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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상 안수집사(변호사·창원서머나교회)

‘경남 성시화’ 하나님의 뜻입니다
2009 경남성시화대부흥성회 숨은 일꾼
5월 21일 ‘부부의 날’ 만들어낸 법조인

 4월 21일 저녁 ‘2009 경남성시화대부흥성회’가 열린 창원실내체육관. 20일부터 양일간 20개 시군에서 모인 30만 성도들은 복음화율 9%인 경남이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거룩한 도시가 되기를 뜨겁게 기도했다. 경남성시화운동본부가 주최하고 20개 시군에서 참석한 목회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 이번 행사에서 안수집사로 수석본부장을 맡은 권영상 변호사를 만났다.

 “2000년 봄에 부산고등법원장이던 양인평 장로님이 연락을 하시더니 대뜸 경남에 홀리클럽을 창립하고 기독인기관장회를 결성하라고 했습니다. 창원기독법조인회 실무를 맡고 있던 저는 대선배님의 엄명을 거역할 수가 없었죠. 본인 스스로 ‘성시화 방화범’이라며 성시화운동에 앞장서는 분을 누가 말릴 수 있겠습니까”

 권영상 변호사는 경남의 대표적 평신도 지도자 박윤섭 장로와 함께 평신도지도자들과 연합해 그 해 가을 경남홀리클럽을 창립했다. 경남도민홀에서 열린 창립예배는 500여 명의 성도들이 모였고 이를 계기로 진주홀리클럽, 남해홀리클럽이 줄줄이 설립됐다. 또한 기독지도자들로 구성된 경남기독인기관장회(기독기관장홀리클럽)가 결성됐다. 평신도뿐만 아니라 목회자들까지 연합하여 ‘전 교회(Whole Church)가, 전 도시(Whole City)에, 전 복음(Whole Gospel)’을 전파하고, 지역사회를 ‘범죄도, 빈곤도, 질병도 없는 거룩한 도시’로 만들자고 성시화운동에 팔을 걷어붙였다. 특히 군복음화를 위해서 39사단 교회를 수시로 방문한 결과 부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이렇게 승승장구 발전하던 홀리클럽에 위기가 닥쳤다. 회장 박윤섭 장로의 건강악화와 기독인기관장회 회장 이윤구 인제대 총장의 대한적십자사총재 취임 등으로 성시화운동의 중심축이 무너지면서 기독인기관장회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2008년 봄 또다시 8년 전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한국성시화운동본부 공동본부장 양인평 장로의 전화가 권 변호사에게 걸려왔다.
 “경남에 ‘총체적인 성시화운동’의 불을 붙이자며 경남기독인기관장회 모임에 직접 참석하셔서 경남에 성시화운동이 간절히 필요하다고 역설하셨죠. 뭐라고 할까요? 거룩한 부담감? 결국 그 부담감으로 경남성시화대부흥성회라는 큰 행사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게다가 지난 1월 경남성시화운동본부가 창립되자마자 창원지방검찰청에 검찰에서 대표적인 신앙인으로 알려져 있는 황교안 검사장이 부임했고, 창원지방법원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 기독신우회장을 역임한 정장오 법원장까지 부임했다. 권 변호사는 경남성시화운동이 하나님의 뜻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성시화운동은 1995년 춘천성시화운동이 시작입니다. 그 때 춘천지방검찰청에 전용태 검사장이, 춘천지방법원장에는 양인평 법원장이 동시에 부임하면서 춘천성시화운동이 발화됐고, 한국의 성시화운동이 불붙기 시작한 것이죠. 바로 그 때와 꼭 같은 일이 우리 경남에 일어난 것이죠”

 성시화운동의 또 다른 방화범(?)이 되어버린 권영상 변호사는 모태신앙인이다. 어머니는 경남 의령 안동 권씨라는 엄격한 유교집안에 시집와서도 교회에 출석했고, 결혼 9년 만에 기도로 권 변호사를 낳았다고 한다.
 “제 이름이 영상인데, 마을 어른들이 경상도 발음상 저를 ‘영생’이라고 부르셨어요. 기독교적인 이름이지 않나요? 어머니의 신앙으로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녔고 영남에서 가장 오래된 미션스쿨인 대구 계성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권 변호사는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대학원, 석·박사과정수학, 법대조교생활, 강의 등 좋은 조건이 주어졌지만 권 변호사는 서울로 올라온 어머니와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는 불안함이 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법대 민법전임교수로 내정됐을 때다. 권 변호사에게 독일국가장학생(DAAD) 유학과 사법시험합격 및 사법연수의 기회가 동시에 주어졌다. 하나님은 이 사회에 넓게 영향을 주는 자가 되라고 응답하셨고 사법연수를 받게 인도해 주셨다. 주님의 인도하심은 계속 됐다. 변호사로 한창 바쁠 때, 고향으로 내려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서울에서 그동안 얻었던 모든 성과와 기반을 일절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1994년 초 저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경남 창원으로 내려갔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간 권 변호사는 지역사회를 위한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기독시민단체인 창원YMCA 창립 및 이사장, 경남협의회장을 비롯한 각종 시민사회단체, 범죄예방단체, 복지 및 장애인단체, 지역개발토론단체 등 무려 70여 단체에 참여하여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가 날로 늘어가는 가정파괴의 주범인 세계 1위의 이혼율을 줄이고, ‘건강한 부부, 행복한 가정, 밝은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부부의 날 운동이다.

 “1998년 권재도 목사님이 저를 찾아와 부부의 날에 대한 뜻과 취지를 설명하셨어요. 저는 즉시 ‘부부의 날 위원회’를 구성하고, 다음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어요”

 2001년 봄 권 변호사와 지역인사 187명이 함께 국회에 국가기념일 제정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 결과 국회본회의에 통과돼 2007년 5월 2일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정식공포(대통령령 제20045호)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권 변호사는 UN에 세계부부의 날을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경남성시화 대부흥성회를 발판삼아 세계성시화를 꿈꾸는 권 변호사의 힘찬 도약이 기대된다.


창원=글·이소흔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09.04.24. am 12:40 (편집)
이소흔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