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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순 권사(여의도순복음교회)

"어머니의 사랑 덕분에 효부가 됐어요"

40여년 어려운 환경속 시어머니 지극 봉양  
매일 새벽 찬바람 맞으며 우유배달도 행복

제14회 영산효행상 효부상 부문 수상해

 

 지난 10일 어버이주일에 열린 제14회 영산효행상에서 효부상을 받은 최인순 권사. 최 권사는 예순이 가까운 나이에 여든이 넘으신 시어머니를 살뜰히 봉양하는 소문난 효부다.

 그러나 최 권사는 “함께 상을 받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분들이 고생하고 부모님들을 잘 섬긴 것에 비하면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 송구스러워요. 어머니 덕분에 제가 상을 다 받네요. 어머니께 감사해요”라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최 권사는 매일 새벽 찬바람 속에 우유배달을 하러 집에서 나가기 전 어머니가 언제든지 드실수 있도록 먹을거리와 물 등을 어머니의 손이 닿는 곳에 챙겨 두고 길을 나선다. 곧 일을 마치고 돌아올테지만 혹시나 최 권사가 없는 사이 어머니께서 불편하실까봐 미리 조치를 하는 것이다.

좁은 집안에서 가장 큰방인 시어머니 김옥자 집사의 방은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하고 깨끗하다. 척추와 관절질환을 앓고 있어 혼자서는 걷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방안에는 간이용변기가 있지만 어떠한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다.
 최 권사가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이유는 시어머니가 큰 재산을 물려주셨기 때문이 아니다. 최 권사는 “효부는 며느리 혼자서 잘 한다고 되는게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니가 저를 정말 사랑해주시고 먼저 잘해주시니까 잘 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죠”라고 말했다.

최인순 권사가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왔을 때 시댁 형편은 어린 시동생 넷과 홀시어머니, 남편의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모두 방한칸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막내 시동생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더구나 시집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시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입원했고 청천벽력같이 남편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어린 신부는 시어머니 대신 초상을 치러야했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시어머니는 관절에 이상이 생기고 몸이 약해져서 잦은 병치레로 바깥일을 할 수 없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큰일에도 최 권사는 남편을 의지해서 어린 시동생들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제가 사랑해서 남편을 선택했으니까 친정식구들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기 싫었거든요. 열심히 사는 길 하나 밖에 없었어요”

스트레스가 심해서였는지 첫아이인 딸을 결혼 5년이 돼서야 갖고 둘째인 아들도 다섯 살 터울로 태어났다. 최 권사 부부는 열심히 살았지만 형편은 어려웠다. 월남전에 참전한 해병대 출신의 남편은 패기 있게 여러 가지 사업에 도전했지만 뜻대로 된 것이 별로 없었다. 그때부터 최 권사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파출부도 다니고 공장과 식당에서 일도 하고 시장에서 장사도 하고 부업도 했다. 최 권사의 두 손을 보니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한쪽으로 휘어버린 손마디들이 최 권사가 살아온 40여년의 고단한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며느리가 일을 나가면 결혼 전에 교사였던 김옥자 집사는 어린 손자들의 공부도 가르치고 숙제도 지도하면서 손자들을 양육했다. 

최 권사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피로가 깊어져 병이 여러 번 났다. 병원에 가도 병이 낫지 않았을 때 최 권사는 의지할 곳이 너무도 필요했고 우연한 기회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 1983년부터 출석했다. “그냥 주일예배만 드려도 마음이 즐겁고 편해지고 좋았어요. 교회에서 금요철야 오라고 하면 가고, 구역예배 참석하라고 하면 하고 시키는 대로 했더니 삼년쯤 지났을까 제 모든 병이 사라진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홧병이었던거 같아요” 그후로 최 권사는 8년동안 구역장을 맡으며 하나님일도 열심히 했다. 교회일도 해야하고 어머니도 돌봐드려야 해서 선택한 일이 우유배달이었다. 벌써 18년이나 됐다. “교회에 오면서 살림도 조금씩 나아졌어요. 그때 월세에서 전세로 옮겼고요. 지금도 저희가 사는 집이 우리집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만큼 사는 것도 만족해요. 남편과 제가 아직 일을 하고 있잖아요. 딸도 좋은 사위 만나서 결혼했어요. 특히 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외국유학도 다녀와 취업도 했고 곧 12월이면 새신랑이 돼요. 어머니가 안 아프시다면 더 바랄게 없죠”

옛이야기를 하는 도중 없는 집에 시집와서 고생만한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새 출발을 권한적도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최 권사는 어머니 때문에 힘든 세월을 힘든 줄도 모르고 버틴 것이라며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말하기 전에는 고부의 얼굴에서 고생한 흔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소녀같이 웃는 천진한 표정을 칭찬 하니 고부는 “하나님의 은혜”라며 입을 모아 외쳤다. 교회에 다니면서 변화된 며느리를 보며 김 집사 역시 스스로 교회에 가기를 자청했다. 시어머니는 교회에서 나오는 순복음가족신문을 보면서 말씀도 찾아보고 성경도 읽고 공부도 하시면서 예수님을 영접했다. 10여년 전에 돌아가신 시할머니께서도 97세셨는데도 함께 예배드리시고 기도하셨다. 시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당부하시기도 했다.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최 권사의 모습에 감동한 가족들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전도가 됐다. 

시어머니 김옥자 집사는 “우리 며느리가 이제는 며느리가 아니라 딸 같아요. 가족들 앞에서는 다 괜찮다며 눈물 보인 적 없지만 남 안보는데서는 많이 울었을 거예요. 며느리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았을지 몰라요”라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최인순 권사는 “어머니 덕분에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화나고 속상한 일 생기면 어머니에게 투정하고 고민이 있으면 어머니에게 털어 놓지요. 친정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친정엄마하고는 열아홉 해를 살았는데 시어머니하고는 40년을 살았지요. 어머니가 다시 건강해지셔서 마음껏 돌아다니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형제들을 전도하고 싶어요. 지금은 형편상 새벽에도 우유배달을 해야해서 새벽예배도 가지 못하는데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싶고요”라며 마음속의 소망을 보였다.

 

기사입력 : 2009.05.15. am 08:53 (편집)
복순희기자 (lamond@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