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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옥철 집사 - (〔주〕아로세라코스메틱 CEO·분당우리교회)

민간요법으로 건강 찾으며 복음전해요
연대보증 탓에 한 달간 가족이 한강서 생활
중국에서 사업하며 직원들에게 복음전해

 

 산을 오르는 사람은 목표가 있다. 자기가 오르려는 곳을 향해 한 걸음 한걸음 걸어나간다는 것이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쉽게 지치지 않는다. 순간에 취해 힘을 다 써버리지도 않는다. 차근차근, 그러나 꾸준히 능선을 따라갈 뿐이다. 목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현옥철 집사는 잘나가던 웨딩포털업 사업가였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신앙도 좋고 수완도 좋아서 손을 대면 뭐든 안 되는 게 없었다. 대학졸업 후 뛰어든 웨딩사업은 그에게 장밋빛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할 정도였고 그 덕에 광주에서 꽤나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다.

 “웨딩전문지 월간 신랑각시를 발행하면서 웨딩포털업을 했어요. 서울에 려원이 있었다면 호남에는 신랑각시가 있었죠. 웨딩업이라는게 토요일과 주일이 가장 바쁘지 않습니까. 주일에 봉사하고 싶어도 고객이 부르면 달려갈 수밖에 없었어요. 주일 저녁 피곤한 몸이지만 억지로라도 예배를 드리면서 ‘이게 아닌데…’라는 불안한 생각이 자주 들었죠” 그러다 현 집사에게 정말 ‘이게 아닌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업이 잘되고 현금이 있다는 소문으로 평소에 잘 알고 있던 지인이 연대보증을 서달라는 것이었다. 크게 건설업을 하던 사람이라 현 집사는 깊이 생각지도 않고 서류에 도장을 찍어줬다.

 3개월 후, 현 집사의 잘나가던 인생에 ‘전쟁’이 시작됐다. 보증 섰던 건설업 사장이 부도를 내고 구속이 된 것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빚 독촉 전화가 왔고, 집에는 압류딱지까지 붙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자동차에 6살과 4살 난 아이들과 아내를 태우고 무작정 서울로 왔다.

 “1994년도 7월이었는데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었어요. 갈 곳이 없어 한강변에 자리를 펴고 한 달간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피눈물이 나죠”

 가족들과 갈 곳이 없어 한강에서 생활하고 너무나 암담하고 처절했던 그였지만 그래도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 신앙이 있었고 어떤 일이든 같은 편이 되어주고 남편을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은 고마운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 집사는 공사판에 나가 막노동을 시작했다. 한때 잡지사 발행인을 했던 그였지만 체면도 사회적 지위도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서 일을 하다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 10명 정도를 모아 반장을 하면서 공사일을 따냈다. 그러다 신도시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돈을 모았고 연대보증으로 지게 된 빚을 모두 청산할 수 있었다.

 1998년 현 집사에게 중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우연하게 찾아왔다. 도로공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대학생 때 C.C.C.에서 훈련을 받았을 때부터 꿈꾸었던 중국선교의 문이 열리게 된 순간이었다.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벅차올랐다. 도로공사 관련 장비 10대를 가지고 들어갔다. 국가 공사를 하다 보니 돈도 꽤 많이 벌 수 있었다. 그런데 3개월간 공사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중간 브로커에게 물어보니 입금이 미뤄진다고만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통역을 데리고 정부관계자를 찾아갔어요. 왜 공사금이 늦으냐고 물어보니 공사대금을 다 지불했다는 것이었어요. 알아보니 중간 브로커였던 조선족이 도장을 도용해 매달 5일 공사금을 빼내어 간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그리 잘못했기에 사기를 당하고 경제적인 시련이 생겼을까? 돈을 벌어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던 그였다. 그래도 죄라면 사람을 너무 믿은 것이었다. 그래서 현 집사는 압력 아닌 압력 속에서 도로공사를 진행하면서, 주경야독 중국어 공부를 했다. 그의 억척스런 공부로 중국인들과 대화는 통역이 필요 없었다.

 “돈은 잃었지만 대신 사람을 얻었습니다. 사업장에서 훈시 시간에 복음을 전했죠. 지난 10년간 영적으로 만났던 형제 자매가 3000여 명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장춘에서 일할 때는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 목회자와 선교사들이 중국에 오면 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했다. 그리고 딸이 오랫동안 앓던 아토피 때문에 배워왔던 수기요법과 자연의학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자비량선교에 경제적 한계를 느낀 현 집사는 2006년도 가족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국인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선교에 드는 돈을 충분하게 벌면서 선교하기 힘들었어요. 이것저것 해보다 바이오머드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14년간 앓았던 딸의 아토피를 고칠 수 있었죠” 그래서 그는 바이오 머드를 생산하는 북경에 <동원에너지그룹>을 세웠다. 그리고 한국에는 (주)아로세라 코스메틱이라는 피부 관리실을 오픈했다. 피부관리를 받으러 오는 손님들에게 수기용법 관리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수기요법으로 몸이 좋아지면 입소문을 듣고 무슨 병이든 고친다는 심정으로 저를 찾아오는 분도 있어요. 저는 고객의 기와 혈이 잘 순환하게 도와주고 뼈가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뿐 모든 병을 낫게 해주는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의사가 아니에요”

 현 집사는 나쁜 생활 습관 때문에 자세가 삐뚤어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목회자나 선교사들 그리고 건강관련업 전문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강의도 하고 있다. 눈으로 바로 보이는 단순한 통증의 치료가 아니라 자연치유를 목표로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또한 CBMC에서 훈련도 받고 중국에 벌인 사업체를 방문하며 그들의 신앙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이젠 세상 욕심이 없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바울 선생의 고백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현 집사의 눈빛이 다시 빛났다.
글·이소흔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08.11.09. am 10:44 (편집)
이소흔기자 (sohuny@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