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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재원 장로(종암한의원·여의도순복음교회) - 예수님 사랑 때문에 즐거운 봉사

30년 동안 휴일마다 어려운 이웃 위해 진료 
마흔 살 넘어 주님 영접 더욱 열심히 헌신 

새해가 밝았지만 한겨울 날씨에 경제사정마저 좋지 않아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춥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격려하고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내 것을 조금 나누는 것으로 꽁꽁 언 마음을 녹일 수 있도록 방법을 배워야겠다.  

팽재원 장로는 춥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수십년 간 사랑을 실천한 예수님의 사람이다. 인터뷰를 요청하면 ‘그저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이 너무 감사하기 때문에 할 뿐이고 특별할 것은 없다’며 자꾸 거절해 곤욕스러웠지만 그가 가진 사랑이야기가 온기를 전해 줄 것이란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일방적으로 인터뷰 약속을 잡고 팽재원 장로가 진료 중인 병원으로 찾아갔다. 병원문을 여니, 깔끔하고 멋진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병원들이 대세인 요즘 세상에 세월이 멈춘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짙은 한약 향기 속에 20여 명의 환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있는 모습은 푸근하고 편안해 보였다. 그 풍경 속에 나이 지긋한 의사만이 분주하게 환자를 옮겨 다니며 침을 놓고 진료에 여념이 없었다. 40년 동안 한자리에서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환자들이 팽 장로의 실력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제가 잘해서 침을 잘 놓는 줄 알았어요. 이제는 하나님께서 신유의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진료하고 있어요”  

팽 장로는 평일에는 몰려드는 환자들을 진료하고 쉬는 날이면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며 의료봉사에 매진한다. 팽 장로의 열정과 봉사 정신은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몸에 배였다. “마흔 살이 넘어서 예수님을 믿게 됐어요. 구원을 늦게 받았으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더라고요. 남선교회 봉사도 하고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신학 공부도 했죠”

봉사를 하면 쉬는 날도 없고 더 피곤할텐데 더불어 믿음이 놀랍게 성장했다. 남선교회에서 나이와 사회적 지위를 던져버리고 낮은 마음으로 성도들을 섬겼다. 그 때는 주일에 새벽별 보면서 나왔다가 늦은 밤이 되면 별을 보며 집에 돌아갔다. 이와 함께 (사)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농어촌선교회의 전도를 돕기 위해 의료봉사도 시작했다. 전국 방방 곡곡을 다녀야하기 때문에 한번 왔다 갔다하는 것도 부담이련만 당시 의료환경이 열악한 지방에서의 진료봉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하나도 안 힘들고 보람만 커졌죠. 신나게 봉사하고 기쁘고 좋은 기억들만 있어요” 지금도 팽 장로는 엘림복지원, 순복음의료센터, 여의도순복음 성북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의료봉사를 한다.  

이제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지치지도 힘들지도 않다는 팽 장로지만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핍박했다. 먼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누나들이 전도하면 독자이자 장남인 그로서는 제사를 포기할 수 없었고 화를 내며 누나들을 쫓았다. 의정부의 유복한 가정에서 1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난 팽 장로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모범생으로 평탄한 삶을 살았다.

한의사가 돼서 성공적으로 병원을 운영하던 팽 장로에게 서울한의학협회장으로 재임시 건강에 이상이 왔다. 협회 일로 막대한 스트레스를 받은 팽 장로는 결국 불면증과 위장병으로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야했다. 팽 장로는 의사로서 평소 건강관리도 철두철미했고 태권도,테니스,골프,스키,수상스키,승마 등 웬만한 운동을 섭렵하는 만능스포츠 맨이었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매일 계속되는 신체적 고통은 그에게 있어 큰 충격이었다. 그때 팽 장로가 핍박했던 누나들이 그에게 복음을 전해왔다. 교회에 다니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니 거짓말처럼 병이 싹 나았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신거죠. 아팠던 것이 오히려 제게 좋은 일이었지요. 아프지 않았다면 교회에 나오지 않았을거에요” 

건강을 회복한 팽 장로는 무조건 주님만 따를 것을 결심하고 봉사의 처소를 뛰어다녔다. 1980년대 말에는 병원 근처 창문여고 앞 공원에 모인 노인들에게 목요일마다 식사대접을 하고 진료도 하고 함께 예배도 드렸다. 그 결과 노인분들은 물론 자손들까지 봉사에 감동을 받아 100가정이 교회에 오게 돼 전도왕이 됐다. “고 김용문 장로님이 안계셨다면 절대 못했을 일이에요. 장로님께서 먼저 이 일을 하자고 하셔서 했을 뿐이죠. 하나님께서 시시때때로 믿음의 동역자들을 보내주셔서 귀한 사역에 동참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봉사하면서 좋은 동료들을 만난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가장 큰 복이에요”

2001년부터 팽재원 장로는 마라톤을 시작해 69세인 현재까지 42.195km 완주를 여섯번 했다. “마라톤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다 놀래는데 인생은 60부터라고 하잖아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으니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도 즐겁죠. 마침 혼자할 수 있는 운동도 찾고 있었어요. 다른 운동을 하려면 사람들과 시간을 맞추느라 시간을 많이 뺐기니까요” 봉사할 시간을 위해 자신에 대한 시간은 최소화하려는 팽 장로의 노력이 60대에 마라톤 완주 6번이라는 놀라운 일을 만들어 냈다. 

허언하지 않고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을 섬기는 팽 장로의 지칠줄 모르는 봉사가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기도한다.
 

 

기사입력 : 2009.01.02. am 08:13 (편집)
복순희기자 (lamond@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