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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보혜사와 성령 보혜사
2020.01.0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한복음 16장 7절)

여러분,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가족이든, 친구든, 이웃이든,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혼자서 남겨진다는 것은 너무나 큰 두려움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대구 폭동 사건 이후 빨치산들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게릴라 활동을 시작하여 밤에 마을에 내려와서 마을 사람들을 살해하고 납치하고 가축과 양식을 약탈해 갔습니다. 그들의 공격 목표 중에 하나가 우리 집이었습니다. 한번은 빨치산이 아버지를 잡으려고 밤중에 왔는데 놀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버지를 방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 이불을 깔았어요. 그래서 그 이불 위에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누웠습니다. 그 빨치산들이 살펴보더니 그냥 갔어요. 그게 저희 아버님에게는 굉장한 충격이 되었습니다.

그 일을 당하고 난 다음에 그 집에서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가족들을 이끌고 부산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하루는 학교 갔다가 집에 오니까 그렇게 요란스럽던 집이 조용해요. 집에 오면 동생들이 마당에서 놀고 고함치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날은 너무나 적막강산이에요. 이쪽 방에 가도 아무도 없고 저쪽 방에 가도 아무도 없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만 덩그러니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 중에 나 혼자 버림받았다는 심정, 그것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나는 그 빈집에 혼자 앉아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때 내 마음속에 시골이 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도 조용한데 가서 쉬라고 하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2년을 살았는데 얼마나 고독했는지 모릅니다.

학교 갔다 오면 아무하고도 이야기할 사람이 없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대화가 안 되니까 혼자서 중얼중얼하다가 자고 혼자서 깨고 혼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해서 읍내로 가야 하는데 그때 또 충격을 느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을 두고 나 혼자 떠나온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런 경험 때문에 저는 고독이라는 것은 몸서리가 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한 체험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마음에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만 남겨놓고 어디론가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다가올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나는 너희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갈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디론가 떠나신다는 말을 듣자 제자들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해졌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만 남겨놓고 혼자서 어디로 가시려고 하시는가?’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속에 두려움이 가득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요 14:16)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제자들만 덩그러니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보혜사를 보내주셔서 항상 함께 계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보혜사가 오시면, 근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혜사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1. 또 다른 보혜사로 오신 성령님

보혜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부름을 받고 곁에 와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예수님은 보혜사로 활동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은혜로운 보혜사로 오셔서 제자들 곁에 늘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도와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아버지께로 가고 나면 제자들 곁에 보혜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님이 보혜사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가리켜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헬라어에는 다르다라는 말이 두 가지 있는데 ‘헤테로스’와 ‘알로스’라고 합니다. 헤테로스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성경책과 이 강단은 다릅니다. 달라도 보통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목적도 다르고 형태도 다르고 재료도 다를 겁니다. 이렇게 전혀 다른 것을 말할 때는 헤테로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할 때는, 알로스라는 말을 썼습니다. 알로스라는 말은 두 개가 똑같은 것인데 또 하나를 말합니다. 내용도 같고 모양도 같고 목적도 같고 다 똑같은데 이것 하나 있고 다른 것이 하나 더 있을 때 알로스라는 말을 씁니다. 예수님께서는 알로스 파라클레토스를 보내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성령님은 예수님과 꼭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보혜사이시고 성령님도 예수님과 똑같은 역할을 하는 또 한 분의 보혜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오늘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자녀를 결혼시키고 남편이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정이 깨어져서 혼자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도 서로 간에 대화도 하지 않고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은 어떠한 형편에서도 혼자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우리를 위해 오신 성령님

