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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신익 교수(미국 예일대·뉴헤븐한인감리교회)

음악으로 복음전하는 예일대 명물 ‘함토벤’

 

달동네 소년에서 명문 예일대 교수로 우뚝 서
유학 시절 식당웨이터, 지압사로 힘겹게 생활
음악 통해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 전하고 싶어
 

 종영된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남긴 영향력은 크다.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항간에 예일대 함신익 교수를 모델 삼아 이 드라마 주인공 ‘강마에’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있었다. KBS교향악단 연주를 위해 내한했던 함신익 교수를 만났을 때 강마에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 탓에 완벽할 수 있는 데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음악을 연주한다는 점. 그것이 사명이자 임무라고 생각하는 게 똑같았다. 그러나 함신익 교수는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단원들과 교류한다는 점에서 강마에와 달랐다. 그래서 그와 음악적 작업을 함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베스트로 꼽았다.

 사람들이 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그의 성공적인 인생 때문이다. 그는 건국대를 졸업하고 1984년 단돈 200달러를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12년 만에 150대 1이라는 경쟁을 뚫고 한국인 최초 예일대 교수로 우뚝 섰다. 그가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감동적 드라마와 같다.

 그는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 아들로 태어났다. 바로 삼양교회 원로목사인 함영진 목사가 그의 부친이다. 북에서 피난 내려온 부친은 폐결핵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신학생이 됐고, 삼양동 가난한 동네에 천막 교회를 세워 사역을 시작했다. 막내였던 함 교수는 어릴적 쌀밥도 못 먹는 환경이 싫었다. 그래서 가정 환경 조사란에 아버지 직업을 ‘목사’라고 쓰지 않는 게 소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권유로 없는 살림에 피아노를 시작하면서 그는 신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건국대 음대에 진학하면서 지휘자에 대한 꿈을 가졌고 미국 유학 길에 오르지만 유학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식당 웨이터, 냉동트럭 운전기사, 지압사 등을 해가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몰고 다니던 중고 자동차가 멈춰 견인차를 불렀지만 견인료 50달러가 없어 오페라 아리아부터 초등학교 교가까지 불러주며 견인료를 대신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가슴속에 담고 있던 희망이라는 빛 때문에 고통을 이겼고, 라이스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어 명문 이스트만 음악학교에서  지휘자 박사과정을 수료할 수 있었다.

 그는 이스트만 재학 당시 지휘경험을 쌓기 위해 직접 ‘깁스 오케스트라’를 창단, 2년만에 미국 로체스터 지역에서 가장 인기있는 오케스트라로 성장시켜 이스트만의 살아있는 신화가 되었다.

 1991년 폴란드의 피텔버그 국제 지휘 대회에서 입상하여 프로 지휘자로 세계 무대에 데뷔하고서는 고정 관념과 형식을 파괴한 기발한 기획과 운영방식으로 ‘오케스트라 부흥사’라는 명칭을 얻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예일대 교수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말하며 고난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룰수 없는 것을 이루는 것이 크리스천의 몫이고, 그것이야말로 젊은이가 가져야 할 열정이자 꿈”이라고 강조했다.

 예일 심포니 지휘자로 10여 년 활동했으며 2004년부터 예일 필하모니아 지휘를 감독하고 있는 그는 미국 애벌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린베이 교향악단, 투스칼루사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로 일하며 이들을 지역 명물로 키웠다. 지금은 ‘미국의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갈 차세대 지휘자 5인’에 꼽히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대전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로 활동했으며 1992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KBS교향악단 객원지휘를 맡고 있다.

 그는 어려웠던 지난 과거를 이야기하며 “원망보다는 오히려 감사가 앞선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나를 응원해주는 가족과 팬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그에게 올해 가장 의미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지난 여름의 일을 이야기했다. “올해 처음으로 선교여행이라는 것을 다녀왔어요. 안식년 때 예일대에 와서 공부했던 한 선교사가 있는데, 그 선교사의 요청도 있고 해서 6월 말에서 7월 초 몽골국립교향악단을 지도했지요. 제 생애에서 가장 대하기 어려운 오케스트라였지만 일주일간의 연습 후 가진 공연에서 저와 단원들은 모두 울고 말았죠. 그들이 새로운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저의 열정을 전한 것이 가장 보람됐습니다. 순수한 음악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저에게 주어진 사명이겠죠”

 학벌보다는 실력을 중시하는 그는 내년에도 자신의 지경이 넓어지길 소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넓어진 지경만큼 음악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글·오정선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08.12.28. am 12:15 (편집)
오정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