해줘 가정을 늘 화목하고 행복하게 이끌고 있었다. 

 

기사입력 : 2009.06.19. pm 13:42 (편집)
이소흔기자 (sohuny@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