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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영 권사(전북여성단체협의회 초대회장·구암교회)

조옥영 권사(전북여성단체협의회 초대회장·구암교회)

“기도는 축복의 통로이자 힘의 근원”

수천 명의 제자들을 길러낸 평생 교육자

1남5녀를 신앙 안에서 키운 기도의 어머니

전북 여러 여성단체 설립한 여성 리더

 

“혹시 조옥영 선생님 아니세요?”

조옥영 권사가 미국에서 잠시 체류하면서 관광지를 방문했을 때였다. 한국인들로 가득한 관광버스 안에서 서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잠시 들린 휴게소에서 한 아이의 손을 잡은 한 주부가 조옥영 권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옥영 권사는 찬찬히 그 주부의 모습 속에서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의 얼굴을 발견해 내었다.

조옥영 권사는 전주여자중학교와 전주여자고등학교 교사, 교육위원회 중등장학사, 오수중학교·삼례여자중학교 교장, 걸스카우트 전북연맹장 등 수천명의 제자를 육성한 교육자이다. 특히 교육을 강조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1남5녀에게도 그 영향은 이어졌고 그 열기는 자식들에게도 이어져 대대로 교육 그리고 신앙은 대대에 물리는 선물이 됐다.

“사실 저는 타종교에 심취한 집안에서 태어나 하나님과 교회를 가까이 할 수 없었죠. 하지만 친구들이 교회도 가고 함께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늘 부럽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신앙을 갖게 되면서 삶의 큰 반전이 일어나게 됐죠”

당시 수피아여고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셋째 언니가 휴가를 내고 집에 왔다. 언니는 아버지에게 “함께 부흥회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자녀들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조 권사의 아버지는 그렇게 언니를 따라 처음 부흥회에 참석했다. 당시 부흥회는 일주일간 한 일본인 목사를 강사로 초청해 진행됐다. 그녀의 아버지는 부흥회에 참석한 후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 다음날 열린 부흥회에는 가장 먼저 부흥회 장소로 가서 맨 앞에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에는 목사님으로부터 안수기도 받고 하나님께 회개기도 드렸다. 그 후 아버지는 늘 성수주일에 힘썼고 주일에는 금식하고 기도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조 권사는 강한 신앙을 물려 받을 수 있게 됐다.

“그 후 지금의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주일에는 아이들과 함께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렸어요. 결혼 후에는 아이들을 모두 신앙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노력했고 공부는 물론 반드시 악기도 다룰 수 있도록 가르쳤죠. 특히 여자들은 명랑하고 예절도 발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특기도 필요하구요. 그 당시에는 이런 생각이 드물었죠”

그녀는 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엄격했지만 자녀들에게는 더욱더 엄격했다. 추운 겨울 피아노를 공부하러 가는 아이들을 위해 돌을 뜨겁게 달구어 손에 쥐어주거나 전주에서 서울까지 레슨을 받으러 가는 등 그 어떤 어려움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

“언제나 늘 기도가 제겐 큰 힘이 됐어요. 언제 어디서나 기도했지만 기도는 쉬운 일이 아니예요. 마음속에 간절함이 있어야 해요”

조 권사가 오수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할 당시 오수중학교는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학교 이사들은 여성 교장을 인정하지 않았고 교육감에게 따지러 가기도 했다. 당시 부촌이었던 오수는 교육열이 뜨겁고 학생 수도 많았다. 그녀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열심히 뒷바라지했다. 특히 그녀는 양호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그 것이 간에 무리를 주고 말았다. 병원에서는 그녀에게 쉴 것을 권장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에게 그런 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조 권사는 아픈 몸을 이끌고 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으로 향했다.

“성전에서 정말 간절히 기도만 했어요. 4일을 작정했는데 마지막 날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죠. 당시에는 기도의 응답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기도원 담당 목사님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는데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면서 꿈을 해몽해주셨어요”

조 권사는 너무 기뻐 3일을 더 금식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 때만큼 기도가 재미있고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고. 매년 30~40명의 학생들을 전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시켰던 오수중학교는 그해에 120명을 진학시켰다. 4배 가까이 늘어난 진학생 수에 이사들도 더 이상 불만을 터뜨리지 못했고 그녀의 학교사랑과 제자사랑은 후에 전라북도 도지사 추천으로 제13대 신사임당으로 추대되는 계기가 됐다.

이 밖에도 조 권사는 대통령 모란장, 전북봉사대상, 서예도전 특선 등을 받았고 수많은 여성단체들을 설립하는데 앞장섰다. 걸스카우트 전북연맹장을 비롯해 전북 여성단체협의회 초대회장, 대한주부클럽 초대회장 등을 역임하며 어머니로서 교육자로서 여성리더로서 늘 쉼 없이 달려왔다.

“기도가 축복의 통로이자 저의 힘이 됐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어요. 또한 아이들이 저의 이런 생각에 늘 순종하고 따라줬기 때문에 고마워요. 늘 아이들을 붙잡고 기도하기에 힘썼고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교회행사를 주도했어요. 그런 아이들이 늘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어요”

지난해 7월에는 코아리베라호텔에서 조옥영 권사의 ‘미수연’을 맞아 가족음악회를 개최했다. 해외에서 활동 혹은 거주하는 자제들까지 모두 참석해 4대가 한 자리에 모여 음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조옥영 권사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

조 권사는 인터뷰 내내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기도는 기도 제목을 두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또한 주변에서 함께 기도해주는 중보기도가 큰 힘이 된다”고 역설했다. 지금도 늘 자제들을 위해 기도하기에 힘쓴다는 그녀를 통해 기도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기사입력 : 2009.03.06. am 08:27 (편집)
정승환기자 (kg21@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