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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로 장로(전 해병대사령관·여의도순복음교회)

신앙의 힘으로 ‘무적 해병’ 이끈 최고 지휘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사령관으로 임직
MCF 통해 군복음화 주력 ·향목제도 확대 
예편 후 한세대 교수로 제2의 인생 시작

 해병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귀신잡는 해병’ ‘무적 해병’이다. 다른 군에 비해 해병대의 이미지는 그만큼 독특하고 강하다. 그런 탓인지 이들을 지휘하는 사령관의 이미지는 더 강하게 연상된다. 하지만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제28대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이상로 장로를 만나면 정반대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무섭고 딱딱하다기보다는 자상한 아버지 또는 이웃집 아저씨 쪽에 가깝다. 예편 후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 장로는 현재 한세대학교에서 e 비즈니스와 마케팅 분야를 가르친다. 학생들은 그런 이 장로를 아버지 같이 생각하며 존경하고 따른다.

 “군인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해요. 그래도 군복을 입으면 느낌이 달라보인답니다” 외모에서와는 달리 그의 대답에서는 절도와 위엄이 느껴졌다. 외유내강형인 그의 성격은 군을 지휘하는데 있어서도 잘 드러난다. 사령관 재임 당시 그는 사병들에게는 부드러운 통솔형 리더십을, 지휘관들에게는 절도있는 관리형 리더십을 발휘하며 지혜롭게 군을 이끌었다. 그러나 자신은 ‘내게 있는 지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군을 지휘했노라’고 고백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그 분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신앙인으로 살자는 게 제 신조였어요. 그래서 매일 아침 교회에 가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고, 출근해서는 성경을 한 장씩 읽고 군 기강 확립과 사병들의 안전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죠”
 이상로 장로는 그 덕분에 사령관 재임 시 연평해전과 같은 큰 사건이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다만 2007년 12월 강화도에서 야간 작전을 수행하던 한 상병이 괴한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사건만 빼고는.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군 지휘관으로서 자식같은 사병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아십니까. 지금도 저에게는 상처로 남는 일입니다” 그는 당시 탈취된 총기로 인한 추가 범죄가 일어나지 않은 것 만큼은 감사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기독 군인의 부인들이 모여 탈취된 총이 고장 나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범인이 사건 직후 총기를 버리고 달아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더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는 이처럼 매사를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는 편이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의지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상로 장로는 결혼 후 포항에서 군생활 할 때 예수님을 영접했다. 믿음이 신실했던 전셋집 주인의 전도로 교회를 출석하게 된 그는 부인이 조산으로 첫 아이를 잃고 두번째 잉태된 아이마저 조산으로 위태롭다는 말에 하나님께 매달렸다. 기도의 열매로 첫 아들을 얻게 된 이 장로는 이전보다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인이 됐다.

 큰 아들 성준이는 유독 신앙심이 깊어 이상로 장로에게는 위안이 됐다. “제가 대령으로 진급될 시기였어요. 낙천될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진급에서 떨어진 겁니다. 상심이 커 괴로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섰는데 중학생이 된 성준이가 제 가방을 건네받으며 ‘아빠 힘내세요.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순간 코 끝이 찡해지면서 나태해진 제 신앙을 점검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게 됐죠”

 그는 그 뒤 ‘지경을 넓혀달라’는 야베스의 기도를 날마다 묵상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결국 해병대를 이끄는 사령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 그리고 2008년에는 외국 군인으로는 처음으로 미해병대를 지휘할 수 있는 한미해병구성군사령관과 외국 군인으로는 두번째로 인도네시아 명예해병대사령관으로 추대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힘들었던 이 장로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 주었던 아들은 현재 목회자가 되었고, 이 장로는 이제 아들의 중보자가 되어 아들의 사역을 위해 몇 곱절 더 기도하고 있다.

 이상로 장로는 현직에 있을 때 군 기강 확립은 물론 사령관 시절이었던 2007년에는 한세대와 ‘학·군 교류 협정 체결’을 하고 해병대원들의 지적 향상에도 신경을 썼다. 또한 군 복음화에 있어서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는 포항과 김포 등 임지를 이동하며 요직을 맡을 때마다 군교회 기독군인회(MCF) 회장과 국군 MCF해군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매년 20만여 명의 군인을 말씀으로 양성하여 2020년에 가서는 전 국민의 75%를 복음화 하겠다’는 이른바 ‘비전 2020운동’을 위해 앞장섰다. 해병대 교육훈련단장으로 있던 2000년에는 ‘향목 제도’를 전지역으로 확대시행해 예비군들의 신앙 교육과 상담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장로는 군생활을 하면서 이처럼 군복음화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전 해병대사령관이었던 박환인 장로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이상로 장로는 예편 후 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연합사 주관 훈련의 선임 멘토로 발탁돼 훈련에 동참했으며, 이달부터는 한세대에서 또 다시 강의를 진행한다. 이 장로는 스스로를 일컬어 ‘햇병아리 교수’라 칭했다. 아직까지 서툰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알을 깨고 세상에 첫 걸음을 내딛은 병아리의 순수한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신앙과 연륜의 지혜를 나눠주겠다는 속내 깊은 말로 들렸다.


  글·오정선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09.02.27. am 12:45 (편집)
오정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