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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교수(호서대·신일교회)

‘교육 외길 60년’ 이시대 참스승

1948년을 시작으로 60여 년 교편생활
각 분야 진출한 제자들 보면 언제나 흐뭇

 이찬수 선생님의 연세는 올해로 여든 하나다. 청수한 선생님의 얼굴에선 도저히 감잡기 힘든 나이다. ‘교수’보다는 ‘선생’이라고 불러달라는 선생님. 이찬수 선생님의 ‘교육 외길 60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21세가 되던 1948년부터 여자중학교 수학선생으로 교편생활을 시작했어요. 그후 많은 학교를 거쳐 중앙대학교 부속중고등학교에서 교장을 20년간 하다가 한서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했습니다. 퇴임하자마자 호서대학교 강석규 총장님의 권유로 1990년부터 호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이찬수 선생님은 그토록 맑고 똑부러지고 곧을 수 없었다. 선생님의 얼굴은 누구보다도 맑게 빛이 났다. 이유를 묻자 선생님은 이렇게 답변했다.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교사로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학생들을 행복하게 가르쳤어요. 졸업한 제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내가 대통령이 된 것 같고,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내가 국회의원이 된 것같은 것이 교사라는 직업입니다. 제자 출세가 곧 나의 출세라고 생각하면 선생이라는 것이 가장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라는 직업을 이렇게 행복해 하는 선생님을 보는 사람이면 누구든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할 것 같다. 제자들 중 선생님이 된 사람이 몇 명이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셀 수 없이 많다고 대답하시며 웃으신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선생님 슬하에 있는 7명의 딸들 중 5명이 교사가 됐다. 하지만 선생님은 딸들에게 넉넉하게 용돈도 못주고 대학입학 후 스스로 학비를 책임지게 한 것이 항상 미안하다고 고백한다.

 “4명의 딸이 중앙대를 졸업했어요. 그 이유는 입학은 자신의 실력으로 들어갔어도 제가 중대부속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있었기에 중대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죠”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배려하는 7명의 딸들이었다. 선생님은 자신이 해준 것 없지만 지금은 모두가 잘 산다며 늘 그런 딸들이 고맙단다.  
 “첫째딸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간호사로 있으면서 약사와 결혼했고, 둘째딸은 중앙대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 교사로 교편생활을 하다가 치과의사와 결혼했어요. 셋째딸은 중앙대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결혼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넷째딸은 중앙대를 졸업하고 컴퓨터 관련 일을 하다가 사업가와 결혼했습니다. 다섯째 딸은 인하공대를 나와 교편생활을 하다가 대학교수와 결혼했고, 여섯째딸은 중앙대를 나와 지금도 고등학교에서 교사를 하고 있어요. 사위는 변리사죠. 그리고 막내인 일곱째 딸은 한양대를 나와 유치원 교사를 하다가 사업가와 만나 결혼했어요”

 7년전 선생님은 셋째딸이 있는 미국 LA를 방문했었다. 선생님의 방문을 어떻게 알았는지 중대부고 출신 제자 50여 명이 미국 전역에서 LA로 모여 선생님을 환영했다. “그 때의 기분은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어요. 가장 행복한 기억일 것입니다. 그 넓은 나라에서 LA로 모여 동문회를 했어요. 졸업생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선생님도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신다. “저는 황해도 구월산 밑에 있는 시골초등학교를 다녔어요. 그때 저를 총애하셨던 김유택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참교육을 하신 분이셨죠. 나중에 선생님은 제2대 한은총재와 국회의원 그리고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까지 역임하셨는데 제게 가장 먼저 교사의 꿈을 꾸게하신 분이십니다” 선생님은 교육은 신앙생활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20년전 스스로 교회에 나갔다고 한다. 

 “교육자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서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힘들어요. 기독교는 참사랑이 있잖아요. 참 사랑이 없다면 참교육은 불가능 합니다. 오늘날 윤리와 도덕이 퇴색하고 사회가 어지럽고 혼탁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사랑이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이찬수 선생님은 지금의 교사들이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한다. “참스승은 제자들이 잘되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가 지식을 파는 노동자라고 여기고 있어요. 학생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선생님을 보며 근본을 배웁니다. 그래서 선생이 되겠다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요새는 선생이 되겠다는 아이들이 사라진지 오래랍니다. 사랑을 가르쳐야지 농성을 부추기는 것은 교육이 아니에요”

 이찬수 선생님은 교육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참교육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선생님 지론이다. 그래서 60년 교사생활을 통해서 느꼈던 점을 다음세대에 알려주고 싶어 책을 엮었다. 그때그때 기록해 두지 않아서 지금 기억에 남는 것만 적었다고 ‘잊어버리고 남은 것들’이라는 가제를 붙였다. 선생님의 수필집은 내년 초에 나올 예정이다.  

 선생님의 건강비결을 물었다. 운동과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나이는 생각하지 않는 것도 건강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믿은 후부터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받드시 답이 나오더라구요. 아무리 곤경에 빠져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곧 풀려나가게 됩니다. 가정 사회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운동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화요일과 목요일 이틀동안 호서대에서 하루 6시간씩 일본어를 가르친다. 나머지 날은 오전에는 등산을 하고 오후에는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다. 그리고 컴퓨터로 공부하고 늘 책을 읽는다고 한다.

 인터뷰가 끝나자 선생님은 여의도를 들른김에 서청원 국회의원 사무실로 가신다고 했다. 서 의원도 선생님이 총애하는 제자중 한명이란다. 제자를 찾아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에 참교육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려진다.

글·이소흔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08.07.11. pm 15:39 (편집)
이소흔기자 (sohuny@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