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람들 > 초대석
박동진 장로(국악인, 초동교회)

명창 속에 깃든 ‘예수 바람’

고향 공주에서 후학 양성하며 복음전파
‘성서 판소리’ 완창 계기 기독교인으로 거듭나 
1백80시간 판소리 가락 위해 지금도 연습 계속

 “내 나이 열여섯 때 ‘소리바람’이 들었지. 그때부터 자나깨나 소리만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오십이 넘어 또 하나 바람이 들었는데 그게 바로 ‘예수바람’이여”
 ‘소리바람과 예수바람’
 명창 박동진 장로라는 프로필과 함께 그의 삶을 가장 잘 함축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속에 든 1백80시간의 판소리 가락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소리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박동진 장로. 중요무형문화재5호 판소리(적벽가) 예능보유자인 그는 지금 고향땅에 박동진판소리전수관을 세우고 후학양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다들 고향을 등지는데 내가 고향 마을에 전수관을 짓는다고 하니 의아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태어나 자란 공주땅에 내 소리를 잇는 전수관을 짓고 싶었습니다. 여기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하고 좋아요”
 충남 공주시 무릉동 산 아래 자리잡은 박동진판소리전수관. 산 이름을 물으니 그냥 ‘큰산’이란다. 소박하고 아늑한 전통식 전수관 건물 뒤로 보이는 산자락과 앞으로 흐르는 실개울을 둘러싸며 펼쳐져 있는 푸른 논바닥이 싱싱하게 느껴진다. 고향땅이 아니라도 과연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전수관은 박 장로의 생가 터에 지어졌다.
 담장을 두르지 않은 앞마당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북소리에 실려 걸걸한 소리 한 자락이 귀에 들어온다.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는 주위 풍경과 꼭 맞아 떨어지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출입문을 드러내지 않는 소박한 전통가옥, 손때묻은 살림살이로 채워진 그곳에서 박동진 장로는 단정한 자세와 순박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아주었다.
 내년이면 여든여덟 미수를 맞는다는 박동진 장로는 아침에 마당에 심은 나무에 물을 주고 오는 길이라며 어린아이같은 미소를 보였다. ‘나무가 잘 심겨져서 마음이 좋고 물을 주고 나니 더욱 좋다’고 했다. 건강한 생활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근황에 대해 묻자 ‘서울에서 하루, 공주에서 석 달 머물며 아이들 소리하는 것 보며 지낸다’고 한다. 20여 명의 전수생들은 돌이 갓 지난 때부터 말과 함께 소리를 배웠단다. 전수생들을 훌륭한 소리꾼 못지 않게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기르고 싶다는 박 장로는 소리를 시작할 때 예수님 탄생과 부활에 대한 판소리를 가르쳤다고 한다. ‘지금까지 모든 아이들이 착실하게 신앙생활하고 있다’며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아 한번 본 것은 외워버릴 정도였다는 그는 일제 식민지 시절 3백70명 대전중학생 중 유일한 한국인이면서 1등을 놓치지 않은 우등생이었다. 졸업하면 면서기로서의 삶이 보장되는 그가 소리꾼의 길에 들어선 때는 열여섯이었다. 대전극장에서 판소리 공연을 본 후 ‘소리바람’이 든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70년 소리인생은 혼신의 힘을 다한 연구와 연습으로 이룬 열정의 시간이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불세출의 명창이요 타고난 소리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932년 판소리 입문 후 국립국악원 국악사 취임(1962) 한 후 판소리 <흥보가> 5시간 완창(1968), 판소리 <춘향가> 8시간 완창(1969), 판소리 <심청가> 6시간 완창(1970), 판소리 <적벽가> 7시간 완창(1971), 판소리 <수궁가> 5시간 완창(1972)을 통해 사라진 판소리 완창이라는 새로운 획을 그었다. 또한 성서 판소리 4시간 창작(1972), 판소리 <이순신전> 창작 (1973) 등으로 신작 판소리 작곡에까지 영역을 넓혔다. 박 장로의 이러한 업적은 중요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적벽가) 예능보유자 지정(1973), 중앙 국립창극단장 취임(1973), 은관문화훈장 수여(1980), 방일영국악상 수상(1996) 등으로 세상에서 인정을 받기도 했다.
 소리를 신앙처럼 삼아온 그가 서양종교로 여겨지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촌에서 나고 자라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불교신자로 살아왔어요. 그러다가 1972년 기독교방송에서 성서 판소리를 의뢰받았는데 새로운 것을 연구한다는 점이 좋아 보여서 응했지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성서 판소리는 단순한 판소리가 아니었다. 은혜와 진리를 담고있는 복음이었던 것이다. 예수님 탄생부터 시작한 성서 판소리는 공생애 사역과 고난과 죽으심, 부활과 제자들의 사역에 이르기까지 한 달 동안 이어지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 전통 가락으로 예수님의 삶을 증거한 성서 판소리는 박동진 장로의 소리를 통하면서 독특한 맛을 주었고 KBS에도 방송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외국에서 좋은 반응을 보여 CD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 성서 판소리는 박동진 장로의 삶에 있어 소리보다 더 중요한 전환점을 주었다. 예수님을 소리로 전하면서 박 장로의 속사람은 어느새 예수님사람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삶을 소리로 하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시는 장면을 소리로 할 때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지요. 곧장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예수바람’이 든 것이다. 예수바람이 든 후 박동진 장로는 먼저 가족들을 모아놓고 ‘이제부터 우리 집안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선언하고 제자들도 전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국악인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고 핍박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어째서 국악하는 사람이 예수교를 믿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지요. 그때마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백성을 위해 돌아가신 성인은 우리 예수님 한분이시다’라고 소개하고 십자가 구원을 전했지요”
 “당신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을 위해 십자가 형벌을 당하시고 돌아가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전한 박동진 장로는 ‘이 귀한 말씀을 알고 나니 어찌 가만있을 수가 있겠느냐’고 말한다.
 판소리로 복음을 전한 예수님의 증인 박동진 장로는 우리 시대가 낳은 위대한 소리꾼이자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를 외치던 박동진 장로는 이제 이렇게 소리한다.
 ‘예수님이 최고 좋은 것이여’

 

기사입력 : 2002.04.29. pm 14:17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