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람들 > 초대석
황영숙 권사(신망애육원 원장·점촌성결교회)

세계를 이끌 하나님의 지도자 키워요

사랑과 헌신으로 내 자식 보듬 듯    
한국의 조지뮬러 황용석 장로 뜻 이어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 아이들의 엄마인 황영숙 권사가 환한 웃음으로 맞아 주었다. 문경 점촌의 그림같은 풍경 속에 자리잡은 보금자리에서 엄마는 70여 명의 아이들을 돌본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부터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어엿한 대학생까지 모두 황 권사의 자녀들이다.

“요즘에는 아동 숫자가 적어지면서 이곳에 오는 아이들도 많이 줄었어요” 하지만 황 권사의 눈앞에는 정문 앞에 보따리 들고 걸어오는 아이, 운동장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아이…  아이마다 첫 모습이 가슴 아프게 아련히 떠오른다.

“상처가 많을수록 치유하는데 시간도 더욱 많이 들어요. 한 아이는  이곳에 오기까지 여러 친척집을 전전하다 왔는데 말을 안해서 벙어리인줄 알았어요. 6개월이 되었을 때 갑자기 말을 하는데 너무 놀랐죠. 어린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 상처가 너무 깊었던 거에요”

상처받은 아이들이기에 큰 사랑과 함께 물리적인 조치도 병행돼야 한다. 그중 하나가 악기 교육이다. 남 앞에 서는 훈련도 하고 정서적으로도 풍요로움을 주기 위함이다. 바이올린, 첼로 등 쉽지 않은 악기를 다루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평소 학교 수업에 악기 연습, 영어, 학습지 과외 하느라 바쁘고 방학 때도 수련회, 캠프, 국토순례 등으로 바쁘다. 일반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보다 혜택과 기회를 많이 주고 싶은 황 권사의 바람 때문이다.

신망애육원에서는 크게 말썽피우는 아이들도 없고 엄마, 아빠라고 불리는 선생님들도 일반 가정의 부모들이 하듯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친자식처럼 여기고 있다. “이 아이들이 비전을 가지고 자란다면 일반 가정의 아이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할 거라고 믿고 있어요. 또래 아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가는 것에서 나아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지도자로 키우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항상 당부하죠. ‘염려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내년부터는 아이들에게 해외체험의 기회를 주고 싶어요” 요즘은 상대적 빈곤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다 보니 메이커 운동화나 그들이 원하는 많은 것들을 해줄수는 없지만 황 권사 역시 아이들 기죽지 않고 마음 아프지 않게 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가졌다.

54년의 역사를 가진 신망애육원은 초창기부터 신망애농장을 통해 재정의 많은 부분을 감당해 왔었다. 지금도 황 권사는 몸뻬 입고 챙넓은 모자와 수건으로 무장하고 사과 농사를 지으러 농장으로 향한다. 빠듯하게 돌아가는 큰 살림살이도 큰 힘이 든다. 봉사자들은 장보는 것만 따라 나섰다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황 권사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린시절 늘 부족하고 배고팠던 고아원이 싫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결혼한 뒤 세아이를 기르는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공교롭게 남편도 갑자기 병으로 이 세상을 떠나며 평화롭던 그의 삶이 뒤흔들렸다. 세아이를 우상처럼 떠받들며 사랑해 주던 남편, 그가 떠나자 아이들이 힘들어했다. 신망애육원도 엄마를 잃고 아버지 혼자 많이 힘들게 되셨다. 그때 하나님은 여러 사람의 음성을 통해 신망애육원을 황 권사가 맡아줄 것을 말씀하셨다. 

신망애육원으로 다시 오는 것이 싫어서 몸부림치던 그때 남편과 어머니를 여의고 난 후 충격 때문인지 황 권사도 척추 마비로 몸져 누었다. 몇 달 동안을 좋다는 병원, 치료법들을 찾아 다녔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어느날 밤 꿈에 흰옷입은 동자가 다듬이질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놀라서 깬 황 권사는 찬송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방에 누워자던 다섯살배기 딸도 엄마를 따라 찬송을 부르더니 갑자기 “엄마 눈도 없고 코도 없는게 많이 많이 들어와”라고 말했다. 황 권사는 더욱 크게 기도했고 어느 순간 딸은 “엄마 다 나가 다나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황 권사는  용기가 생겨 ‘일어서질 것을 믿습니다. 걷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일어났다. 일어난 뒤에는 동산을 한바퀴 돌면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하나님만 아시는구나’ 

 그날 부터 자신이 나은 세아이를 마음에서 던져버렸다. 자신이 그렇게 자란 것처럼 고아들과 동일하게 또래 방에 넣어주고 그 이후부터는 아무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랐지만 큰 아들은 목사로 둘째 아들은 의사로 셋째인 딸은 목회자 사모가 됐다. 오히려 자녀들은 돈이 부족하면 빌딩청소, 새벽시장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자립했다. 엄마 원망은커녕 엄마를 존경해주고 황 권사가 하는 일을 귀하게 바라봐 주는 자녀들로 성장했다. “저 역시 어린 시절에 고아들과 똑같이 자란 것이 지금 생각하면 큰재산이에요. 내가 같이 안 컸으면 이 아이들을 이해하지도 못했을 것 같아요. 표정만 봐도 아이들 마음을 알 수 있어요”

황 권사의 아버지 황용석 장로는 신망애육원의 설립자이자 한국의 조지 뮬러로 칭송받는 분이다. 최근에 황 권사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고하며 ‘오늘은 틀림없이 좋은 날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아버지의 삶을 배우기 위해 27년을 이곳에 계신 선생님도 계세요. 아버지는 물건이든 사람이든 귀하게 여기셨어요. 하던 일이 잘 안되서 다시는 못한다 손들고서 아버지를 찾아오는 분들이 아버지와 대화만 끝내고 나면 다시 힘을 얻고 갔죠. 녹슨 못 하나가 떨어져 있으면 주어오시고 누군가 보내온 우편 봉투도 버리지 않고 뒤집어서 다시 사용하시고.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서 아버지를 따라하고 있을 정도예요”

아버지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지도자를 세우는 황영숙 권사의 자애로운 모습이 해처럼 밝았다. 시종일관 미소를 잊지 않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마음을 보듬는 엄마가 있어서 신망애육원의 아이들은 튼튼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기사입력 : 2008.06.04. pm 18:05 (편집)
복순희기자 (lamond@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