성령님께서 보혜사로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 대신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청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우리의 병을 치료시기 위하여 채찍에 맞으신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려고 모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도 예수님과 똑같이 우리의 유익을 위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병든 자가 치료함을 받고 귀신이 쫓겨나고 그곳에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을 성령 시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 시대가 예수님 시대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중대한 잘못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오늘날도 계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십자가를 통하여 죄를 사하시는 역사를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 천하 만민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죄의 용서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께서도 예수께서 죄를 사하여 주신 것과 똑같이 십자가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도록 사람들을 십자가로 이끌고 계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부조리와 불법과 부패가 팽배합니다. 이 부조리와 불법과 부패의 배후의 세력이 귀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불법이 사라지고 부패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신 곳에는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고 정직과 성실과 충성스러운 삶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도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성령은 병 고치는 일을 계속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다고 해서 이제는 병 고치는 역사가 그쳤다고 생각하면 중대한 잘못입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계속해서 행하시기 때문에 성령이 역사하시면 지금도 병든 자가 치료함을 받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우리 교회 성도 한 사람이 병원에서 폐기종 진단을 받았는데 의사가 하는 말이 “폐기종은 합병증이 무섭다. 만약 폐포가 터지면 생명이 위독하니 그럴 경우 곧장 응급실로 가야 한다. 혹시라도 지방에 내려갈 때는 산소 호흡기를 꼭 가지고 가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에 성도님은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다 병이 점점 악화되어서 한쪽 폐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숨이 차서 운동도 못하고 세수를 할 때도 양손으로 사용하는 것이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숨이 차기 시작해서 집에서 안정을 취했는데 그 다음 날에는 옷을 입지 못할 정도로 숨이 가빠져서 그 길로 응급실로 간 것입니다. 알고 보니 폐기종이 터진 것입니다. 그런데 워낙 폐가 약한 상태라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확률이 높아서 수술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5분도 못 되어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로라도 기도를 받으려고 급하게 저에게 연락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 5분 동안 전화상으로 기도를 해 드리고 성령의 지시를 따라 “폐기종 터진 것이 고쳐졌다!”라고 선포를 했습니다. 그 성도님이 나중에 간증하기를 그때 온몸에 전율을 느껴지면서 상체가 뜨거워지고 마음속에 ‘하나님이 고쳐주셨다!’ 그런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받은 후에 식욕이 생겨서 이틀 만에 처음으로 밥을 먹게 되고 다음날 아침, 검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터졌던 폐포가 원래대로 나아져서 붙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병을 치료하시고 아픈 자를 일으키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마 16장 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우리가 성령님을 믿고 의지하면 병이 떠나가고 치료의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이상, 치료하는 역사는 교회에서 그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성령님이 무엇보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악 가운데 살면서도 자기가 죄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두움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자기의 죄가 안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캄캄한 방에 쓰레기가 쌓이고 갖가지 더러운 것이 있어도 불이 꺼져 있으면 눈에 안 보입니다. 그러나 커튼을 열고 밝은 빛이 들어오면 얼마나 더러운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둠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빛이 비치면 자기가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죄인인가를 깨닫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하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령이 죄에 대하여 우리를 꾸짖어 주셔야 우리 마음이 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020년 새해 모두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사랑과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령님과 함께하는 삶

셋째로,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이 중요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과 꿈과 믿음을 말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든지 간에 그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성령께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 9: 2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편에 있든지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십시오. 우리 수준에서 생각하니까 할 수 없는 것이지 하나님께는 불가능이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방법이 없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께는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요, 오도 가도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상상할 수도 없는 길을 만드셨는데 바로 바다 밑에 길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길이 없다고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가지면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여러분이 올 한해를 성공적인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성령님은 우리의 꿈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에 꿈을 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살면서 꿈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의 내일은 절망입니다. 현실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환경의 불안과 고통과 괴로움만 바라보고 그것에 치우쳐 있으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무덤을 파는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내일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탁월하게 다른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꾸게 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작년보다 월등하게 나아지는 것을 꿈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새롭게 하고 꿈을 품었으면 그 다음에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지난 60여 년의 목회 생활 가운데 어려움에 부딪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할 수 있다!’ 모든 일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저의 모든 인간적인 방법이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고 주님에게 의지하니까 주님이 건져 주셨습니다.

제가 한번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 왜 낙동강으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까? 낙동강까지 떠내려가기 전에 좀 건져 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따져 보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제 생각과는 다르게 일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기다려서 제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의지하지 않느냐를 테스트하신 후에 제가 전적으로 주님만을 믿고 나아갈 때 주님의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셨습니다.

저는 저의 삶을 돌아볼 때, 일생을 살아오면서 번지 점프를 한 기분입니다. 번지 점프 하는 것을 보면 높은 데 올라가서 뒤에 줄을 매달고서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거의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자유낙하를 합니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줄이 철컥 붙잡아 주어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말씀이라는 줄에 묶여서 번지 점프를 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볼 때는 아찔합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 낭떠러지 곁에 가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가능한 한 멀리서 있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은 그만 낭떠러지까지 나아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 말씀이 나를 묶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밧줄이 나를 묶고 있으므로 믿음으로 점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3차원의 삶에는 우리 힘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4차원의 믿음을 가지면 3차원의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은 우리 입술의 말을 따라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몸이 아프고 지칠 때면 언제나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선포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건강한 나의 모습을 먼저 4차원의 세계 속에서 생각하고 4차원의 생각을 담아서 말하려고 힘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제가 살고 있는 3차원의 세계에 영향을 끼쳐서 저의 영혼과 육체가 삶의 환경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함으로 여러분 안에 말씀이 가득 채워지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서 우주의 근원이요 만물의 기초가 되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뜻을 가지고 3차원의 세계를 변화시키고 창조적 일을 행하십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은 마치 하나님의 오른팔과 왼팔처럼 함께 일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성령님은 우리의 보혜사로 오셔서 우리와 늘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보혜사로 오신 성령님을 늘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로 올 한 해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기적을 나타날 것입니다. 새해 모두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이 사랑과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시고 성령 보혜사를 모시고 이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 위해 간절히 기도하오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어서 원수 귀신을 다 쫓아내어 주옵소서.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안수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강물이 흘러 부활의 생명이 넘쳐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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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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